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동詩人들』1987~1999

<우이동 시인들> 제9집 시작 노트

洪 海 里 2008. 7. 4. 17:49

<우이동 시인들> 제9집 시작 노트

 

* 시작 노트

  - 도시 사람들

 

  아직 나에게 써야 할 시가 남아 있는 것은 손의 덕이 아니라 발의

덕이다. 내 발은 손 이상으로 수고가 많다. 지난 겨울에도 돌산섬

금오도 안도 대부도 소리도 나로도 거문도 백도 이렇게 돌아다녔

다. 그 섬들을 종횡으로 오르내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발의 덕이다.

섬에 관한 시는 걸어다닐 힘이 있는 한 계속될 거다.

  시내버스 속에서 사람들은 대학입시 이야기를 한다. 아무도 섬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다. 그런 순간에도 내 머리는 섬 이야기

와 파도 소리로 가득차 있다.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출렁이는 파

도 소리, 그것은 도시에서도 꽃을 피우려는 동백나무의 몸짓이다.

                                                              - 李 生 珍

 

* 시작 노트

 

  북한산이 시름시름 앓고 잇다.

  멀리 중동의 어느 하늘에선 검은 비가 내렸다. 아니, 그 밑의 바

다에선 검은 파도가 아직도 철썩이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드디어 히말라야 산맥에도 검은 눈이 내렸다고

한다.

  머지않아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현상이 찾아올지 모른다. 찾아

올 것이다.

  지구촌의 어리석은 인간들이 도처에서 죽음의 재앙을 부르며 자

멸의 길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몇 줄의 시, 또는 시쟁이들이 과연 어떤 의미와 가

치를 지닐 수 있고, 또 어떤 역할을 감당할 수 잇으며 어떤 영향력

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인지---.

  너무나 암울하여 하늘을 우러러 마지막 기도를 드리고 싶은 심

정일 뿐이다.

 

                                                      - 채 희 문

 

* 시작 노트

 

  우리는, 아니 나는 얼마나 무미하고 무정하고 무심하고 무지한

가. 언어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 (색채와 점과 선이라면---)

언어의 부조리, 불완전함, 부적절함, 부족함, 불합리함--- 그러

나 그렇기에 시를 쓰는 게 아닌가.

  자연 속의 인간, 인간 속의 자연으로서의 나를 찾아가기, 그리

하여 자연 속의 인간의 말씀, 인간 속의 자연의 말씀을 엮기, 우주

의 관 속에 누워 꿈꾸기. 가장 완벽한 자연이고 우주인 이 모순 덩

어리를 이름 모를 작은 풀꽃이 고개를 꺾고 깔깔깔 웃고 있다.

저것만도 못한 나의 시편들. 나는 날개 없는 새가 되어 허공중에 날

고 있다. 지난 가을부터 이번 봄까지. 처절하고 황홀하게.

 

                                                     - 洪 海 里

 

* 시작 노트

 

  요즈음은 철새처럼 살고 있다. 週中에는 淸州에서 홀로 지내다

가 주말이면 식구들이 살고 있는 우이동집으로 되돌아온다. 福臺

洞 시편들은 청주의 삶에서 얻어진 일상적 감정을 노래한 것들이

다. 다시 읽어 보니 신세타령 아직 벗지 못한 것이 부끄럽기는 하

지만 있는 것을 굳이 감추고 싶지 않아 그대로 내놓기로 했다.

  南漢山 시편들은 이미 제8집에 발표했던 몇 작품들에 이어 떠나

신 내 어머님과 연관이 있는 작품들의 모음인데, 제호를 그렇게

한 것은 내 부모님의 유택이 남한산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의 것들은 그 동안 내가 시도해 오고 잇는 律의 연

작들이라 할 수 있다.

                                                      - 林 步

(『가는 곳마다 그리움이』1991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