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 읽기(시집」愛蘭』1998) · 2>
너의 존재
왜 자꾸 가슴 시린 별이 되려 하는가 절절히 눈물겨운 묵언默言의 패찰 차고 함께 가는 길 따라 소진되는 그림자 맑게 우는 영혼의 상처와 아픔 속 먼먼 추억이 되려 하는 그대여 왜 자꾸 가슴 시린 별이 되려 하는가.
지는 꽃을 보며
외롭지 않은 사람 어디 있다고 외롭다 외롭다고 울고 있느냐 서산에 해는 지고 밤이 밀려와 새들도 둥지 찾아 돌아가는데 가슴속 빈 자리를 채울 길 없어 지는 꽃 바라보며 홀로 섰느냐 외롭지 않은 사람 어디 있다고 외롭다 외롭다고 울고 있느냐.
상강霜降에도 난은 피어
찬 서리 지천으로 내려 쌓여도
온 산천 불이 붙어 눈을 데이네
타는 가슴 목마름을 어이하리야
불끈 새벽 이 하늘을 어이하리야
불끈 새벽 이 하늘을 어이하리야.
춘란소심 개화
아지랑이 아른아른 복사꽃 허공
피가 도는 산자락 눈푸른 바람
그 바람 입김따라 여린 꽃대궁
바르르 떨고 있는 눈물빛 입술.
난에게
난은 울지 않는다 그립고 그리우면 눈물 같은 꽃을 올린다 말없는 향이 천리를 밝힐 때 천지 가득 흐르는 피리 소리여 그대 가슴속 깊은 우물에 비치는 세상은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운가 내일은 대낮에도 별이 뜬다.
한란寒蘭에게 |
난초꽃이 피었다 바람이 분다 상강 지나 산천에 불이 붙는데 가슴 깊이 푸르른 물결이 일어 뜬 마음 여며 안고 그대를 보니 굽이굽이 서리는 설레임으로 온 세상 가득 채운 볼 붉은 풀꽃 난초꽃이 피었다 바람이 맑다.
마지막 꽃잎
서쪽으로 쓸리는 쓸쓸한 꽃잎 허기진 저 새가 물고 가네 무주공산 가득 차는 풀피리 소리 자꾸만 울고 싶어 가선이 젖어 물소리 바이없이 잦아드는데 마지막 눈물에 젖은 꽃잎 어디로 가나 어디로 가나 막무가내 막무가내 바람이 차네.
나도풍란
바다 보고 독경하는 바위 위 동자 스님.
향 사르고 두 손 모으면 섬은 목탁 파도는 염불.
선택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너에게 빠져들면, 그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아무 느낌도 들지 않는다
너에게 젖어들면, 그만.
이 풍진 세상
너
하나
나
하나
기다림
꽃 한번 피우고 나면
아득하구나
한세상,
자욱한 안개 속
막막한 우주.
자란紫蘭
건너편 초록빛 대문집 여자
복사꽃 붉은 볼 자주빛 자태
사랑한단 한마디 가슴이 녹아
손대면 부서질까 꼼짝 못하네.
다짐
적당히 게으르게 살자 하면서도,
네 앞에 오면 그게 아니고.
조금은 무심하게 살자 하면서도,
네 앞에 서면 그게 아니고.
* 시인의 말
시집『愛蘭』을 낸 것이 1998년이었다.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나고 2006년에서야 시집을 내게 되어 긴 공백이 있었다.
위의 시편들은 모두 '- 愛蘭'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시편에 따라서는 부제가 없으면 내용을 이해하는데 착오가 있을 수도 있겠지 싶다.
언제 또 난을 주제로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난을 주제로 한 시편을 모으면서 난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내가 난에게 저지른 죄가 많다.
자생지 춘란을 얼마나 못살게 굴었던가.
70년대부터 80년대가 가도록 남도 지방과 해안 도서를 찾아다니며 못된 짓을 많이 했다.
미안하다, 난들아!
- 洪 海 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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