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면 / 홍해리
열린 하늘이 그리워
눈을 감으면
저 멀리 펼쳐진 세상
낯설음과 낯익음 사이
줄없는 지연처럼
세월은 흘러만 가는데
그리움은 안개처럼 피어 오르고
쓸쓸함은 는개처럼 젖어 내리고
제 무게에 겨운 사랑
스스로 어쩌지 못해
텅 빈 사막을, 홀로,
헤매는 낙타 한 마리.
투명한 신방 / 홍해리
너무 맑아 되려 푸른 날
하늘은 고요 그것
나무마다
구멍을 다 열어 놓고
바람의 신랑을 맞고 있다
푸른 신방의 향기
바위가 흔들!
온 산이 들썩!
구름도 흔들!
천지가 들썩!
바람맛을 본 나무들
혼침, 고요가 되다.
가을 끝에 서서 / 홍해리
서리 하늘
찬 바람
허연 억새꽃
귀밑머리
휘모리로
가는 세월을
매듭 짓지
못한 채
흘리고 있어
예불 끝난
절 마당
한가로운가.
흰 구름
점점이 펴
저녁 한때를
천년
침묵 속에
잠재우는데
한천에
날아드는
저녁 새소리
경전,
한 장 한 장
넘기고 있다.
가을이 가기 전에 / 홍해리
1
그대가 오기 전부터
우리는 흥분했었네
그대의 고운 발목을 잡고
옷을 벗기고 있었네
시체에 달려드는
세렌게티 평원의 하이에나처럼
독수리 떼처럼
살부터 내장까지
피 한 방울
뼈 하나 남기지 않고
알뜰히도 먹어치웠네
가을은 아예 없었네.
2
산에는 낙엽이 지고
계곡에 물도 말랐네, 이제
산에 오르기도 힘이 드는데
벗을 것 다 벗고
버릴 것 다 버려야지
적빈한 마음 하나로
깊은 잠에 들어야지
찬 이슬에 씻은 영혼,
푸른 하늘의 흰 구름장과
가지 끝의 까치밥 한 개로
적막 속으로 침잠해야지
가을이 가기 전에.
까아옥까아옥 /홍해리
까마귀가 까아옥까아옥 웁니다
다른 까마귀가 따라 웁니다
또 다른 까마귀가 흉내냅니다
물빛 그리움도 죽었습니다
까악까악 하늘이 까맣게 물듭니다
햇빛 한 줄기도 죽었습니다
까아르까아르 까옥대는 소리밖에
까마귀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까아욱까아욱거리는 까마귀 소리,
사랑도 새까맣게 타들어 갑니다
세상이 새카맣게 타들어 갑니다
까옥까옥까르까르까악까악깤깤!
가을을 보내면서 / 홍해리
-立冬
온 세상이
빨갛게,
잘
익은 것 보았습니다.
낙엽 깔린 스산한 길,
급하게 달려오는
칼 찬 장군의 말발굽 소리 들리고,
영혼의 밑바닥에
은빛 그리움을 채우고 있는,
흰 이빨 드러낸 나무들,
가지마다 꿈을 안고
바위에 몸을 기대고 있습니다.
하늘도
쨍!
소리를 내며
나지막이 걸려 있습니다.
洪海里 시인
블로그/ http://blog.daum.net/hong1852
카페 / http:// cafe.daum.net/urisi
* 최병무 시인의 블로그(http://blog.daum.net/dongsan50)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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