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동詩人들』1987~1999

<우이동 시인들> 제9집 후기 : 꿈속의 상상력을 피우며 / 洪海里

洪 海 里 2008. 7. 4. 17:17

<우이동 시인들> 제9집『가는 곳마다 그리움이』후기

 

꿈속의 상상력을 피우며

 

 봄은 보는 계절이다. 보이는 계절이다. 보이지 않던 것, 볼 수 없던 것들이 보이는 때다. 삼라만상이 용오름하고 있다. 봄은 솟아오름이다. 솟아오름을 보는 때다.

  천상의 꽃이 지상의 풀과 나무와 사람들에게 꽃이란 이런 거야 하고 시범을 보여준 마지막 강설 뒤에 우이동 골짜기에도 다시 봄이 찾아왔다.

  이제까지 우리는 북한산 자락에 뿌리를 내리고 15년 내지 25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우리 동네를 사랑해 왔다. 산자수명 --- 그 이름에 걸맞게 봄이면 연초록 잎새와 함께 피어나는 꽃이 되고 싶고 여름이 오면 짙은 그늘을 드리우는 무성한 나무로 살고 싶다. 만산홍엽의 단풍으로 가을을 보내고 겨울이면 백설에 덮인 고고한 조선 소나무로 서고 싶다. 누가 뭐라 해도 우리는 우이동의 자연이 되고 싶다.

 

  우리는 그 동안 우이동을 사랑한다 하면서 조금은 무관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동네 서점에서도『牛耳洞』을 심심찮게 찾는다는 얘길 듣고 있으면서도 책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 책이 나오면 전국 방방곡곡으로 보내면서 이웃에게는 충분히 나누어 주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이제부터는 우리 동네를 우선적으로 기억할 것이다.

 

  한동안 장소 때문에 중단했던 <한넋예술마당>도 금년 들어 다시 시작했음을 알려 드린다. 인사동 네거리 '통인가게' 옆골목에 있는 <옛찻집(전화 : 722-5019)>에서 시와 국악과 민요와 전통차로 조촐한 잔치마당을 펼치고 있다. 매달 두 번째 토요일 오후 여섯 시에 <옛찻집>을 기억해 주시기 바란다. 그곳에 가면 모두가 시 같고 모두가 시인 같다. 바닥에 깐 멍석도, 포롱포롱 나는 새들도, 송죽매란의 분재도, 전통차의 향기도, 등잔불도, 향불도, 피리소리도, 무엇보다도 그 집 주인이 그렇다.

 

  우리가 시집 머리에 싣는 合作詩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한 사람이 쓴 작품 같다고 한다. 이것은 네 명의 동인에 의해 이심전심으로 씌어졌기에 잘 됐다는 의미로 파악되기도 하고, 또는 개성이 없는 무의미한 짓이라고 욕하는 것으로 들리기도 한다. 우리 네 명의 공동 창작이 탈개성, 배개인화의 무의미한 작업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우리가 벌이는 '우이동'의 작업은 그 자체에 의미가 있고 작업과정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싶을 뿐이다. 어차피 인생이란 과정이지 않은가.

 

  일요일 오후면 늘 만나는 허름한 주막집 <갑산집>에서 어김없이 얼굴을 맞대게 된다. 한 주일 동안 못 만나게 한 생활의 올가미를 벗고 자유로운 꿈속의 상상력을 피우며 그 동안의 때를 씻는다. 우리가 무엇을 사랑할 수 있는가? 무엇을 미워하고 무엇을 절망하고 그리워하고 꿈꾸면서 흘려보낼 것인가.

 

  지난호부터 제호를 <우이동>으로 고집하지 않고 그때 끄때 적절한 제호를 붙이기로 했다. 그러나 우이동이즘에는 아무런 번화가 없을 것임을 분명히 밝혀 두고자 한다. 계속 관심과 사랑으로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 우이동엔 아직도 올챙이와 송사리를 잡아 병에 넣는 아이들이 있고, 풀섶에는 개구리가 오줌을 쏘며 뛰어오르는 생명의 환희가 있다.

 

      -  1991년 봄, 洪 海 里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