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 』2016

<시> 길은 살아 있다

洪 海 里 2010. 1. 15. 03:48

 

길은 살아 있다

 

洪 海 里

 

길이 방긋방긋 웃으며 걸어가고 있다

보이지 않는 길에도

날개와 지느러미가 있어 날고 기고 헤엄친다 

길이 흐느끼며 절름절름 기어가고 있다

길이 바람을 불러 오고 물을 흐르게 한다

꽃도 길이 되어 곤충을 불러 모은다

길은 긴 이야기를 엮어 역사를 짓는다

길에는 길길이 날뛰던 말의 발자국이 잠들어 있다

길이길이 남을 길든 짐승의 한이 서리서리 서려 있다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몸에 길이 있다

영혼도 가벼운 발자국으로 길을 낸다

태양과 별이 지구를 향해 환한 길을 만든다

시간은 영원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길이다

기다리는 길이 끊어지고 사라지기도 한다

발바닥 아래 생각이 발딱거리며 가고 있다

사랑도 이별도 길이 되어 멀리 뻗어나간다

사람도 길이 들고 길이 나면 반짝이게 된다

눈길 손길 발길 맘길로 세상을 밝힌다

가장 큰 길은 허공과 적막이다

발자국은 앞서 가지 못한다

길은 따뜻하다.


- 시집『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도서출판 , 2016)

                     -월간《우리詩》2012.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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