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에서

洪 海 里 2009. 10. 16. 04:22

 

   洪海里 시인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서문 / 난초밭 일궈 놓고 

  지난 '92년에 펴낸『은자의 북』에 이어 열 번째 시집
『난초밭 일궈 놓고』를 이번에도 80편의 작품으로 엮었다.
작품들은 지난 번의 시집에 수록된 시편들과 별 차이가 없다. 

작품의 배열도 호흡이 짧은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긴 작품의 

순서로 한 것도 동일하다.

  詩는 짧고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러나 주제가 미리 정해진 경우에는 시가 자꾸 길어지는 

병폐가 내게 있다. 

이것을 치유할 비책을 찾아 다음에 내는 시집은 정말 짧고 

재미있어 읽히는 작품만으로 엮고 싶다.
시를 쓰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詩는 사람이 피워내는 꽃이요, 영혼의 사리이다. 

필생의 화두인 業이다.

  그 동안 <牛耳洞 畵室>에서 지내다 창을 열면 북한산의

仁壽, 白雲, 萬景이 품에 안기는 곳에 <우이동 시인들>의

작업실 <시수헌>이 마련됐다. 산도 가깝고 하늘도 가까운,
정말 시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흐뭇할 따름이다.


  이번에는 李生珍 시인이 표지를 꾸며 주시고, 시와 시 

사이의 빈 자리는 사랑하는 제자 朴興淳 화백이 메워 주었다.
고맙고 고마운 일이다. 한 방에서 살고 있는 이생진, 林步,
채희문 시인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여기 적어 남긴다.

 

1994년 봄 詩壽軒에서 

洪海里 적음.

 


사람의 힘 / 홍해리

 

섬에서 염소 풀어 방목을 하면
스스로 풀 뜯으며 흘레를 하여
파도소리조차 새까맣게 들리는
염소섬이 되어 버리지

몇 해 후면 한밑천 잡는다지만
그러나 어느 날엔가
염소들은 씻긴 듯이 사라져 버리고
파도자락만 쓸쓸히 섬기슭을 핥고 있지

사람들은 편리한 대로
적자생존이라 말들 하지만
누구일까
그 많은 염소로 보신을 한 이는

때가 되면
스스로 쓰러져 썩어가는
밀림의 나무들
누가 있어 그들의 영혼을 불러 가나.

 

 

북한산 - 가을나라 / 홍해리

 

저것들도 바야흐로 대선정국이구나
옻나무 화살나무 단풍나무 은행나무
피나무 느릅나무 고로쇠 상수리
마침내 북한산 나라 안이 온통 난리구나
다람쥐 토끼들도 놀라서 눈이 동그랗고
뻐꾸기 꾀꼬리 다 돌아간 자리
산비둘기 동고비 입만 딱 벌렸구나
옻나무는 변치 않는다 빨갛게 소리치고
화살나무는 소리없이 화살만 날리고
은행나무는 금빛 손바닥을 번쩍이고
느티나무도 무섭게 공약을 쏟아 붓고 있구나
기온은 점점 떨어져 곤두박질치고
하릴없이 풀잎들만 소름이 돋는구나
낙엽 쌓이는 산길 외로운 골짜기까지
바야흐로 대선정국이구나 민주주의여.

 

 

단소산조短簫散調 / 홍해리

 

바닷가 청대밭의 천년 파도야
굵은 숫대들을 싸고 울었더니라
말없이 여왕처럼 솟은 암대 한 그루
萬古靑靑 푸르름으로 서서 기다리면서
대통 속에 靑山流水를 기르고 있었더니라.

마침내 임자 만나 님의 손길로
뒤에 하나 앞에 네 개 指孔을 파니
한 자 네 치 몸 속에서 솟구치는 恨
입김따라 손길따라 목이 취해서
한 마당 千年風流 뿜어 나오다.

가슴으로 흔은히 흐르는 영롱한 가락
지그시 감은 눈길 귀기 서릴 때
지공 짚은 손끝마다 신명이 지펴
떨리는 가락으로 펼치는 저 비단길
살로 아닌 뼈로 우는 저 머언 소리.

자지러지듯 흐느끼듯 절절이 울어
장송을 감싸 안는 흰 구름장 위
황토빛 맨발 청상 서룬 하늘빛
울먹일 듯 울먹일 듯 이승 저승을
녹아나는 애간장아 열두 간장아.

기러기 하늘에 달이 오르고 / 홍해리

 

바람결마다 구름이 물드는
가을도 가고

말도 못하고 겨울을 맞아
맨살로 터지네

눈만 내놓고 우는
앙상한 밤에

팽팽한 빗소리
속절없이 젖는데

무엇으로 마른 영혼을 가리우랴

지상의 저 끝 어디쯤
누가 등 하나 닦고 있는지

기러기 하늘에 달이 오르고

가슴마다 환한 불
따뜻이 켜지네.

 

 

마지막 고백 / 홍해리

 

엊저녁 밤새도록 인수봉과 연애를 하고
백운대랑 사랑을 하여 애 하나 낳아
흰구름 배를 지어 초록 바다에 띄우자
우주가 춤을 추며 빙글빙글 돌았다.

사랑이란 지지고 볶고 긇이는 일
삶이란 굽고 삶고 튀기고 찌는 일
오늘은 그대 가슴 깊숙이 등 하나 달고
단내나는 더운 바람 뿜어대 볼까.

 

 

서울 낙타 - 바보에게 / 홍해리

 

모래폭풍 속으로 떨어지는 태양
뜨겁게 쏟아지는 물없는 바다를
막막히 걸어가는 머나먼 사막길.

있는 짐 다 지고 휘여휘여 등이 굽은
끝없이 끝없이 가는 서울 사막길 
낙타를 지고 가는 선한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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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 색계 / 홍해리

 

벌거벗은 꽃의 알몸을 안고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바람
제풀에 혼절하여 넋이 나간
무작정 흔들리며 돌고 있는----.

 

 

첫눈은 신파조로 온다 / 홍해리

 

드디어
그대가 오고
신파조로
첫사랑 순정으로

처음 그대를 맞는
떨리는 눈빛
속살빛 바람

무슨 명사가 필요하랴
아니, 감탄사가 필요하랴
설레이는 부끄러움

촉촉한 입술 사이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어
천지가 향기롭구나

휘청대는 대지 위
목숨 걸고 내리는 너
언뜻 와 닿는
서늘한 손길

네 눈빛이 터져
허공에 뿌려지는
여기는 
백옥의 궁전
그대는 초야의 왕비

눈을 감고 있어도
더욱 황홀한 영혼으로
그대는 온다
신파조로
첫사랑 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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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다에 가서 / 홍해리

 

세월이 무더기로 지는
겨울바다
아득한 물머리에 서서

쑥대머리
하나
사흘 밤 사흘 낮을
이승의 바다 건너만 보네

가마득하기야
어디
바다뿐일까만

울고 웃는 울음으로
빨갛게 타는
그리운 마음만 부시고

파도는 바다의 속살을 닦으며
백년이고 천년이고
들고 나는데------

까마아득하기야
어찌
사랑뿐일까 보냐.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 용담龍膽 / 홍해리

 

떠나가도 눈에 선히 밟히는 사람아
돌아와 서성이는 텅 빈 안마당에
스산히 마른 가슴만 홀로 서걱이는데
소리치며 달리던 초록빛 바람하며
이제와 불꽃 육신 스스로 태우는 산천
서리하늘 찬바람에 기러기 떠도
입 꼭꼭 다물고 떠나버린 사람아
달빛에 젖은 몸이 허기가 져서
너울너울 천지간에 흐늑이는데
잔치집 불빛처럼 화안히 피어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하리라'
떠나가도 눈에 선히 밟히는 사람아.

 

* 용담의 꽃말 :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시인이여 시인이여 - 詩丸 / 홍해리 

 

말없이 살라는데 시는 써 무엇 하리
흘러가는 구름이나 바라다볼 일
산속에 숨어 사는 곧은 선비야
때 되면 산천초목 시를 토하듯
금결 같은 은결 같은 옥 같은 시를
붓 꺾어 가슴속에 새겨 두어라.


시 쓰는 일 부질없어 귀를 씻으면
바람소리 저 계곡에 시 읊는 소리
물소리 저 하늘에 시 읊는 소리
티없이 살라는데 시 써서 무엇 하리
이 가을엔 다 버리고 바람 따르자
이 저녁엔 물결 위에 마음 띄우자.

 

 

 

洪海里 시인

블로그/ http://blog.daum.net/hong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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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산 님의 블로그(http://blog.daum.net/dongsan50)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