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시> 수박을 깨자

洪 海 里 2009. 6. 12. 07:15

수박을 깨자

 

 洪 海 里

 

 

박수를 치면 손에서 수박 냄새가 난다

박수박수박수박수박수박!

짝이 없으면 짝짝 소리도 나지 않는다

박수가 무녀를 만나 손바닥으로 낳는 수박

자살을 입에 달고 못 죽어서 한이던 여자

한풀이하고 나서 이제는 살자! 살자! 야단이다

그렇다 무엇이든 안받음하는 법이니

살다 보면 살맛나는 맛살도 만나게 되지

죽자고 일만 하다 덜컥 죽어버린 사내

옆집에 살던 竹子 고년을 만나 

잘 익은 수박이라도 하나 쩍 소리나게 쪼개서

쟁반에 안다미로 담아 놓고

빨간 속살을 뭉텅뭉텅 물어뜯었던가

쩍 벌어진 입속이 빨갛게 타는 수박

한평생 익힌 사리가 박혀 있는 수박

단단한 흑요석 이빨이 반짝이는 수박

가슴속에 바다가 들어 있는 수박

태평양 검푸른 파도가 껍질을 뚫고 나와

출렁출렁 가슴까지 넘실대고 있는 수박

출렁이는 배에 통통배가 떠 있는 수박

세계 지도가 둥둥 떠다니고 있는 수박

불쑥 쑥불 피워 놓고 모기를 쫓으면서

한밤에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어차피 소주가 주소가 되는 세상

'수박수박수박수박수박수박수박수!'

올여름엔 수박을 끌어안고 박수를 치자

한여름밤 달콤한 꿈속에서도

운 좋으면 박수 만나 수박도 얻어먹고

하얀 이불 홑청에 오줌을 쏘는 수박

내일 아침 키 쓰고 소금 얻으러 갈 수박

신나게, 신나게 수박을 깨자

무작정 신나게 깨지는 수박을 위하여 박수!

 

 

* 이곳에는 시집에 넣지 않은 작품을 다시 올려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요즘 수박이 한창이다.

어릴 적 친구네 원두막에서 밤을 새며 수박밭을 지키다 심심하면

다 파먹은 수박투구에 소주를 쏟아붓고 마시곤 했지.

달콤할 줄 알았던 수박 맛은 어디로 가고 술맛이 그렇듯 씁쓸하던지.

원두막 아래 피워 놓은 모깃불도 사그러들고

잠을 자다 보면 오줌이 마려워 자주 깨던 기억이 새롭다.

글을 쓴답시고 배를 깔고 엎드려 각본을 쓰고 추석 때 동네 아이들을 모아

신파조 연극을 하던 추억은 가끔 나를 고향으로 데리고 간다.

어릴 때 이웃에 '죽자'(다께꼬)라는 이름을 가진 계집애가 있었다.

성이 '나' 씨면 '나죽자'가 되니 이름 치곤 고약한 이름이다.

'나 죽자, 너 죽자!'고 밤낮없이 싸움이나 하면서 살 팔자가 아닌가.

일언이폐지하고, 이름만으로는 '眞愛'가 좋은데 성이 조 씨라면 '조진애'가 되고 만다.

좋은 이름을 가지고 평생을 신세 '조진 애'로 살아야 할 테니 작명한 사람이 얼마나

야속할 것인가. 요즘이야 개명을 쉽게 할 수 있어 다행이긴 하지만.

一言居士가 들으면 또 한마디 거들 테니오늘은 수박이라도 하나 사다 놓고 쩍 갈라 빨간 속살을 뭉텅뭉텅 깨물고 싶다.

까만 씨앗을 멀리멀리 뱉어보고 싶다.

오늘은 신나게 수박을 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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