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지옥 · 봄 / 홍해리
서방님! 하는 아주 고전적인 호칭으로
산문에 들어서는 발목을 잡아 세워서
삼각산 바람소린가 했더니
사방을 둘러봐도 아무도 없고
꽃 속의 부처님만 빙긋이 웃고 있네.
-월간『우리詩』(2009. 5월호)
봄밤의 꿈 / 홍해리
백목련이 도란도란
달빛과 놀고 있고,
가지 사이 달물이 흥건히 흘러들어
젖꼭지 불어터지라고
단내 나라고
바람은
밤새도록 풀무질을 하고 있었나 봐
삼각산 위에 떠 있는 뽀얀 달
졸린 눈을 끔벅이고 있어,
며칠인가 했더니
여월如月 보름.
독작하는 봄 / 홍해리
앵앵대는 벚나무 꽃그늘 아래
홀로 앉아 술잔을 채우다 보니
무심한 바람결에 꽃잎 절로 날리고
마음은 자글자글 끓어 쌓는데
가슴속 눌어붙은 천년 그리움
절벽을 뛰어내리기 몇 차례였나
눈먼 그물을 마구 던져대는 봄바람
사랑이 무어라고 바르르 떨까
누가 화궁花宮으로 초대라도 했는가
시린 허공 눈썹길에 발길 멈추면
사는 일 벅차다고 자지러드는 날
햇빛은 초례청의 신부만 같아
얼굴 붉히고 눈길 살풋 던지는데
적멸보궁 어디냐고 묻지 말아라
네 앞에 피어나는 화엄/花嚴을 보라
마저 피지 못한 꽃도 한세상이라고
꽃은 절정에서 스스로 몸을 벗는다
왜 이리 세상이 사약처럼 캄캄해지나
무심한 바람결에 꽃잎만 절로 날리니
달뜨는 마음 하나 마음대로 잡지 못하네.
혼자 / 홍해리
올갱이 원조라는 상주집에서 쫓겨나고
버섯찌개가 유명하다는 경주집에서도
아침부터 문전박대, 푸대접 받고,
'1인분은 안 되는데요!'
문전걸식을 하는 것도 아닌데
혼자 가면 밥도 팔지 않는
혼자 왔다 혼자 가는 세상,
내가 밥이다.
* 이제는 '元朝집'에도, '有名屋'에도 가지 말고 시장골목의 허름한
국밥집이나 찾아가야겠다.
순대국이나 콩나물해장국, 아니면 시래기해장국으로 쓰린 속이나
풀어야겠다.
'어, 시원하다. 주모, 여기 막걸리 한 되 추가요!'
홍해리 시인
카페 / http:// cafe.daum.net/ur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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