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이 가을 다시 읽어 보는 입맛나는 시, 쪽쪽쪽, 쪽쪽!

洪 海 里 2009. 9. 6. 09:10

 '홍해리洪海里 시인이 말하는 시인은 누구시길래?'

 

가을의 기운이 제법 느껴지는 요즘,

사색의 계절, 가을이 오면 탱글탱글 잘 여문 시를 읽고 싶어집니다. 

한 번 두 번 읽어 본 시의 맛이 그리워 다시 또 읽고 싶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지금 바로 그런 시의 맛이 견딜 수 없이 감돌아 여기 그 시의 맛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작년이던가 '홍해리 시인이 사랑한 여인은 누구시길래'라는 제목으로 존경하는 홍해리 시인이 사랑한 여자에 관한 추적을 정리한 적이 있었는데 그로 부터 몇 개월 뒤 후속으로 오늘은 '홍해리 시인이 말하는 시인은 누구시길래'라는 제목으로 새글을 올려봅니다.

한 시인과 그가 쓰는 시를 지독하게 사랑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해야 할 독자로서의 덕목은 사랑하는 시인의 시를 꾸준히 읽고 또 읽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시인에 대한 존경심과 좋은 시를 열심히 읽는 예의를 생각하지 않는 독자는 진정한 독자가 아닐 것 입니다. 

그래서 홍해리 시인이 평소에 마음에 두고 있는 '시인詩人'에 대한 심상을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시의 얼굴의 실체에 대하여  쓰신 시들을  다시 소개해 봅니다.

 

[홍해리 시인이 사랑한 여자는 누구시길래]

[홍해리 시인이  말 하는 시인은 누구시길래]

'시와 시인'이란 관계를 이해하면서 두 글을 비교하면 무척 재미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이동 골짜기 洗蘭軒에서 난초 이파리 씻으며 시를 쓰는 무소유의 소유를 업으로 진경산수 한 폭,

적멸의 여백 속에 독야청청 詩맛 오감에 도통한 洪海里 시인께서 필삭筆削을 등지고 이 아련한 봄날

'그녀가 보고 싶다' 고백하시니 나는 갑자기 커지는 동공 속으로 이러한 시말을 추적해 봅니다.

그렇다면 홍해리 시인이 미치도록 보고 싶다는 그녀는 누구일까?

「참꽃여자 15」에서의 (시집『봄, 벼락치다』가운데 18쪽) 산문山門에 낯 붉히고 서 있는 사미니도 아닐 것이고,

목련 아파트 101동 1001호에서 창 밖만 바라보던 눈먼 소녀는 더더욱 아닐테고(시집『봄, 벼락치다』가운데 16쪽),

화포花砲 터지는 날 무화과無花果 한 알 달고 있는 생과부 같은 저 여자도 아닐테지요(시집『봄, 벼락치다』가운데 39쪽 「꽃 진 봄」). 그렇다면 초록치마 빨강저고리 차림으로 기쁜 대낮의 저 여자란 말인가?  아닙니다. 

 아무렇게나 내팽개진 장미꽃 같은 저 여자는 분명히 아닐 것 입니다. (시집『봄, 벼락치다』가운데71쪽 "6월")

나이 들어도 늙을 줄 모르고 달래야! 한마디에 속치마 버선발로 달려 나오는그 여자? (시집『봄, 벼락치다』가운데95쪽 (「참꽃 여자 8」) 그 여자도 아닐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아, 생각이 납니다. (『우리詩』 2007년 12월호 12쪽 「석류」에 나오는  입술 뾰족 내밀고 있는 얼굴이 동그란 그 여자?

그 여자도 아니라면 (『우리詩』 2008년 3월호 62쪽, 『참꽃여자 6』)에서의 불같은 사랑, 물 같은 사람, 그리움은 또 어디로 흘러갈 것이랴.

수즙고 수즙어라, 그 여자. 이 여자입니까 ?

시집 『봄, 벼락치다』가운데 88쪽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라는 시,

'눈멀면 꽃 지고 상처도 사라지는가// 욕하지 마라 산 것들 물오른다고/죽을 줄 모르고 달려오는  저 바람/~~~/허기진 가난이라면

 또 어떻겠느냐/ 윤이월 달 아래 벙그는 저 빈 자궁들/ 제발 죄 받을 일이라도 있어야겠다/~~~/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

홍해리 시인이 이렇듯 절절하게스리 풀어 놓는 평생 가슴에 담아놓은 그녀는 누구일까?

선명한 주홍색으로 흐드러지게 피는 참꽃 같은 잊혀진 여인들이 아니라면 도데체 누구란 말입니까?

자, 이제 그녀의 실체를 벗겨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녀가 보고 싶다 / 洪海里

 

 

크고 동그란 쌍거풀의 눈

살짝 가선이 지는 눈가

초롱초롱 빛나는 까만 눈빛

반듯한 이마와 오똑한 콧날

도톰하니 붉은 입술과 잘 익은 볼

단단하고 새하얀 치아

칠흑의 긴 머리결과 두 귀

작은 턱과 가는 허리

탄력 있는 원추형 유방

연한 적색의 유두

긴 목선과 날씬한 다리

언듯 드러나는 이쁜 배꼽

밝은 빛 감도는 튼실한 엉덩이

주렁주렁 보석 장신구 없으면 어때,

홍분 백분 바르지 않은 민낯으로

나풀나풀 가벼운 걸음거리

깊은 속내 보이지 않는

또깡또깡 단단한 뼈대

건강한 오장육부와 맑은 피부

한번 보면 또 한번 보고 싶은

하박하박하든 차란차란하든

품안에 포옥 안기는 한 편의 시 詩.

(시집『봄, 벼락치다』가운데  42쪽 )

 

하하하, 그러면 그렇지!

홍해리 시인이 그처럼 미치도록 사랑한 그녀는 바로 시詩란 것을 왜 몰랐던고!

홍해리 시인이 바람의 말, 비의 말, 빛의 말들 후리며 자연과 더불은 세계와의 상면 속에서 읽혀지는 시말,

그녀라는 주체적인 감각은 유희가 아닌 존재론적인  문명에 이르는 창조적인 시 의식이 아니겠는지요.

 

홍해리 시인은 시집『봄, 벼락치다』 가운데 20쪽「그런 시詩」에서

 

거문고가 쉴 때는

줄을 풀어

절간 같지만

노래할 때는 팽팽하듯이

 

그런 시詩!

 

말의 살진 엉덩이이에

'묵언默言'의 화인火印을 찍는다

언어言語

도단道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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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言 寺의 住持

 

말을 빚는

比丘다   

(시집『投網圖』(1969)중에서「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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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 갈아 허리차고

바람따라 길을 가다

 

시흥이 도도하면

나무 깍아 한 수 적고

 

한 잔 술 거나해서

노을 베고 자리하면

 

저 하늘 깊은 골에

떠 오르는 그믐 달  

(시집『투명한 슬픔』(1996)중에서 「詩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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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길

암흑의 갱 속

반짝이는 언어의 사금

불도 없이 캐고 있는

이,

 

가슴엔

아지랭이

 

하늘엔

노고지리    

(시집『愛蘭』(1998)중에서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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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속에

암자

 

암자 속에

비구니

 

비구니의

독경

 

독경의

푸른

빛   

(시집『隱者의 북』(1992)중에서「詩 한 편」)

 

은밀한 자궁 속에서, 깊이를 잴 수 없는  암흑의 갱 속에서 반짝이는 언어의 사금을

홍해리 시인은 조심스럽게 캐고 있습니다.

이러한 홍해리 시인의 詩 빚기는 푸른 빛 독경이랄 수 있는 종교적인 의미까지를 내포하고 있는 도도한 작업입니다.

 

또,  홍해리 시집『봄, 벼락치다』가운데 135쪽「필삭筆削」이라는 시에서,

 

철새는 천리 먼 길 멀다 않고 날아간다

길 없는  길이 길이라 믿고

 

팔사적必死的이다.

 

더 쓸 것 쓰고 지울 것 지우며

막무가내 날아가는 시인詩人의 길,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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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이 살라는데 시는 써 무엇하리

흘러가는 구름이나 바라다 볼 일

산속에 숨어 사는 곧은 선비야

때 되면 산천초목 시를 토하듯

금결 같은 은결 같은 옥 같은 시를

붓 꺾어 가슴 속에 새겨두어라.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중에서 「詩丸」의 일부)

 

 

우이동 골짜기 洪海里 암자 같은 洗蘭軒의 蘭丁 홍해리 시인은 난초밭 일궈 놓고 금결, 은결, 옥결 같은 시를 詩丸으로 빚어 왔는데,

이러한 시의  환약은 속진에 찌든 사람들 머리와 마음을 깨끗히 낫게 해 주는 신묘한 비방인 것 입니다.

이제 2008년도 가을 쯤에 세계의 시단에서 유사 이래로 최초의『비타민 詩』을 만들어

현대인들의 육신과 정신건강을 치유하며 오염된 정서를 말끔히 다스린다고 하시니  이 또한 새로운 시의 모색이 아니겠는지요.

 

내가 존경하는 홍해리 시인은

수천수만 개의 꽃등을 단 옥매원玉梅園의 밤,  매화나무 향이 날리는 꽃 그늘 아래 꽃잎 띠운 술잔을 기우리며 꽃 속에 긴 머리 땋아 내린 노랑저고리의 소녀가 꽃의 중심中心을 잡는 시를 쓰고 있는 것 입니다.

별로 돈이 될 것도 없는 시를 무엇 때문에 그리 고생하면서 쓰고 있는 것일까?

무소유의 소유를 업으로 하기에 눈 내리는 바람 찬 겨울 밤에도 창 밖으로 흐르는 세월을 내다 보며

깊은 시상詩想에 잠기시는 것일까.

도저한 무게로 또 건너야 할 강을 얼마나 건너야 하는 것일까.

지금, 칠흑의 도끼로 내리찍는 밤의 비명은 분명히 한 편의 시가 탄생하는 고고한 탄성이려니.

아, 시인다운  시인이시여.

洪海里 시인이시여.

눈부신 시를 많이 써 주세요. 시위를 당기는 힘으로 힘으로.

 

  

 

 

 


 

'홍해리洪海里 시인이 말 하는 시인은 누구시길래'

 

크고 동그란 쌍거풀의 눈

살짝 가선이 지는 눈가

초롱초롱 빛나는 까만 눈빛

반듯한 이마와 오똑한 콧날

도톰하니 붉은 입술과 잘 익은 볼

단단하고 새하얀 치아

칠흑의 긴 머리결과 두 귀

작은 턱과 가는 허리

탄력 있는 원추형 유방

연한 적색의 유두

긴 목선과 날씬한 다리

언듯 드러나는 이쁜 배꼽

밝은 빛 감도는 튼실한 엉덩이

주렁주렁 보석 장신구 없으면 어때,

홍분 백분 바르지 않은 민낯으로

나풀나풀 가벼운 걸음거리

깊은 속내 보이지 않는

또깡또깡 단단한 뼈대

건강한 오장육부와 맑은 피부

한번 보면 또 한번 보고 싶은

하박하박하든 차란차란하든

품안에 포옥 안기는 한 편의 시 詩.

 

이 시는 2006년 6월에 펴낸 시집『봄, 벼락치다』가운데「그녀가 보고 싶다」( 42쪽) 라는 詩이다.

그렇다, 진경산수 한 폭 寂滅의 여백 속에 오로지 독야청청 詩맛 五感에 道通하신 홍해리 시인은 '시'라는 신비한 존재를 애간장 녹이듯 절절하게 보고 싶은 여자, '품안에 포옥 안기는 詩'라고 우리를 깜쪽같이 골린 일이 있다. 

 

그렇다면, 홍해리 시인이 말하는 '시인詩人'은 어떤 존재일까?  홍 시인이 발표한 시작품을 중심으로 탐색해 보기로 한다. 

먼저, 오는 10월 17일 경기도 파주 적성 벽지 어유중학교에서 벌어지는 가을 <어유문학제> 에 초대 받으시고 임보, 나병찬 시인과 함께 눈망울 초롱초롱한 어린 학생들 앞에서 낭송하실「시인이여 시인이여」라는 詩부터 살펴보기로한다.

 

 

시인이여 시인이여

 

말 없이 살라는데 시는 써 무엇하리

흘러가는 구름이나 바라볼 일

산속에 숨어 사는 곧은 선비야

때 되면 산천초목 시를 토하듯

금결 같은 은결 같은 옥 같은 시를

붓 꺾어 가슴속에 새겨두어라.

 

시 쓰는 일 부질없어 귀를 씻으면

바람소리 저 계곡에 시 읊는 소리

물소리 저 하늘에 시 읊는 소리

티없이 살라는데 시 써서 무엇하리

이 가을엔 다 버리고  바람 따르자

이 저녁엔 물결 위에 마음 띄우자. 

 

 

이 시는 홍해리 시인이 1994년 펴낸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가운데「시인이여 시인이여 -詩丸」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삶에 대한 가치관이 침몰되어가고 사회적인 갈등을 겪고 있는 오늘날 피폐한 현대인들의 정신과 심성을 정화하면서 치유할 수 있는 '비타민 詩'로 정리해 본 시가 아닌가 추측된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낭송해 주기에 아주 적절한 시로 생각된다.

이 시는 작가 자신이 살고 있는 詩의 나라 우이도원 골짜기 옥매원玉梅園 세란정사洗蘭精舍를 배경으로 무소유의 삶을 소유하며 시업에 정진하고 있는 작가의 일상으로 줄창 울리는 귀북소리를  쓴 시로 생각된다.

7.7조 율격으로 지어진 이 시는 운율과 리듬이 가곡으로 만들어지면 참 고아롭고 정서적인 노래가될 것으로 생각되기도한다.

이 시에서,

 

"말 없이 살라는데 시는 써  무엇하리 

 흘러가는 구름이나 바라볼 일" 이라는 시말은 월간『우리詩』2008년 3월호 58쪽, '시야! 한잔하자!' 라는 홍해리 시인의 글 속에서

"나는  아직 시인詩人이 못 되었음을 오늘의 시인時人으로서 시인是認하는 일이 너무나 시인猜認하지만 어쩔수 없다. 詩답지 않은 글로 시답지 않은  짓거리를 하고 있으니 스스로 한심할 따름이다. 그렇다고 시인矢人이 될 자질이나 능력도 없다. 시인이 무엇인가, 말의 화살이나 만들어 날리며 말장난이나 하는 사람인가?"라는 표현으로 자기를 낮추어 스스로 겸손해 하는 겸허한 그 자신의 선비다운 성품으로 지은 미덕의 시말일 뿐, 사실은 詩人으로서 시다운 글을 써야 한다는 의지의 패러독스로 풀이할 수 밖에 없다.

그의 시「물의 뼈」중에서

 

'물이 절벽을 뛰어 내리는 것은 

목숨 있는 것들을  세우기 위해서다" 

 

(중략)

 

"막지 마라 

물은 갈 길을 갈 뿐이다"

 

홍해리 시인의 숙명적인 힘은 시 쓰기에 몰두하는 그의 탱탱한 열정이며 동시에 위에서 소개한「물의 뼈」라는 시에서 보여주는 확연한 그의 강열한 힘의 의지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흘러가는 구름이나 바라 볼 일'이 아니다.

1975년 두 번째로 만든 시집『花史記』가운데「다시 가을에 서서」라는 시에서

 

   "샐비어 활활 타는 길가 주막에

  소주병이 빨갛게 타고 있다

  불길 담담한 저녁 노을을

 유리 컵에 담고 있는  주모는

 루비 영롱한 스칼릿 세이지 빛

 반짝이는 혀를 수없이 빨고 있다

 

(중략)

 

 꽃잎은 천의 바다를 눈썹에 이고

 서른하나의 파도

 허허한 내 오전의 미련을

 부르르 부르르 경련을 하게 한

 

홍해리 시인이 서른한 살 한창 젊은 나이로 박재륜, 양채영 시인과 교우하며 충주, 청주를 배회하며 샐비어 꽃무더기 새빨갛게 와와~ 함성으로 활활 불타 오르던 날의 부르르 부르르 경련을 하게 하던 것도 바로 시를 쓰는 숙명적인 힘이 아니겠는가.

서른 하나 한창 젊은 나이 파도로 일렁이던 그의 피빛 뜨거운 외침은 아직도 그의 열정 속에 살아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홍해리 시인은 시말이 유희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시말이 존재론적 운명에 이르는 시말임도 잘 알고 있다.

그는 그 자신의 영혼이 세계와의 상면 속에 이루어지는 주체적 감각과 사유를 지독하게 사랑하고 있는 시인이다.

그것은 그의 버릴수 없는 자존심이기도 하다.

시를 쓴다는 것 그것은 소멸과 생성을 거듭하는 영원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은유다.

'모과' 라는 과일을 보고 그가 지은 시의 시말 가운데

 

 " 속내 드러내지 않고

   떠나간 자리

   오래오래 번지는 추억이라는 향香' 이라고 매듭을 짓는다.

 

그렇다, 시인으로서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으려는 조용하고 수줍은 품성 그것이 바로 그가 시를 대하는 겸손한 태도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엘리엇이 남긴  말 처럼 "가장 시인다운 시인은 자기 자신에 관하여 쓰고 동시에 자기시대를 그린다."

 홍해리 시인은  蘭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가르켜 蘭丁이라 한다.

2008년『우리詩』' 5월호 권두언에서  "난은 선이며, 생명이며, 인식이며, 조화며, 통일이며, 철학이며, 예술이며, 인격이며, 정신이며, 농사며, 종교이며, 군자라고 극찬하면서,(12쪽)에서 '난은 詩이다" 라고 귀착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난을 가꾸고 씻기는 난정이 시인이라는 말에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난을 가르켜 녹색의 보석이라 하듯이 시도 녹색의 보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후에 우편배달되어 온 시집, 2008년 10월호를 펴 본다.

홍해리 시인의 글 권두시론 "명창정궤明窓淨궤'를 읽어 본다.

9쪽에 달하는 장문이어서 여기에 전문을 올리기에 벅차서 '명창정궤' 가운데  시에 관한 명석한 홍 시인의 금쪽 같은 글만을 뽑아서 실어본다.

 

'목제소를 지날 때면 나무 살 냄새가 향긋하다.

나무의 피 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로 시작되는 긴장감을 주는 좋은 글이다.

 

시인은 양파를 까는 사람이다

양파의 바닥을 찾아야 한다

양파의 바닥까지 천착해야 한다

철저히 벗겨 양파의 시작/씨앗/정수/처음을 찾아야 한다

늘 처음처럼 시작始作/試作/詩作해야 한다.(8쪽) 

 

매화나무가 폐경기가 되었지만 해마다 봄이면 이팔청춘이다

(중략)

오늘은 귀로 향기를 맡고 싶다

노매 같은 시인을 만나 고졸한 시 한 편 듣고 싶다.(9쪽)

 

시인은 죽으면 신이 된다 

시를 버리면 사람만 남고

사람을 버리면 시만 남도록

시와 사람이 하나가 되어 신으로 탄생된다.((9쪽)

 

수평선 끝을  잡고 해를 걷어 올려라

너의 넋을 잡고 매달려라

시가 걸릴 것이다.(10쪽) 

 

모든 예술이 놀이이듯

시 쓰는 일도 영혼의 놀이다

시는 내 영혼의 장난감

나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린이

나의 시는 울퉁불퉁하다

그래서 자박자박 소리가 난다.(10쪽)

 

맨발로 뛰어가는  발자국 소리

그것이 시였다.(10쪽)

 

바다에 묻은 푸르고 깊은 그리움

숨비소리로 뱉어내던 쉰 목소리

그것이 한 편의 시였다.(11쪽)

 

바람호수가 없으면 

붕어는 어디서 사나

죽은 붕어는 시가 아니다.(11쪽)

 

가는 현의 찬란한 울림의 시 한 편이 관 속에 놓일까

바람 가는 길을 따라 무작정 가고 있다.(12쪽)

 

어디선가 눈 속에서 새 한 마리 울고 있다

시 한 마리 따라 울고 있다.(12쪽)

 

그늘이 짙으면  풀이 나지 않는다

시도 싹을 틔우지 않는다.(12쪽)

 

시  한 편을 가지고

시집에 넣기 전 마지막으로 손을 본다

손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파여 있는 굽은 길이 보인다

손금이다.(12쪽)

 

살기 위해서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서

잘 죽기 위해서 시를 쓰는 일이란 다짐을

다시 한 번 다져 본다.(13쪽)

 

하루살이 떼 같은 군상을 내려다 본다

허상이다

나의 시가 늘 그렇다.(14쪽)

 

그리움은 그리움대로 두고

어딘가로 스치듯 하루가 진다

쓰지 못한 시가 노을따라 지고 있다.(14쪽)

 

나무 속에서 봄이 노는 소리 들린다

다시 붓을 들어라.(15쪽)

 

우주의 자궁은 늘 열려 있다

냉수로 눈을 씻고 마음을 행구고 손을 모아라

새벽 세시 우주와 독대하라.

 

시를 쓰는 것은 육체가 행하는 것처럼 숨쉬고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영혼의 행위다

어떤 곡해나 구속도 용납되지 않는다

시 쓰기는 영혼의 자유 선언이다

시란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다

늘 설레고 한 편 한 편으로 완성되는 이별이기 때문이다.(15쪽)

 

그렇다. 홍해리 시인의 시작업은 일종의 성스러운 종교의식 같은 것이다. 

새벽 세시, 차거운 냉수로 의식을 깨우고 마음의 때를 말끔히 씻어 내고 靜座處에서 우주와 독대하면서 시를 생각하는 것, 이는 詩에 도통한 詩仙이 아니고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 편의 시를 짓는 것은 이리도 엄숙한 것이 아니겠는가.

 

누굴 위해 시를 쓰는 것은 아니다

시詩는 시적是的인 것임을 시인詩人으로서 시인是認한다

생전에 상을 받을 일도, 살아서 시비를 세울 일도 없다

상賞으로 상傷을 당하고 싶지 않고 시비詩碑로 시비是非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

시인은 새벽 한 대접의  냉수로 충분한 대접을 받는다

시는 시로서, 시인은 시인으로서 존재하면 된다

그것이 받을 보상이다.(15쪽)

 

여시아문如是我聞!

 

목숨이 내 것이듯 시도 갈 때는 다 놓고 갈 것이라고 한다. 허상을 쫒지 아니하고 실상을 깨우치며 오로지 올곧은  선비의 양심과 정신으로 시 쓰는  일에 수고를 다 한다는 것, 그것이 시인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맑은 정신이라고  말 한다.

오늘날 시인은 넘쳐나도, 시가 넘쳐나도 참다운 시인과 시가  잘 보이지 아니하는 때에 맑은 명경을 들여다 보는 마음이다.

가슴을 훑어내리는 금쪽같이 귀한 참다운 시를 위한 아포리즘이 아닌가 생각된다. 

시의 원초적인 참다움은 무엇일까.

허술한 생각으로 스스로 묘혈墓穴을 파는 마른 울음을 우는 어리석은 시인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홍해리 시인이 2006년 6월에 펴낸 시집『봄, 벼락치다』가운데 20쪽「그런 시詩」에서 처럼 

 

"거문고가 쉴 때는

줄을 풀어

절간 같지만 

노래할 때는 팽팽하듯이,

 

그런 시詩" 를 쓸 일이다.

홍해리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른다.

 

 

시를 찾아가는 그대에게

 

초례청에 선 너의 자만을  몰아내고

너 자신을 적멸사막에 위리안치하라

간단없는 움직임으로 멈출 수 있도록

목첩에 닥친 어둠을 뚫고 또 뚫어서

홀연 새벽 빗장 여는 소리 들릴 때까지

마음속에 숨은 무명 스스로 빛날 때가지.

 

깊은 여행 속으로 빠져들어 가라

버리고 온 발길을 찾아 명부까지

천의 계단 오르고 올라

돌계단이 다 닳아 버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때까지.

(2006년 6월 간행된 홍해리 시집『봄, 벼락치다』67쪽「시를 찾아가는 그대에게」전문) 

 

마지막으로 홍해리 시인이 시로 쓴 시인에 대한 시론을 소개해 본다.

홍해리 시인이 생각하고 있는 시인은 누구인가?

그는「시인」이라는 시(2008년년 4월에  펴낸 시집『황금감옥』가운데 117쪽)에서 시인에 대한 초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시도 때도 없어,

세월이 다 제 것인 사람

 

집도 절도 없어,

세상이 다 제 것인 사람

 

한도 끝도 없이,

하늘과 땅 사이 헤메는  사람

 

죽도 밥도 없이,

생도 사도 없이 꿈꾸는 사람. 

 

 

그런가 하면 시인은 누구인가라는 시론을 보면,

 

바람이 자고 가는 대숲은 적막하다

 

적막, 한시에 적막한 시가 나온다

 

시는 우주를 비추고 있는 별이다

 

시인은 적막 속에서 꿈꾸고 있는 자.  라고 말 하고 있다.  (2008년 4월 출간한 시집『황금감옥』118쪽)

 

또 그런가 하면 시는 어디에 있는가 라는 의문에 대하여 홍해리 시인은 이렇게 시론을 펼치고 있다.

 

내일이 대설大雪

구름 사이 햇빛, 우레가 울어

시가 눈앞에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는 눈 뒤에 있었다

눈 뒤에는 하늘이 끝이 없다

포경선을 타고 작살을 던진다

고래를 잡으려고, 고래는 없다

시는 손 안에 있는 줄 알았다

손바닥에는 텅 빈 하늘만 춥다

발바닥에 길이 있고 강물이 흐른다 

산맥이 뻗어 있고 불의 집이 있다

시는 집에 없고 불만 타 오르고 있다.

 

아하!, 시는 거기에 있었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난다.

시를 쓰는 일이 밀가루 반죽이거나 마구 잘려진 나무 토막이거나 금가고 깨진 대리석 덩이거나 

아무렇게나 흩어진 동판이나 쇳조각이거나 낙화유수 이 강산을 물들이거나 흐흐 백년을 가도 제 자리인 달팽이처럼 나의 일생을 할喝할 푸른 혓바닥을 위하여 소금을, 왕소금을 듬뿍듬뿍 뿌리는 일이라고 홍해리 시인은 말한다. 

 

그는 그의 시집『황금감옥』129쪽에 나오는「나의 시 또는 나의 시론」이라는 시에서 시의 세포적인 인자에 대하여

 

마음의 독약

 

또는 

 

영혼의 티눈

 

또는

 

괴골 속 벼알

 

또는

 

눈물의 뼈.  라고 시말을 말 하고 있다.

그렇다. 과연 시란 눈물의 뼈 같은 존재일까?

그렇다면 그의 시「물의 뼈」에서 처럼 목숨 있는 것들을 세우기 위하여 절벽을  뛰어 내리고 싶어진다.

 

가을이다. 누가 뭐래도 이제 그 지긋지긋하던, 대책없던 여름은 사라지고 완연한 가을이다.

느슨하던 마음과 정신에 제법 찬 기운이 돈다.

마지막으로 홍해리 시인이 가을을 노래한 입맛 나는 시 탱탱한 시 한 편을 소개하면서 홍해리 시인의 시인 산책을 여기서 맺을까 한다.

 

갈시詩

 

가을이 오자

탱글탱글 여무는

부사리의 불알

불알 속의 탱탱한 불꽃

불꽃이 담금질하는 창 끝

창 끝에 걸린 하늘

하늘의 쪽빛

쪽쪽쪽, 쪽쪽! 

 

 

 글/ 손소운孫素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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