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시> 그리움 詩 몇 편

洪 海 里 2009. 8. 3. 11:23

그리움을 위하여
 
                         洪 海 里 
   
 
  서로 스쳐 지나면서도
  만나지 못하는 너를
  보고 불러도 들리지 않는 너를
  허망한 이 거리에서
  이 모래틈에서
  창백한 이마를 날리고 섰는 너를 위하여,

  그림자도 없이 흔들리며 돌아오는 오늘밤은 시를 쓸 것
만 같다 어두운 밤을 몇몇이 어우러져 막소주 몇 잔에 서
대문 네거리 하늘은 더 높아 보이고 두둥럿이 떠오른 저
달도 하늘의 술잔에 젖었는지 뿌연 달무리를 안고 있다
잠들기 전에 잠들기 전에 이 허전한 가슴으로 피가 도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

  네 속에 있는 나를
  내 속에 있는 너를
  우린 벌써 박살을 냈다.

  아득한 나의 목소리
  아득한 너의 목소리
  아득한 우리 목소리.

  돌아가야지 돌아가야지
  썩은 사과 냄새에 취해
  나는 내 그림자도 잃고 헤매임이여.

  흙벽에 등을 대고 듣던
  새벽녘 선한 공기를 찍는 까치소리
  한낮 솔숲의 뻐꾸기 울음
  그믐밤 칠흑빛 소쩍새 울음.

  보리푸름 위 종달새 밝은 봄빛과
  삘기풀 찔레꽃의 평활 위하여
  이 묵은 시간 거리의 떠남을 위하여.

               - (시집『우리들의 말』1977)

 

 

그리움 

- 愛蘭 

                  洪 海 里
   
 
밤하늘
반짝반짝
날고 있는
새.

그 새 날개 타고
황금벌판을 가는
한 마리 눈먼
섬.

           - (시집『愛蘭』1998)

 

그리움
 
                   洪 海 里) 
   
 
그의 투명한 성에 피어 있는
성에 같은
하늘꽃자리.

            - (시집『투명한 슬픔』1996)

 

그리움
 
                洪 海 里
   
 
대추꽃의 초록이나
탱자꽃의 하양,

들장미의 빨강이나
석류꽃의 선홍,

아니면
싸늘하나 따스히 녹는,

아이스크림같은
안타까움 한 줌.

      - (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그리움

- 비진도 에서
 
                        洪 海 里
   
 
이승 저승 따로 없는 바다에서는

물너울 너훌너훌 그 앞에서는

사랑도 미움도 매한가진데

숨기고 폭로하고 대들고 용서하고

울면서 웃어 주고 죽으며 사는 사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리운 사람

시작과 끝 따로 없는 바다에 와서

그 사람 생각나네 그리워지네.

                - (시집『淸別』1989)

 

 

 * 어느 집 추녀 아래 '그리움'이란 명패를 달고 오돌오돌 떨고 있는 내 새끼들을 만났다.
반갑기도 하고 안되어 보이기도 해서 업어 오고 싶었다.
그리움이란 말을 참으로 여러 번 써 먹은 것이 탄로나고 말았다.
아마 더 찾아 보면 여기저기 숨겨진 것들이 속속 드러나리라 생각된다.
그리움을 빼면 나의 시에서 무엇이 남을까, 내게서 무엇이 남을까?

기왕에 이렇게 까발겨질 바에야 홀딱 벗은 들 어떻겠는가.

그래서 '태그'에 '그리움'을 집어넣어 보니 실로 엄청나다.

이렇게 많이 그리움을 울궈 먹었는가 나 자신도 믿기지 않는다.

그리움을 빼고 나면 나는 물주머니, 아니 술주머니, 아니면 텅 비어 있는 밥통일까?

 

위의 시편들은 70년대, 80년대에 쓴 것으로 시잡지에 발표된 것들입니다.

물론 시집에도 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