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詩> 짧은 시 14 편

洪 海 里 2010. 5. 21. 11:47

     

 

 

詩人

 

 

그는

 

言寺의 지주持住.

 

 

말을 빚는

 

비구比丘

 

 

거울

 

 

어둠이 짙을수록 더욱 똑똑히 보이는
내 영혼의 뼈와 살의 무늬들
전신이 맑아오는 칠흑의 세계
어디서 새벽녘 두레박 소리 들리고
어둠이 물러가는 그림자 보인다.

                  

 

 

詩를 쓰는 이유

 

 

십리 밖 여자가 자꾸 알찐대고 있다.


달 지나는지 하루살이처럼 앓고 있다.


돌과 바람 새 능구렝이가 울고 있다.


내 안을 기웃대는 눈이 빛나고 있다.

                                

 

 

 

 갯벌

 

 

노을이 타는
바닷속으로

소를 몰고
줄 지어 들어가는

저녁녘의
女人들

노을빛이 살에 오른
바닷여인들.

                        

 

 

 

 

이승의 꽃봉오린 하느님의 시한폭탄

때가 되면 절로 터져 세상 밝히고

눈 뜬 이들의 먼 눈을 다시 띄워서

저승까지 길 비추는 이승의 등불.

 

         

 

 

세란헌洗蘭軒

 

 

하늘이 씻은 너를 내 다시 씻노니

내 몸에 끼는 덧없는 세월의 티끌

부질없이 헛되고 헛된 일이 어리석구나

동향마루 바람이 언뜻 눈썹에 차다.

 

 

 

난초 이파리

 

 

부러질 듯 나부끼는 가는 허리에

천년 세월이 안개인 듯 감기고

있는 듯 없는 듯 번져 오는 초록빛 황홀

해 뜨고 달 지는 일 하염없어라.

 

 

 

동백꽃 속에는 적막이 산다

 

 
뚝!

 

 

 

새벽 세 시

단단한 어둠이 밤을 내리찍고 있다
허공에 걸려 있는
칠흑의 도끼,
밤은 비명을 치며 깨어지고
빛나는 적막이 눈을 말똥처럼 뜨고 있다.

 

 

 



네 앞에 서면
나는 그냥 배가 부르다

애인아, 잿물 같은
고독은 어둘수록 화안하다

눈이 내린 날
나는 독 속에서 독이 올라

오지든 질그릇이든
서서 죽는 침묵의 집이 된다.

 

 

 

가을 들녘에 서서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막막 

 

나의 말이 너무 작아

 

너를 그리는 마음 다 실을 수 없어

 

빈 말 소리없이 너를 향해 가는 길

  

눈이 석 자나 쌓였다.

 

 

 

사랑에게 

 

 

써레질을 잘 해 놓은 무논처럼

 

논둑 옆에 기고 있는 벌금자리처럼

 

벌금자리 꽃이 품고 있는 이슬처럼

  

이슬 속 천년의 그 자리 그냥 그대로.

 

 

 

 

 

  

누가 뜰에 와서 들창을 밝히는가

 

차마 문을 열지 못하고

 

마음만 설레고 있는

 

홀로 환한 이승의 한 순간.

 

 

 <시에 대한 짧은 생각>

* 그간 나온 시집『投網圖』(1969)로부터『비밀』(2010)까지 15권의 시집에서

마음에 드는 짧은 시 14편을 골라 보았다.

이번 과정에서 그동안 쓴 시 가운데 짧은 시가 꽤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시는 쉽고 짧고 재미있어야 한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결코 아니다.

시는 한번 읽고 나면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야 한다.

시는 읽고 난 후에 생각에 젖게 하고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고,

아니면 짜릿하게 파문을 일으키든가 뜨거운 불길이 타오르게 할 수 있는 요소가 있어야 한다.

시는 시이고 시인은 시인이어야 한다.

왜 詩이고,

시를 쓰는 이는 왜 '詩家'가 아니고 '詩人'인가?

'家'가 아니고 '人'인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시는 말씀 가운데 가장 순수하고 아름답고 진실된 말인 경전이어야 하고

시인은 작품을 만드는 장인이 아니라 시를 낳는 어미여야 하기 때문이다.

                                                                                                           - 洪 海 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