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동詩人들』1987~1999

<우이동 시인들> 제15집 후기 '시수헌 이야기' / 洪海里

洪 海 里 2008. 7. 6. 20:36

<우이동 시인들> 제15집 『팔색조를 찾아서』

 

<끝머리에 붙여>

 

詩壽軒 이야기

 

그간 <牛耳洞 詩人들>이 「우이동 화실」을 사랑방으로 이용

해 왔다. 시와 그림은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어 시인들

과 화가의 만남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왔다.

 그러다 지난 가을 우리들만의 작업실을 마련했다. <우이동 시

인들>이란 간판도 걸고 하늘에 까치집처럼 방 한 간을 얽어 보

았다. 주변에 계신 시인들과 친지들이 살림살이를 하나씩 가져

다 주셔서 그럴 듯하게 아담한 둥지를 틀게 되었다.

 창을 열면 북한산의 인수·백운·만경봉이 그대로 가슴으로 뛰

어든다. 맑은 바람소리 속에 크나큰 말씀을 가득 담고 시원하게

달려온다.

 우리들은 이 방의 이름을 <詩壽軒>이라 붙이고 창작실로, 시

인들이 모이는 사랑방으로 이용하고 있다.

 

 지난 14집에 게재한 <후원회원 안내>를 보고 회원이 되어 주

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이 각박하고 인심 사나운 세상에서 우

리들의 작업에 관심을 갖고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는 모든 분들

께 큰 축복이 있을진저! 이렇게 가슴에 아름다운 별을 안고 사

는 분들이 있어 아직도 이 세상은 훈훈한 정으로 살맛이 난다.

그들은 이 세상의 빛이요, 꽃이요, 꿈이요, 무엇보다도 이 동토

를 녹이는 따뜻한 가슴의 불꽃이다.

 

 올해는 신문에 꽃소식 지도가 게재되고 나서도 기온이 무척

낮은 편이었다. 걱정은 우리들의 귀한 양식처럼 금년에도 <북한

산 詩花祭>를 준비하는 동안 우리들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

었다. 이미 맺혀 있는 꽃망울이 부풀어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

다. 이러다가 꽃도 없는 詩花祭를 올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모

두들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러나 천지신명은 무심치 않았다. 그렇게 싸늘하던 날씨가

섭씨 29도까지 올라가는 이변이 淸明부터 3일간 계속되었다.

꼼짝 않던 꽃들이 금방 화사한 얼굴을 천지 가득 내밀고 신선한

웃음소리로 북한산을 흔들어대는 것이 아닌가? 이 얼마나 놀랍

고 신명나는 역사인가. 오랜 가뭄으로 타들어가던 대지에 단비

가 내리고 북한산은 생기가 돌아 이팔청춘의 건강한 단내를 풍

기고 있었다.

 4월 10일, 진달래꽃이 만개한 가운데 우리들은 시화제 장소

에 제단을 마련했다. 예년보다 화려한 프로그램으로 3시간에 걸

쳐 진행된 詩와 꽃과 국악의 잔치! <우이동 선언>인 「自然과

詩의 宣言」에서 밝힌 바대로 詩는 사람들이 피우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요, 꽃은 自然이 짓는 순수하고 황홀한 詩이다.

 우리는 꽃과 詩와 사람과 自然이 어우러진 님의 품 같은 세상

을 꿈꾼다. 우리가 사는 동네 牛耳洞을 가꾸고, 우리의 어머니

인 북한산을 지키는 작은 정성이 헛되지 않아 살맛나는 신명의

세상이 오리라 확신한다. 詩 속에 살고 꽃 속에서 꿈꾸며 사는,

자연과의 合一을 지향하는 우리들의 노력은 지속될 것이다.

 

 아아, 牛耳嶺!

 서울의 정원인 북한산이 두 동강이 날 위기에 처해 있다. 지

난 14집의 合作詩에서 취급했듯이 우이령은 북한산과 도봉산을

가로지르는 6.5㎞의 군작전도로이다. '68년 1월 21일 김신조

일당이 넘어온 이후 26년 동안 폐쇄돼 오다 4월 17일 하루 동

안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북한산 국립공원 우이령 보존협의회」가 주최한 <우이령 시

민 걷기 대회>에 참여한 2만여 시민들은 아름다운 계곡길을 걸

으면서 우이령의 확장·포장을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오전 10시 우이동 광장에 모여 3.5㎞의 우이령을 넘어 오봉

산 아래 진달래골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시낭송과 음악회 및 북

한산 생태계와 지역 역사에 관한 강연이 있었다. <牛耳洞 詩人

들>도 동참하여 시낭송을 하며 북한산 바로 지키기에 힘을 합

한 바 있다.

 여러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함성은 바위도 녹인다 했으니

우리의 뜻이 관철되어 우이령이 지금 그대로 존속되기를 기원한

다.

 

 두어 다오, 제발 있는 그대로 두어 다오

 흙냄새 나는 길, 길섶에 풀이 푸른 길

 다람쥐 토끼 이쪽 저쪽 넘나드는 길

 꽃피고 새가 우는 고갯길로 두어 다오

 아아, 빛나는 천년 우이령이여, 영원하라.

 

                                        ──14집에 발표한 合作詩에서 

 

                                                              1994년 봄날에

                                                                    - 洪 海 里    

 

(<우이동 시인들> 제15집 『팔색조를 찾아서』1994. 7. 동천사, 값 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