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시집『투명한 슬픔』(1996)에서 · 2

洪 海 里 2009. 10. 17. 05:51

 

꽃 지는 날 / 홍해리

 

마음에 마음 하나
겹치는 것도 버거워라

누가 갔길래
그 자리 꽃이 지는지

그림자에 꽃잎 하나
내려앉아도

곡비 같은 여자 하나
흔들리고 있네.

 

 

북한산 牛耳洞 / 홍해리

 

새벽마다 비단길로 집 나서는 한 사내
그 사내 가는 곳은 꼭두서니 바람길
지천으로 널린 것이 이승의 미늘이나
어차피 사랑이란 상사화 같은 것을
종일토록 바윗덩이 먼지 속을 뒹굴다
찌든 때 잔뜩 지고 靑山에 들면
꽃구름 피워 놓고 맞아 주는 다순 품.

 

 

5월 우이동 / 홍해리

 

꽃들이 사태지듯
색깔을 풀어……

혼자서 애운하여
창문을 여니

마른 목 꺾어 보는
먼 산 뻐꾸기

둥둥둥 북을 치는
찬란한 山河.

 

                                                                             이생진 시인님

 

牛耳洞 詩人들 / 홍해리

 

시도때도없이 인수봉을 안고 노는
도둑놈들

집도절도없이 백운대 위에 잠을 자는
도둑놈들

죽도밥도없이 우이천 물소리만 퍼마시는
도둑놈들

풀잎에도 흔들리고 꽃잎에 혼절하는
천지간에 막막한

도둑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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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깃불을 피우며 / 홍해리

 

길가 잘 자란 다북쑥을 잘라 모았다
보릿집 불을 피워 쑥으로 덮으면
하늘 가득 별들이 쏟아져 내리고
앵앵대며 무차별 폭격을 하던
저 무정한 모기 떼가 눈물을 찍는
한여름밤 모깃불 향기로워라
오늘은 허위허위 고개 넘고 물 건너
강원도 홍천 고을 산마을에 와서
매캐한 쑥 타는 냄새에 다시 어려
옥수숫대 넘겨다보는 고향을 가네.

 

                                                  임보, 홍해리 시인님

 

찬란한 세상 / 홍해리

 

소리는 귓속에 집을 짓지만
귓속에 들어가 보면
소리는 하나도 없다
사랑은 사람소리
떡에는 떡메소리
엿장수는 가윗소리
파도는 물소리를 소유하지만
모두 다 비웠을 때
비로소
소리의 집은 소리로 차서
소라껍데기 같은 이 귀가 빛난다
비어 있는 여자들의 소리는 귀에서 나와
이 세상을 찬란히 채운다.

 

Untitled

 

영혼의 사리 / 홍해리

 

눈물이 얼마나 단단한 강철인가
아는 이는
죽음이 얼마나 편안한 꿈인가를
알 수 있으리

온 길을 되짚어 가는 일도
때로는 절벽 어둠의 길
평정의 봉긋한 봉분을 짓고
대지를 한 벌의 수의로 삼아

갈대들이 흔드는 발마소리
강을 건너 억새밭을 오르는
달도 이울어 밤이 오면
고요로운 휴식의 품으로

꺼이꺼이
되돌아갈 일이네
이 청정한 가을날
눈물 같은 하늘 아래.

 

Pilgrims at Namtso

 

몸꽃은 꽃무덤에서만 핀다 / 홍해리

 

여학교에는 계절이 없다
여름 가을 겨울이 모두 봄이다, 꽃피는 봄

춘삼월 연분홍 진달래
어릿어릿 비린내 어질머리
주근깨 박박 4월 철쭉
백목련 심장 위에 떨어진 자목련 한 잎
수수꽃다리에서 흑장미까지

하얀부처대가리꽃에 똑 떨어진 진홍의 장미꽃잎 하나
메밀꽃바다에 뜬 꽃다발
찔레꽃 눈부신 하늘로 기어오르는 칡꽃
싸리꽃 밭머리 흰구름장 위로 날아가는 제비꽃
목화꽃 피는 밤의 춘향의 젖꼭지꽃

동백꽃 금낭화 땅비싸리 해당화
덩굴광대수염 며느리밑씻개
앵초 자운영 앉은부채 엉겅퀴
처녀치마 갯패랭이 자주꼬리풀
동자꽃 분홍연꽃 왜노루오줌풀
달구지풀 날개하늘나리 ……

이름만으로도 詩가 되는 꽃들이여
몸꽃은 꽃무덤에서만 피는가.

 

Untitled

 

/ 홍해리

 

나비의 꿈을 엮다
나비가 되는 일
노래를 엮다
노래가 되고
학을 흉내내다 학이 되는 일

사위 속에 멈추고
정지 중에 이어지는
찰나와 영원
솟구치고 가라앉는
흐름과 멎음

물소리 그러하고
바람소리 그러하고
불길이 모여
빛으로 흘러가는
지상의 이 순간

영원을 타고 앉아
손끝에 피워 내는
꽃 한송이
빙그르르
도는
우주.

 

man with a silver cup

 

나무에게 경배를 / 홍해리

 

 

한 그루 나무로 서고 싶네

땅 속 깊이 뿌리 박고
푸른 하늘에 손을 흔드는

때가 되면
아낌없이 나뭇잎을 떨어뜨려
시린 발등을 덮어주고

겨우내 하얀 잠 속에 빠져
모두 잊어버리는 망각의 여유와

푸르른 녹음으로
지친 영혼을 쉬게 하는

연초록 고운 이파리
칼보다 강한 봄날의 나무이고 싶네

사람이 사람이기를 포기한
인간들이여

녹색, 초록빛에의 외경심으로
푸른 풀, 나무에게 경배하라

그대의 조상이요, 힘이요, 원천이요, 역사인
세월이 가면 화석이 되고, 다시
생명의 불을 밝혀 줄

먼먼 한 그루 나무이고 싶네.

 

 

무선 호출기 / 홍해리

 

사람들 모여 사는 사랑마을에
한울님 홀로 계신 환한 마을에
삐삐, 삐이삐이, 삐삐삐-----
시도 때도 없이 신호를 보내면
슬픔은 슬픔에게 천둥으로 뛰어가고
고통은 고통에게 진눈깨비로 내려 쌓이고
밤은 밤에게 먹장구름으로 울고 있다
마음은 마음에게 삐이 삐이거리다 말고
배꼽은 배꼽에게만 신호를 보내고 있다
절망이 절망에게 무릎을 꿇듯
장미꽃은 장미꽃에게 무릎을 꿇듯
죽음 또 다른 죽음에게만 가 닿는지
어둠이 어둠에게 번쩍번쩍 칼을 날리고
하얀 눈이 시새워 내린 밤에도
그 아름답고 황홀하던 小雪날에도
내 가슴의 삐삐는 울리지 않았다
찌르르 찌르르르 가슴에 오는 전율
더운 사랑의 꽃소식은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사람들에게만 삐삐거리고
한울님은 혼자서 낑낑거리고
거리의 가로등이 꺼져버린 밤
하늘에 반짝이는 적십자
높이 솟아 반짝이는 빨간 십자가
홀로
삐이삐이 졸고 있다.

 

Rajastan Men

 

한겨울 시편 / 홍해리

 

가야지 이제 가야지 하면서도
막상 떠날 생각 털끝만큼도 없는데

북한산 깊은 골짝 천년 노송들
가지 위에 눈은 내려 퍼부어

한밤이면
쩌억 쩍 뚜욱 뚝 팔 떨어지는 소리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더니
누구의 뜻으로 눈은 저리 내려 쌓이고

적멸의 천지에 눈꽃은 지천으로 피어서
우리들을 세상 밖으로 내모는가.

 

  

洪海里 시인

블로그/ http://blog.daum.net/hong1852

카페  / http:// cafe.daum.net/urisi

* 동산 최병무 시인의 블로그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