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逍遙
洪 海 里
한로寒露 부근이면
햇빛은 맑다 못해 투명 그 자체,
햇살은 칼날, 그러나
햇볕 속에서는
원형의 꿈이 절로 익어
안개 가득한 지상에서
또르르르 굴러가는 소리
겨울의 적막을 미리 길어 올려
숲 속 구석구석 묻어 놓는 다람쥐
눈빛이 나뭇잎을 물들게 하지만
사람들은 가슴속 빈자리마다
상처 입은 영혼의 멍에를 메고
아프다 아프다 떠나가는
묵언의 절간
하늘에 흐르는 한가로운 흰구름장.
* 이곳에는 아직 시집에 넣지 않은 작품을 한 편씩 올려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한평생 사는 것이 소요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여기 저기 왔다갔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걷다 뛰다 기다 날다, 이것 저것 잡았다 놓았다, 이 사람 저 사람 만났다 헤어졌다, 칼날이었다 바위였다, 물이었다가 불이었다가, 바람이었다가 먼지였다가, 한점 흰구름이 되어 지상에 내려 한가로이 소요하다 가는 것이 아닌가!
이제 나도 늦가을의 꽃 다 진 거리를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혼자 걷고 있다.
고맙다, 세상!
경향신문 김창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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