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서평> 시의 비타민 섭취를 위하여 / 백정국

洪 海 里 2009. 5. 26. 20:48

<서평>

 

                     시의 비타민 섭취를 위하여 


             - 洪海里 시선집『비타민 詩』(도서출판 우리글, 2008)


백 정 국 (한성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洪海里 시인의『비타민 詩』는 “내 시의 비타민 C를 뽑아 엮었다”라는 시인의 말을 감안하더라도 그 제목이 참 별난 시선집詩選集이다. 시집의 표제는 그 시집에 실려 있는 시 한 편의 제목을 따다 쓰는 것이 보통인데, 『비타민 詩』에는 “비타민 詩”란 시가 없다. “홍해리 시선집”이란 말은 구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시한테 권위를 내어주고 조용히 부제로 밀려나 있다. 사실 선별된 시들이 “비타민 C”라고 비유된 것 자체가 별나다. 이 비유는 “비타민 詩”가 상큼한 생명의 시라는 청신한 느낌을 주면서 입에 침이 고이게 하지만, 동시에 시란 알약을 억지로라도 삼켜야 할 것 같은 부담을 주기도 한다. 유혹과 의무의 특이한 결합이다. 그렇다면 이 시집은 시로 유혹을 해야 할 만치 강퍅한 삶과 한 가지 영양소를 집중 처방해야 할 정도로 영양이 불균형한 영혼들이 있다는 현실을 전제한다. 평소에 대지가 선사하는 소박한 푸성귀와 과일만 감사하게 먹었더라도 비타민 C나 詩를 알약으로 섭취해야 할 필요는 없을 터인데 말이다. 

  

이 재미있는 제목의 시집에는 피카소가 공중에 그린 그림처럼 시인의 예리한 언어적 감성에 정밀하게 포착된 자연의 움직임과 삶의 순간들이 겸허하게 펼쳐져 있다. 그런데 이 선집은 여느 시집과는 다르게 시인이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가 못지않게 무엇을 노래하고 있지 않은가가 중요하다. “있음”과 “없음”이 마치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격이다. 무엇보다 이 시집에는 ‘스스로 그러한’ 자연은 있지만 그와 대치되는 오만한 문명, 특히 경박하고 표피적인 도시문명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인은 문명을 마치 주인을 능멸하는 노예처럼 배척한다. 노골적으로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존재 가치 자체를 무시해 버리는 방식이다. 이 시집의 세계에는 무쇠솥이 전기밥솥을 밀어내고, 아궁이가 전자레인지를 삼켜버린다. 그곳에는 빗방울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양철집은 있어도 오만한 콘크리트 아파트가 없다. 그곳에는 “싱싱하고 방방한 허연 엉덩이”를 뽐내는 김장배추는 있어도 김치를 질식시키는 김치냉장고가 없다. 그곳에는 “단소 가락에 젖는 한나절”은 있어도 증권매장 전광판 앞에서 낭비되는 한나절은 없다. 이것뿐이 아니다. “집도 절도 없어, 세상이 다 제 것인” 사람들은 있어도 이런 놈들은 국가경제에 무익하니 추방해야 한다고 핏대 올리는 정치인들이 없고, “빌어먹을 년”은 있어도 세련된 외모와 언변과 금력金力으로 남의 것을 빼앗아 먹는 년이 없다. 

 

이 선집에 초대된 시들은 시인이 계절을 사색의 단위로 자연에 스스럼없이 몰입되어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사색의 단위에서 봄, 여름, 가을은 뚜렷이 눈에 보이는데 겨울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아흔아홉 편의 시들 중, 어린 마당과부의 가엾은 처지를 그린 「겨울 빗소리」만이 겨울이란 시공간時空間과 어렴풋이 연관되어 있을 뿐이다. 겨울에 대한 시인의 섭섭한 대우는 이 선집의 모태가 되는 시집들의 제목—『봄, 벼락치다』(2006),『푸른 느낌표』(2006),『황금감옥』(2008)—이 각각 봄, 여름, 가을과 얼추 일대일로 대응한다는 사실과 어느 정도는 연관이 있겠지만 절대적인 설명을 제공하진 못하는 듯하다. 많은 수는 아니더라도 겨울과 관련된 시가 이 세 시집에서 두루 발견되는 까닭이다.『봄, 벼락치다』에는「폭설 1」,「폭설 2」,「겨울 속의 눈과 눈들」,『푸른 느낌표』에는「설중매」,「겨울을 찾아서」,「겨울밤의 꿈」, 그리고 『황금감옥』에는「겨울 빗소리」말고도「동짓달 보름달」같은 시들이 실려 있다. 겨울철에도 비타민 C의 공급원으로 말린 나물이 있음을 시인이 모를 리가 없을 터인데, 시인이 애써 대부분의 겨울시들을 『비타민 詩』에서 제외시킨 이유가 궁금하다. 그 궁금증을 나름의 상상으로 풀어보는 것은 이 시를 읽는 도전적인 재미중의 하나일 것이다.

 

서두에서 시인은 시는 “우리 영혼의 비타민”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란 보편적인 인간 모두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막상 이 언명을『비타민 詩』에 한정시켜 적용해 보면 왠지 여기서 말하는 “우리”란 주로 남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정말 비타민 詩를 섭취해야 될 사람들은 거칠고 사나운 문명을 만들어낸 주인공인 남자들이란 얘기다. 그래서 일까, 이 선집에는 모든 여성의 궁극적인 모습인 어머니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에 조응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재회의 대상으로만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시간을 찾아서」). 사실 아버지뿐만 아니라 형, 아우, 남편이란 말도 찾아 볼 수가 없다. 빼버려야 하는 6번 어금니를 헤어져야 하는 조강지처로 비유한「지독한 사랑」말고는 전통적인 가부장의 이미지도 눈에 띄지 않는다. 시인에게 남자는 좀처럼 시적 영감을 주지 못하는 모양이다.

 

반면, 여성은, 이미지로서든 실제 모습으로든, 다양한 나이와 모습과 위치로 이 선집을 껴안고 있다. 다소 장난끼 서린「안개를 말하다」에 등장하는 열세명의 “그 女子”들은 그런 면에서 상징적이다. 『비타민 詩』에는 “새실새실 웃기만 하던 계집애”(「복사꽃 그늘에서」), “어스레한” “젖은 눈가”로 기억되는 “누이”(「추억, 지다」), “과부가 된 어린 각시”(「겨울 빗소리」), “잔술집 나이 든 주모”(「비 오는 날」)를 포함하여 수많은 여인들이 등장한다. 그래도 이들 중 어머니만한 여자는 없다.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존경은 신앙에 가깝다.『비타민 詩』는 “어머니의 자궁”(「먹통사랑」)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손맛”(「밥」)을 보다가, “어머니의 생”(「가을 들녘에 서면」)을 기억하는 것이 인생이라 말하고 싶어 한다. 시인에게 어머니는 근사한 자태로 아련한 미소만을 짓고 있는 초상화판 어머니가 아니라, 거친 삶에 “고단한 노동”으로 맞서는 용기 있는 어머니다. 이 어머니는 「숫돌은 자신을 버려 칼을 벼린다」에서처럼 “제 몸을 바쳐 저보다 강한 칼을 먹는 숫돌”과 같은 존재다. 그러나 어머니한테 주어지는 보상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가을 들녘에 비유될 때 어머니는 황금 들녘이 되지 못하고 “다 꺼내 먹은 김칫독,” “다 퍼내 먹은 쌀뒤주”가 되고, 가을 산은 “텅 빈 자궁”이 된다.

 

이런 식으로 감지되는 “있음”과 “없음”의 시적 긴장은 시집의 종반부까지 이어진다. 『비타민 詩』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야만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교조적인 시집이 아니다. 그러나 이 시집을 순서대로 읽다 보면 앞서 언급한 “있음”과 “없음”의 긴장이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시인의 시에 대한 근원적인 고뇌와 운명처럼 맞물려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 근원적인 고뇌란, 시인이 40년 넘게 시를 써오면서도 여전히 “시란 무엇인가?” “시를 쓰는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에 흡족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애절함이다. 「그런 詩!」는 이 두 질문에 대한 답 찾기의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응축하고 있다. 시인은, 한편으로는 줄이 풀어졌을 때 침묵하고 긴장했을 때 소리를 내는 거문고 같은 시를 꿈꾸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줄이 풀어졌을 때의 침묵마저 시로 울리는 순간을 고대한다. 그는 또한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축자적인 의미에 기대어 말의 길을 잘라내어 새로운 길을 내는 것이 시인의 업이라 여긴다.

 

인간의 보편적 상상력에 대한 도전하는 사람이 시인이라면 그는 시대와 불화할 수밖에 없고, “적막 속에서 꿈꾸고 있는 자”(「시인은 누구인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고독함이란 세상을 끌어안는 고독함이다. “세상이 다 제 것”인 부자가 시인이다. 그러나 시인은 한 곳에 머물러 소유를 주장하는 욕심쟁이여서는 안 된다. 한 곳에 머문다는 것은 다른 곳에서의 자유를 포기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시인은 “하늘과 땅 사이 헤매는 사람,” “죽도 밥도 없이, 생도 사도 없이 꿈꾸는 사람”(「시인」)이다. 이렇게 꿈꾸는 자에게 시란 과연 무엇인가? 홍해리 시인은 이 질문에 “마음의 독약 또는 영혼의 티눈 또는 괴꼴 속 벼알 또는 눈물의 뼈”(「나의 시 또는 나의 시론」)라는 말로 답한다. 쉽지 않은 말이다. 누구의 “마음,” 누구의 “영혼,” 누구의 “괴꼴,” 누구의 “눈물”을 지칭하는 것인가?

 

필자는 이 모호함이 시를 쓰는 사람과 시를 읽는 사람을 두루 아우르는 의도적인 모호함이라고 생각한다.『비타민 詩』의 마지막 시인「나의 시는 나의 무덤」은 그런 면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시 쓰는 것이 무덤 파는 일”. 그렇게 보기에는 시인이 삶에 대해, 자연에 대해, 시에 대해 느끼는 고뇌가 너무도 진지하고 치열하다. 이 진지함과 치열함을 감지해 낼 수 있는 독자만이 그의 시의 비타민을 제대로 섭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집은 모두를 위한 시집이지만 아무나를 위한 시집은 아니다.    

                                                        -월간『우리詩』(2009. 6월호)

 

* 시선집『비타민 詩』는 1998년『愛蘭』을 낸 후 오랜 공백 기간을 보낸 다음 새천년 들어 펴낸 세 권

의 시집(『봄, 벼락치다』(2006)『푸른 느낌표!』(2006)『황금감옥』(2008)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골라 엮은 시선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