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시> 방짜징

洪 海 里 2009. 8. 25. 09:58

방짜징

 

洪 海 里

 

죽도록 맞고 태어나

평생을 맞고 사는 삶이러니,

 

수천수만 번 두드려 맞으면서

얼마나 많은 울음의 파문을 새기고 새겼던가

소리밥을 지어 파문에 담아 채로 사방에 날리면

천지가 깊고 은은한 소리를 품어

풀 나무 새 짐승들과

산과 들과 하늘과 사람들이 모두

가슴속에 울음통을 만들지 않는가

바다도 바람도 수많은 파문으로 화답하지 않는가

나는 소리의 자궁

뜨거운 눈물로 한 겹 한 겹 옷을 벗고

한평생 떨며 떨며 소리로 가는 길마다

울고 싶어서

지잉 징 울음꽃 피우고 싶어

가만히 있으면 죽은 목숨인 나를

맞아야 사는, 맞아야 서는 나를

때려 다오, 때려 다오, 방자야!

파르르 떠는 울림 있어 방짜인

나는 늘 채가 고파

 

너를 그리워하느니

네가 그리워 안달하느니!

 

《『우리詩』2009. 8월호》

 

 

* 시 읽기

 

  ‘죽도록 맞고 태어나 평생을 맞고 사는 삶,이란 얼마나 잔혹한가?  달군 쇠는 맞아야 강한 법! 징은 어느 대장장이의 가학적 사랑으로 태어난, 맞는 것이 평생의 업인, ‘수천수만 번 두들겨 맞으면서, 울음의 파문으로 소리의 밥을 짓는 신령한 공기(空器)이다. 그 공기는 아무 것도 담겨있지 않은 빈 그릇이다. 그 빈 그릇엔 밥이 가득 들어있다. 그 밥은 귀로 먹는 소리의 밥이다. 파문에 담아 채로 두들겨 사방에 날리면/ 천지가 깊고 은은한 소리를 품어/ 풀 나무 새 짐승들과/ 산과 들과 하늘과 사람들이 모두/ 귀로 듣고, 울음통 뜨거운 가슴으로 먹는 소리의 밥이다.

 

  ‘바다도 바람도 수많은 파문으로 화답하,고 급기야 소리의 자궁으로 거듭 태어나는 징! 자궁이란 신성 모태이며 창조를 의미하는 것. 그럼 시인은 징의 몸을 빌려 말하고 싶은 것 무엇일까?  채로 징 지잉 징 태질하며, 가혹하게도 가혹하게도 나를 담금질하며 /뜨거운 눈물로 한 겹 한 겹 옷을 벗고/ 한평생 떨며 떨며 소리로 가는 길마다 울고 싶어서/ 지잉 징 울음꽃 피우, 며 찾아가는 구도의 길 무얼까?

 

  징이란 시인의 정신세계를 감정이입한 객관상관물이다. 시인은 징의 몸을 빌려, 소리의 자궁이 되어, 남자의 몸으로 애를 낳고 싶다. /가만히 있으면 죽은 목숨인 나를/ 맞아야 사는, 맞아야 서는 나를/ 때려 다오, 때려 다오, 간청하며 ‘지잉 징 울음꽃 피우,며 찾아가는 구도의 길!  

 

  詩만이 시인을 구원한다면, 운명처럼 시를 쓸 수 밖에 없다면 /너를 그리워하느니/ 네가 그리워 안달하느니!/ 詩여, 불멸의 시여, 내게로 오라. 나 죽어도 좋으니, 얻어맞아 죽어도 좋으니, 방짜징 울림통으로, 길고 긴 여운으로 내게로 오라!  

시인의, 물의 뼈, 옹골찬 詩心이 /온몸에 확, 성냥불 그어/ 스스로의 몸이 다비식인/ 고추잠자리처럼 새붉다/    - 조삼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