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짧은 시 읽기(『봄, 벼락치다』2006) · 1

洪 海 里 2010. 3. 23. 13:43

<짧은 시 읽기(『봄, 벼락치다』2006) · 1>

 

 

동백꽃 속에는 적막이 산다

 

 
뚝!

 

 


 

생각에 잠긴 봄


봄이 초록빛 길로 가고 있다
어둠 속에 잉태하고 있던 것마다
폭죽처럼 출산하고, 이제는,
연둣빛 미소로 누워 있는 어머니
바람은 후박나무 잎에 잠들고
여덟 자식들은 어디 숨어 있는지
느리게 느리게 봄이 흘러간다
무심하게, 눈물처럼, 나른나른히.

 

 

새벽 세 시

단단한 어둠이 밤을 내리찍고 있다
허공에 걸려 있는
칠흑의 도끼,
밤은 비명을 치며 깨어지고
빛나는 적막이 눈을 말똥처럼 뜨고 있다.

 

 

도원桃源을 위하여

북한산 깊은 골짝 양지바른 곳
겨우내 적멸에 젖어 있던 자리
봄볕만이 절망적으로 따사로워
나, 도화 한 그루도 꽂지 못하고
허공의 밭자락에 복숭아 꽃불만
아무도 모르게 피워 놓았다니까
아무도 모르게 피워 놓았다니까.

 

 

이팝나무


흥부네 자식들이 이밥 한 그릇 앞에 하고 비잉 둘러앉아 있다.

하늘이 밥이다.

꽃은 금방 지고 만다.

이팝나무 소복한 꽃송이 흰쌀밥 향기로 흥부는 배가 부르다.

 

 

요요


우체국 가는 길
초등학교 앞
어른 키만한 나무
구름일 듯 피어나는 복사꽃
헤실헤실 웃는 꽃잎들
가지 끝 연둣빛 참새혓바닥
일학년 일과 파할 무렵
이따끔 터지는 뻥튀기
혼자서 놀고 있는 눈부신 햇살

요요하다.

 

 

밤늦이 늘어질 때

몽환의 산그늘에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천근 고독의 사내가 자신을 해체하고 있다
구릿빛 비린내 느정느정 늘어져 꽃피고 있다.

벌거숭이 맨발로 달려가는 기적소리 들린다
푸른 천둥소리 은밀하니 진저리치는 산골짜기
허리끈 풀어진 잠들지 못하는 유월의 밤은 짧다.

 

 

지는 꽃에게 묻다


지는 게 아쉽다고 꽃대궁에 매달리지 마라

고개 뚝뚝 꺾어 그냥 떨어지는 꽃도 있잖니

지지 않는 꽃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피어나

과거로 가는 길 그리 가까웁게 끌고 가나니

너와의 거리가 멀어 더욱 잘 보이는 것이냐

먼 별빛도 짜장 아름답게 반짝이는 것이냐.

 

 

나팔꽃, 바르르 떨다

꽃 속으로 속으로 들어가면

꿈의 집 한 채

영원으로 가는 길

눈썹 끝에 머무는

꿈결 같은 꽃자리

까막과부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