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동詩人들』1987~1999

<우이동 시인들> 제2집 '詩作 노트'

洪 海 里 2008. 7. 2. 19:57

 

<우이동 시인들> 제2집 '詩作 노트'

 

 1987년 2월 6일 자정이었다.

갑작스런 충격이 왔다.

詩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갑자기 나의 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 뜨거운 자각이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아름다와야 한다는,

진실해야 한다는 자각.

 

 바다가 밀려오고,

산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까지의 시를, 너를, 버려라! 하는 별나라의 통신도 수신되었다.

앞이 캄캄했다.

 

 여기 발표하는 인물시들은 지난 4월 16일 아침에 문득 쓰여졌다. 가까이서 자주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함으로써 서로를 어느 정도 막역히 알게 되면서 가슴

속에 품어진 생각들이 시로 쓰여진 것이고, 난에 관한 시편은 70년대 초부터 가까

이해 온 덕분에 난도 사람이나 똑같이 여겨지게 되어 얻어진 작품들이다.

 

 자연을 주제로 한 작품을 모아 <牛耳洞>을 만들자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나 사

람은 그중에서도 제일 앞자리에 놓여야 할 자연이라는 생각에서 인물시를 여기 싣

는다. 

 

                                                                                        - 洪海里 

 

 

  요즈음,

 책을 펼치고 앉아 있노라면 行間의 글자는 보이지 않고 雜念만 떠오른다. 길을

가다가도 혹은 산을 오르다가도 그러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이 雜念들에 가락을 얹

어 詩라고 내놓고 있다. 그것들을 詩想이라고 감히 이르지 못하고 잡념이라고 하는

것은 근래에 그것들이 내게 부쩍 흔해져서 귀하게 여겨지지 않을뿐더러 그것들 때

문에 내가 괴로움을 받기 때문이다.

 혹 雜鬼에게 거문고를 맡겨 樂神으로 착각하고 있는 격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 林 步 

 

 

 지난 초여름 남이섬에 놀러간 일이 있었다. 돌아오는 나룻배 위에서 바라다본 맞

은 편 강기슭의 신록이 물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는데, 나는 한 동안 그 경관에

넋을 잃고 말았다.

 

 인간이 자연의 본성을 모방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전제를 둔다면 나는 도저히 그

경관을 적절하게 묘사할 詩語를 찾아낼 힘이 없다. 내 시적 표현 능력을 탓하기에

앞서 인류가 창조하고, 갈고, 닦아놓은 언어의 한계가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기 때

문이 아닐까 하는 아전인수 격인 핑계도 생각해 보았다.

 나는 운명을 건 한 판의 승부처럼 시를 쓰지 못하는 게 탈이다. 안으로는 돌덩이

로 굴러가고 뒤척이기도 할런지 몰라도 겉에는 거울처럼 잔잔한 수면 위에 낚시

를 드리우고 송사리라도 자꾸 건져올리다 보면 어쩌다 월척이라도 하나 걸리지 않

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속에서 詩밭을 뒤적이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아,

 새까만 쌍봉우리 사이에 하얀 폭포 한 줄기 흘러내리는 그런 산수경석 하나만 주

웠으면……

 

                                                                                         - 辛甲善

 

 

 

 미친 놈이라고 할 거다. 시인은 미친 지 오래다. 그저 내색을 하지 않을 뿐이지.

 

 영등포나 강남(江南)에 사는 분들이 북한산(北漢山)에 오려면 지하철을 이용하

는 것이 좋다.

 미아리 고개를 땅 속으로 해서 수유역에서 내려 6번이나 8번 버스를 이용하면

바로 인수봉(仁壽峰) 메뿌리에 닿는다. 그러나 이런 상상은 더 유쾌하다. 인천에

사는 사람이나 관악구에 사는 사람이 배를 이용해서 우이동 북한산에 온다고 하는

일, 얼마나 시원한 상상인지 모른다.

 북한산성 위문이나 용암문 밑이 선착장이고 그 선착장에서 인수도(仁壽島), 백

운도(白雲島), 만경도, 노적도를 바라본다는 거.

 한여름 백운봉에 올라오면 그런 지변을 연상하게 된다. 내가 白雲島 선착장에서

직접 월미도나 그보다 먼 진도, 홍도로 간다는 그런 상상 - 여기에 와 보면 그 말

이 미친 소리는 아니다.

 이런 생각은 처음 북한산에 올라왔을 때부터 느낀 일이지만 십여 년이 지난 지

금까지도 늘 그런 느낌이다. 그런데 이 글을 쓰고 난 후 7월 하순에 사상최대의

수해를 입은 지역을 헬리콥터에서 내려다본 논밭 도시 마을이 물에 잠긴 모습은

눈물의 바다요, 고통의 고도이지 북한산에 올라와서의 시적(詩的) 환상은 아니다.

그래서 시의 이해와 판단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나의 수몰관(水沒觀)은 절대로

악의 소산이 아니라 시의 소산이다. 시란 그런 것이다. 시란 좋은 의미에서의 해

석과 이해로써 더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 李生珍

 

 

 詩가 사람들에게 시시한 것으로 받아 들여지지 않기 위해서 詩人은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떤 詩를 써야 할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꽃에 나비나 벌이 날아 드는 것은 그 꽃에 향기와 꿀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제의 독자도, 오늘의 독자도, 내일의 독자도 외면하지 않는 詩를 쓰고 싶다면

나 혼자만의 부질없는 욕심일까.

 뮤즈여, 市內의 탁한 공기 속을 헤매며 염불보다 잿밥에만 맘이 있는 이땅의 詩

人들에게 「우이동行」을 가르쳐 주소서.

                                                                                     - 채희문

 

 * (『牛耳洞 · 2』: 동천사, 1987. 9. 15. 120쪽, 정가 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