<우이동 시인들> 제3집 '시작 노트'
시작 노트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을 때
아무와도 이야기조차 나눌 수 없을 때
전화 다이얼을 돌려도 그저 막막하기만 할 때
그런 시간만이 계속 흐르고 있을 때
우이동 뮤즈여!
시는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하리
시와 나는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야 하리.
- 채희문
세상에 뜻대로 되는 일이 무었일까? 수없이 많은 물음표를 가슴과 머리에 찍는다.
한 가지도 없다. 시도 그렇다. 다만 마음으로 가릴 뿐이다.
여기 발표하는「牛耳洞日誌」는 한 편의 작품을 10행 이내로 압축해서 시다운 꼴을
갖추어 보려 했다. 그러나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기야 딸 낳고 싶다고 다
딸을 낳고 아들 낳고 싶다고 아들을 낳는다면 끔찍스런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우이동일지 · 1
- 봄날에
시도 때도 없이
울어쌓는
소쩍새.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내 마음.
- 洪海里
요즈음 내 작업의 형식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운율 형식이고 다른
하나는 서사 형식이다. 전자는 음악의 마력을 끌어다 말에 입혀 보려는 최면술법이다.
운율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아 대개 소품에 머물고 만다. 연작으로 지금까지 50여 편
만들고 있는데 100여 편 만들면 작품집으로 묶어 볼 셈이다.
후자는 시의 내용을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다. 스토리를 담게 되니깐 대개 분량이
길어지고 산문화되기 쉽다. 이 형식의 의도는 시상을 쉽게 풀어서 독자들에게
친근감을 주도록 하고 머릿속에 가급적 오래 남게 하려 함이다.
하나, 시가 어찌 이러한 형식만으로 성공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훌륭한 조각을
만드는 대리석과 같이 훌륭한 '싯거리'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 林 步
새벽에 산책을 자주 하다 보니 이제는 습관이 되어서 하루만 걸러도 꼭 뭔가를 잃어
버린 것같다. 그래서 요즘 얻어지는 시상의 대부분은 새벽 산책에서 주운 것들이다.
함께 얻어진 것이 새로운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욕심이다. 마음 같지 않아서 점점
더 목소리가 둔탁해지는 것 같아 야속하다. 변성기에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야 할 과정
이라면 오죽이나 좋을까마는 그리 쉽지 않다. 시「까치 나라」처럼 그런 곳에 이민
가서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 辛甲善
나는 사과 먹기를 좋아한다. 초가을엔 신것을 먹다가 늦가을엔 단것을 먹고
이른봄엔 이빨이 눈에 빠지듯 퍼석퍼석한 사과 먹기를 좋아한다. 어쩌다 벌레를
만나면 그 벌레의 행복을 물어뜯은 것 같아서 미안하다. 그놈도 사과에 집 짓고
사는 것을 보면 통하는 것 같아 반갑다. 그것 이외엔 별 탈이 없다. 다만 벌레의
생존권을 위협한 것 같아 안됐지만 ---. 사과를 내가 먹어야 했는지, 벌레가 먹어야
했는지, 아니면 나도 벌레인지 또는 벌레도 사람인지 --- 하다가 '나는 사과를
먹는 벌레다' 라고 수긍해 버린다.
- 李生珍
(『牛耳洞 · 3』 1988. 봄)
'『우이동詩人들』1987~1999'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이동 시인들 > 제4집 '끝머리에 붙여' (0) | 2008.07.03 |
---|---|
<우이동 시인들> 제4집 '合作詩'「국립4·19민주묘지에서」 (0) | 2008.07.03 |
<우이동 시인들 > 제3집 '끝머리에 붙여' (0) | 2008.07.03 |
<우이동 시인들> 제3집 '합작시'「白雲峯」 (0) | 2008.07.02 |
<우이동 시인들> 제2집 '詩作 노트' (0) | 2008.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