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 / 홍해리
부르릉부릉 낡은 오토바이의 새벽 세 시
툭! 하고 내려앉는 신문의 새벽 세 시
매화나무 톡! 풍경 건드리는 새벽 세 시
우주가 화들짝 눈을 뜨는 새벽 세 시.
친구를 찾아서 / 홍해리
먼저 간 친구를 찾아 산을 오르는데
도랑가 물봉선화가 빨갛게 피어
개울개울 흘러내리는 물소리와
참나무 그늘을 밝히고 있었네
오래 전에 가신 어머니 곁
쑥 억새 바랭이 방가지똥
얼크러져 부산을 떠는 자리
때늦은 꿩이 한번 울고 갔다
'얼굴을 만들어야지' 하며 바쁘던,
평생을 뛰면서 살다 가버린 친구
작은 돌 하나 뉘어 놓고 잠들었네
좋아하던 소주 한잔 따라 놓고
북어포 하나 앞에 펼치니
친구는 왜 왔냐며 반기는 듯,
마음만 부자였고
늘 빈 세상을 살았던 친구
한세상 사는 일이 무엇이라고
더 살아 다를 것이 없었던 걸까
참나무 그늘이 짙어 시원한데도
꽤나 마신 술에 얼굴이 벌개져서
우리는 흔들리는 발걸음으로
도랑도랑 흐르는 물소리 따라
두런두런 산길을 내려올 때
물봉선화도 빨갛게 취해 있었네.
어머니들 / 홍해리
김가네 울타리에는
목 잘린 해바라기 대궁 하나 서 있고,
이가네 밭에는
옥수수 이파리 바람에 부석거리고,
박가네 산에는
알밤 털린 밤송이만 굴러다니고,
최가네 논두렁에는
빈 꼬투리만 콩대에 매달려 있고,
홍가네 담에는
호박넝쿨 가을볕에 바싹 말라 있고,
지가네 논에는
텅 빈 한구석 허수어미 하나 서 있네.
* 허수어미 : 허수아비의 상대어가 없기에 만든 조어임.
비밀 / 홍해리
그 여자 귀에 들어가면
세상이 다 아는 건 시간 문제다
조심하라 네 입을 조심하라
그녀의 입은 가볍고 싸다
무겁고 비싼 네 입도 별수없지만
혼자 알고 있기엔 아깝다고
입이 근지럽다고
허투루 발설 마라
말 끝에 말이 난다
네 말 한 마리가 만의 말을 끌고 날아간다
말이란 다산성이라 새끼를 많이 낳는다
그 여자 귀엔 천 마리 파발마가 달리고 있다
말은 발이 없어 빨리 달린다, 아니, 난다
그러니 남의 말은 함부로덤부로 타지 마라
말발굽에 밟히면 그냥 가는 수 있다
그 여자 귓속에는 세상의 귀가 다 들어 있다
그 여자 귀는 천 개의 나발이다
그녀는 늘 나발을 불며 날아다닌다
한번, 그녀의 귀에 들어가 보라
새끼 낳은 늙은 암퇘지 걸근거리듯
그녀는 비밀肥蜜을 먹고 비밀秘密을 까는 촉새다
'이건 너와 나만 아는 비밀이다'.
꽃이 지고 나서야 열매를 맺다니 / 홍해리
하루에도 열두 번씩
너를 보고 싶었다
마음만 마음만 하다
눈멀고 귀먹고
마음이란 것
참으로 아무것도 아니구나
꽃 지고 나서야
열매를 맺다니
꽃이 피면 뭣 하나
꽃 지면 뭘 해?
洪海里 시인
* 동산 님의 블로그(http://blog.daum.net/dongsan50)에서 옮김.
카페 / http:// cafe.daum.net/ur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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