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시> 한 끼 식사 外 6편

洪 海 里 2009. 11. 26. 03:56

 

한 끼 식사 / 홍해리

 

겨우내 이 나무 저 나무로

동가식서가숙하던

직박구리 한 쌍

매화꽃 피었다고 냉큼 찾아왔다

 

여름도 한겨울이던 50년대

물로 배를 채우던 시절

꿀꿀이죽은 꿀꿀대는 소리가 나긴 했지만

맛이야 꿀맛이 아니었던가

 

가지마다 사푼사푼 옮겨앉아

꽃치마 속에 뾰족한 부리를 박고

쪽쪽, 쪽쪽! 빨고 있다

참 아름다운, 황홀한 식사다

 

놀란 꽃송이들 속치마까지 홀홀

벗어 던지니

이른 봄날 마른 하늘에 눈 내린다

금세 매화나무 배불러 오겠다.

 


 

빈집에는 그리움이 살고 있다 / 홍해리 

 

발자국 소리 가까이 오고 있는지

찻소리 들리는지

귀마다 가득가득 이명이 울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앞산을 바라보나

첩첩하기 그지없고

하늘을 올려다봐도

막막하기 하릴없다.

 

여보세요, 계세요, 문을 두드려도

개 짖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쥐 죽은 듯 하오의 햇살만 놀고 있는

텅 빈 마당 한 켠

살구나무가 주인을 기다리다

팔을 뻗어 바깥세상으로

살구 몇 알 떨어뜨렸다.

 

 

달개비꽃 피었다 / 홍해리

 

언제 쪽물을 다 뽑아다 꽃을 피웠느냐

여리디여린 물 같은 계집아

네 머리에는 하늘이 내려와

나비날개를 펼쳐 놓았다

모진 세월 멀리 돌아온 사내

허공 한 번 쳐다보고 너 한 번 바라본다

대낮에도 감추지 않고 당당히 드러낸

은밀한 네 쪽문이 환히 열려 있다

한여름 땡볕에 발가벗겨 내던져도

끄떡도 하지 않는 질긴 계집, 너

저를 뭘로 보느냐고 물었지

물로 본다고 대답은 했지만

발딱발딱 일어서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네 앞에 무릎 꿇어 삼배三拜를 올리고 싶은

해 지고 나서 설핏한 시간

물가 정자에서 시를 읊던 적선謫仙

나비날개로 부채질을 하다

낮에 마신 술이 좀 과했는지

계집의 쪽치마를 끌어다 입술을 닦고 있다.

 

 

* 三拜 : 身 · 口 · 意의 三業에 敬意를 표하여 하는 배례. 

 

                  - 계간『시와인식』(2009. 겨울호)

 


 

아슬아슬 / 홍해리

 

천 길

낭떠러지

보일락말락,

 

이파리

한 장으로 가린

꽃.

 

 

 

추락 / 홍해리

 

새가 떨어졌다.

 

양 떼를 몰고 가는

미루나무 가로수 길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솔거의 노송이 아닌

미루나무에 앉으려다

탁! 하고 그림*에 부딪힌 새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잠깐 노을에 정신을 놓고

적막처럼 찌부러진 새

정신이 들자 이내 날아오른다

제 세상은 푸른 하늘이지

가난한 화실이 아니라고,

 

새가 날아갔다.

 

   * 박흥순 작,「천진의 인상」2003년

 

 

오동나무 사리 / 홍해리

 

삼각산 도선사 앞 산록

옛 암자터

백년 된 오동나무 성자가 서 계시다.

한때는 까막딱따구리의 집이 되어 주던 나무,

속살로 새끼를 품어 기르던 때

그때가 한때였을까.

지금은 사리로 서서 화엄의 경을 펼치고 있다.

자연의 조화를 보여 주기 위해

자연의 질서를 설법하기 위해

죽어서도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온몸이 하나의 흰 뼈다.

천년의 자연은 이런 것이라고, 그리고

천년의 순환을 보여 주기 위해

평생 단벌로 살다 가신 스님

죽어서도 환하게 웃고 계시다.

 

 

나를 이사하다 / 홍해리

 

한평생이 꿈이었다 말하지 말라

꿈의 먼지였다,

먼지의 꿈이었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먼지가 구석구석 뽀얗게 쌓여

온몸이 먼지의 왕국이다.

요염한 먼지의 나라,

은밀한 먼지가 지천인 세상이다.

 

먼지의 부피

먼지의 무게

먼지의 압력

도저히 떠메고 갈 수가 없다.

 

한평생이 한 알 먼지였으니

바람 불고 비 오는 날 

나를 이사하리라

먼지 인 시간의 영원 속으로!

      -『우리詩』(2009. 11월호)

 

 

洪海里 시인

블로그/ http://blog.daum.net/hong1852

카페  / http:// cafe.daum.net/urisi  

* 동산 최병무 시인의 블로그(http://blog.daum.net/dongsan50)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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