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 날다 / 홍해리
웃는 걸까
우는 걸까
웃음이 울음 속으로 들어가고
울음이 웃음 밖으로 나오니
이승인지 저승인지 모를 일,
바람 따라 온몸을 흔들면서
때로는 허리 꺾어 몸을 뉘고
산이 떠나가도록 고함을 친다
그 소리에 문뜩 산이 지워진다
굽이치는 것은 은빛 강물 소린가
천파만파 파도 치는 소리인가
하늘과 땅이 구분 없이 흔들리고 있다
한여름 우렛소리 어디 가 잠들었다
눈물 마른 꽃잎 사이사이 반짝이고
굽이굽이 지나쳐 우는 듯 웃는 듯
우련우련 드러나는 산그림자
일장 춘몽을 깨우고 있는 것인지
추풍 낙엽을 쓸고 있는 것인지
울긋불긋 나뭇잎 다들 떠난 자리
바람 불 때마다 억새가 톱니를 갈아
칼날 같은 날개로 날아오르고 있다
희미한 달빛도 몸무게 많이 줄었다.
11월을 노래함 / 홍해리
- 낙엽
울며불며 매달리지 마라
의초롭던 잎의 한때는 꿈이었느니
때가 되면 저마다 제 갈 길로 가는 법
애걸하고 복걸해도 소용없는 일
차라리 작별인사를 눈으로 하면
하늘에는 기러기 떼로떼로 날고 있다
한겨울에 꼿꼿이 서 있기 위해, 나무는
봄부터 푸르도록 길어올리던 물소리
자질자질 잦아들고 있다
몸도 마음도 다 말라버려서
비상 먹은 듯, 비상을 먹은 듯
젖은 몸의 호시절은 가고 말았다
무진무진
살아 보겠다고 늦바람 피우지 마라
지빈하면 어떻고 무의하면 어떠랴
어차피 세상은 거대한 감옥
너나 나나 의지도 가지도 없는
허공의 사고무친 아니겠느냐
축제는 언제나 텅 빈 마당
파장의 적막이 그립지 않느냐
죽은 새에게는 하늘과 땅의 경계가 없듯
모든 것이 멀리 보이고
나도 이제 멀리 와 있다
세상의 반반한 것들도 어차피 반반.
곶감[串枾] / 홍해리
줄줄이 엮여
처마에 타래타래 매달린,
한로寒露가 환갑이라지만
그렇다고 들피진 것은 아닌,
홀딱 벗은 속살
전신에 흰 꽃이 피어난,
꼬리에 불붙은 개호주 등에
울던 아기 올라타고 꿈속을 날고 있다.
구두끈 / 홍해리
저녁녘 집으로 돌아오는 길
구두끈이 풀어져
걸치적거리는 것도 모르고
허위허위 걸어왔다
나이 든다는 것이 무엇인가
묶어야 할 것은 묶고
매야 할 것은 단단히 매야 하는데
풀어진 구두끈처럼
몸이 풀어져 허우적거린다
풀어진다는 것은
매이고 묶인 것이 풀리는 것이고
질기고 단단한 것이 흐늘흐늘해지는 것이고
모두가 해소되고, 잘 섞이어지는 것이다
몸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구두끈도 때로는 풀어져
한평생 싣고 온 짐을 부리듯
사막길 벗어나는 꿈을 꾸는 것을
나는 이제껏 모른 채 살아왔다
끈은 오로지 묶여 있는 것이 전부였다
구속 당하는 것이 유일한 제 임무였다
풀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몸으로 제가 저를 잡고 있어야 하지만
끈은 늘 풀어지려고 모반을 꾀하고
헐렁해지고 싶어 일탈을 꿈꾼다
때로는 끈을 풀어 푸른 자유를 줘야 하는데
지금까지 나는 구속만 강요해 왔다
이제 몸도 풀어 줘야 할 때가 된 것인가
오늘도 구두끈이 풀어진 것도 모르고
고삐 없는 노마駑馬가 되어
휘적휘적 걸어서 어딘가로 가고 있다.
퇴고 중 / 홍해리
나의 시는 퇴고 중,
자궁 속에 품고 있을 때나
세상에 드러내고 나서나
또는
시집 속에 위리안치해도,
영원한 미숙아
아직 태어나지 않은 詩 아닌 詩,
양수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洪海里 시인
블로그/ http://blog.daum.net/hong1852
카페 / http:// cafe.daum.net/urisi
* 최병무 시인의 블로그(http://blog.daum.net/dongsan50)에서 옮김.
* 좌로부터 李茂原, 林步, 洪海里 시인(牛耳桃源 '三角山詩花祭'에서)
* 이무원 시인(2009년 봄 牛耳桃源에서)
* 내 친구 李茂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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