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동詩人들』1987~1999

<우이동 시인들> 제10집 시인과 선비정신 / 林步

洪 海 里 2008. 7. 4. 19:31

<우이동 시인들> 제10집『잔 속에 빛나는 별』

 

<우이동 소리>

 

시인과 선비정신

 

                                                                      林 步

 

 시인에 대한 내 생각은 아직도 엄격한 편이다. 가구를 만들

어내는 목수처럼 시인도 시를 생산해내는 기능인인 것은 분명

하다. 그러나 나는 시인을 단순한 기능인만으로는 보지 않는

다. 그는 분명 기능인 이상의 어떤 존재다. 목공일을 잘 하는

사람을 다 훌륭한 목수라고 부를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시를

잘 만들어낼 수 있다고 다 훌륭한 시인이라 이를 수는 없다.

세상에는 수백 편의 많은 시들을 남겨 놓고도 훌륭한 시인으

로 살지 못하고 떠나간 자들이 있는가 하면 단 몇 편의 작품

만 가지고도 훌륭한 시인으로 살다간 분들도 있다. 역설적인

말이 될는지는 몰라도 한 편의 시를 쓰지 않고도 시인다운 삶

을 만족히 살다 간 사람들도 있다. 가장 이상적인 시인의 삶

에서는 어쩌면 시까지도 거부되는 청빈이 따를는지 모른다.

 시인은 시를 제작하는 기능인에 대한 명칭이 아니라 시를

쓰며 세상을 살아가는 선비에 대한 호칭이다. 시인은 우선 선

비여야 한다. 그에겐 선비정신이 요구된다. 소설가(小設家)

나 화가(畵家)처럼 그를 시가(詩家)라는 기능인의 호칭으로

부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면 그 선비정신이란 어

떤 것인가? 예부터 우리 선인들이 그렇게 소중히 생각해왔던

그 선비정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물론 간단히 설명될 수 있

는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다음의 세 가지를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을 것같다. 그것은 염치(廉恥)와 분수(分數)와 절조

(節操)를 소중히 여기는 정신이다.

 첫째, 선비는 자기의 생각과 거동이 바르지 못할 때 부끄러

워할 줄 안다. 자신의 사악(邪惡)과 불의(不義)를 자신이 용

납하지 않는다. 혼자 있을 때 더욱 스스로를 지키는 신독(愼

獨)을 신조로 살아간다. 무서운 자존심이다. 그에게서 아첨과

술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행위다.

 둘째, 선비는 자기에게 주어진 분수에 자족할 줄 안다. 헛

된 명리(名利)에 마음을 두어 정신을 어지럽히지 않는다. 불

탐(不貪) 무욕(無慾) - 그래서 안빈낙도(安貧樂道)에 이르

고자 한다. 그에겐 허영과 과욕이 용납될 수 없다.

 셋째, 선비는 정의로운 사람과의 신의를 저버리지 않으며

자신의 신념을 부당하게 굽히는 일이 없다. 어떠한 물리적인

힘도 그의 의기를 꺾을 수 없는 강직한 사람이다. 그는 타협

과 변절을 모른다.

 시는 이렇게 세상을 살아가는 선비가 자신의 마음을 달래

며 쓴 글이다. 그러니 시인은 시보다 앞서 사는 셈이다. 그런

데 요즈음의 세상은 어떠한가? 선비를 잃어버린 세상이다. 청

정한 정신 - 우리의 고결한 자존심을 팽개쳐버린 시대다. 시

인은 없고 시쟁이들이 만든 껍데기 시들만 돌아다니는 세상이

다. 시라는 것이 소인배들의 장타령으로 타락하고 말았다. 그

들은 아마 새롭다고 변명할는지 모른다. 곧아야 할 낚싯대를

굽게 만들어 놓고 새롭다고 하는 어리석음이다. 오늘의 시 속

에 청정한 시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고결한 선비정신을 지키

며 의연하게 살아가는 시인들이 많이 나타나서 혼탁한 이 세

상을 좀 맑게 했으면 싶다.

(『잔 속에 빛나는 별』1991. 12. 작가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