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동詩人들』1987~1999

<우이동 시인들> 제16집 합작시「북한산 단풍」

洪 海 里 2008. 7. 7. 09:31

<우이동 시인들> 제16집『깊은 골짝 기슭마다』

 

합작시

 

북한산 단풍

 

가을이면 북한산은

어느 결에 봄 여름 마무리해 놓고

서울에서 가장 맑은 하늘에 물감 적셔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런 그림 그리고 있데

자연 그대로의 전시회 열고 있네

 

산마다 물이 들어 하늘까지 젖는데

골짜기 능선마다 단풍이 든 사람들

그네들 발길 따라 몸살하는 가을은

눈으로 만져다오 목을 뽑아 외치고

산도 타고 바람도 타고 사람도 타네

 

진달래 진홍 가지

벚나무 붉은 잎새

옻나무에 오리나무

상수리에 산수유

싸리, 떡갈, 물푸레, 단풍

만산홍엽 좋을시고

 

나 술 한잔에 흠뻑 젖어

산허리에 누었다만

산은 무엇에 불이 달아

저리도 붉게 타나

마시던 술 있으면

내 잔에도 가득 따라 주오.

 

 

* 이번 합작시의 주제는 '북한산 단풍'으로 정하고 채희문, 홍해리, 임보,

이생진의 순서로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 보았다. 북쪽으로부터 하루에

60여리씩 남하하는 단풍이 북한산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있다. 아름다운

것을 보년 우리는 눈으로 감상하려 들지 않고 손으로 만져 보려 하고

심지어 손으로 꺾으려 하기도 한다. 곱게 물든 단풍이 왜 저렇게 아름다

울까 생각해 보는 짬도 있어야겠다. 올가을 들어 하도 엄청난 끔찍스런

사건들이 우릴 놀라게 했다. 단풍은 그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자연이

그려 놓은 한 편의 詩인 듯도 하다. 나무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때가

되면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단다. 올 줄을 알고 갈 줄을 알고

영원한 시간 속에 진리를 묵묵히 가려쳐 줄 뿐이다. 이제 나무들은 자신

의 이파리로 자신의 발을 덮고 깊고 춥고 어둔 잠 속에 들 준비를 하리라.

그리고 겨우내 아름다운 봄을 꿈꾸리라. <海>

 

(『깊은 골짝 기슭마다』작가정신, 1994. 값 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