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스크랩] 홍해리 시모음

洪 海 里 2010. 5. 23. 06:32

 

 

 

 

 

 

 

나를 이사하다 / 홍해리

 

 

한평생이 꿈이었다 말하지 말라

꿈의 먼지였다,

먼지의 꿈이었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먼지가 구석구석 뽀얗게 쌓여

온몸이 먼지의 왕국이다.

요염한 먼지의 나라,

은밀한 먼지가 지천인 세상이다.

 

먼지의 부피

먼지의 무게

먼지의 압력

도저히 떠메고 갈 수가 없다.

 

한평생이 한 알 먼지였으니

바람 불고 비 오는 날 

나를 이사하리라

먼지 인 시간의 영원 속으로!

 

 

 

 

 

 

오동나무 사리 / 홍해리

 

 

삼각산 도선사 앞 산록

옛 암자터

백년 된 오동나무 성자가 서 계시다

한때는 까막딱따구리의 집이 되어 주던 나무

속살로 새끼를 품어 기르던 때

그때가 한때였을까

지금은 사리로 서서

자연의 조화,

자연의 질서를 설법하기 위해

죽어서도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온몸이 하나의 흰 뼈다

천년의 자연,

천년의 순환을 보여 주기 위해

평생 단벌로 살다 가신 스님

죽어서도 환하게 웃고 계시다.

 

 

 

 

아내의 새 / 홍해리

 

 

아내는 머릿속에 새를 기르고 있다

늘 머리가 아프다 한다

부리로 콕콕 쪼아대는지

귀에서 새소리가 난다고 한다

구름이 끼어 있는 사시사철

새는 푸른 하늘이 그립다 한다

새는 너른 들판이 그립다 운다

갇혀 있는 새는 숨이 막혀

벽을 쪼아댄다

날아가고 싶어

아내는 새벽부터 새가 되어 운다

지저귀면서

때로는 노래로

아내의 새는 울고 있다

조롱鳥籠을 가지고 산다고 조롱 마라

갇혀 사는 새는 아프다.

  

 

 

길에 대하여 / 홍해리

 

 

한평생을 길에서 살았다

발바닥에 길이 들었다

가는 길은 공간이고 시간이었다

공간에서 제자리를 가고

시간에선 뒷걸음질만 치고 있었다

샛길로 오솔길로 가다

큰길로 한번 나가 보면

이내 뒷길로 골목길로 몰릴 뿐

삶이란 물길이고 불길이었다

허방 천지 끝없는 밤길이었다

살길이 어디인가

갈 길이 없는 세상

길을 잃고 헤매기 몇 번이었던가

꽃길에 바람 불어 꽃잎 다 날리고

도끼 자루는 삭아내렸다

남들은 외길로 지름길로 달려가는데

바람 부는 갈림길에 서 있곤 했다

눈길에 넘어져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빗길에 미끄러져도 손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오가는 길에 어쩌다 마주쳐도

길길이 날뛰는 시간은 잔인한 폭군이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마다

인생이란 그렇고 그런 것이라 했지만

끝내 비단길, 하늘길은 보이지 않았다

날개는 꿈길의 시퍼런 독약이었다.

  

 

 

그리운 지옥 · 봄 / 홍해리

 

  

서방님! 하는 아주 고전적인 호칭으로 

산문에 들어서는 발목을 잡아 세워서 

삼각산 바람소린가 했더니 

사방을 둘러봐도 아무도 없고 

꽃 속의 부처님만 빙긋이 웃고 있네.

  

 

 

절창을 위하여 / 홍해리

 

 

맨밥만 먹고 나온

매미 한 마리 매화나무에 날아와

무엇을 낚으려는지

소리그물을 허공에 펼치고 있다

푸른 하늘 흰구름이나

우렁우렁 고요를 낚아 무엇을 할 것인가

홀연 먹장구름이 몰려 오고

무거운 바람 한 자락 날개 걸치자

하늘에서 폭포가 쏟아져 내린다

먹물을 뒤집어쓴 매미

남은 생애를 위하여

젖은 날개를 비벼댈 때

반짝 비치는 햇살 사이사이

일제히 퍼붓는 소리폭포 이어

일순 적요가 푸른 그늘을 펼친다

한평생이 소리 한 자락으로

하루처럼 저무는 매미의 생애

어디 절정이 있기나 할 것인가

매미명창의 소리 자락이 절창이다

땅속에서 득음을 하고 나왔는지

소리하는 것이 벌써 목이 틔어

듣고 있던 풍경붕어가 추임새를 날린다

얼씨구, 좋고, 으이!

그늘자리로 기어올라 자리를 잡은 매미

바람고수 북장단에 다시 목을 뽑고

잠깐잠깐의 아니리에 이어지는 창에

듣는 귀마다 소리길이 나 명창明窓이 된다

소리그물에 걸린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드와 누드 / 홍해리

 

 

무드의 방문을 열면

누드가 보인다

 

방문을 닫으면

무드가 죽고

 

방문을 열면

누드가 시든다

 

남자는 방에 있고

여자는 밖에 있다

 

남자는 벗고 있고

여자는 입고 있다

 

문을 닫으면 안이 환하고

문을 열면 밖이 눈부시다.

 

 

 

 

호박 / 홍해리

 

 

한 자리에 앉아 한평생 폭삭 늙었다

 

한때는 푸른 기운으로 이리저리 손 흔들며 죽죽 벋어나갔지

얼마나 헤맸던가

방방한 엉덩이 숨겨놓고

활개를 쳤지

때로는 오르지 못할 나무에 매달려

버둥거리기도 했지

사람이 눈멀고 반하는 것도 한 때

꽃피던 시절 꺽정이 같은 떠돌이 사내 만나

천둥치고 벼락치는 날개짓 소리에 그만 혼이 나갔겠다

치맛자락 뒤집어쓰고 벌벌 떨었지

숱한 자식들 품고 살다 보니

한평생이 별것 아니더라고

구르는 돌멩이처럼 떠돌던 빈털털이 돌이 아범 돌아와

하늘만 쳐다보며 한숨을 뱉고 있다

 

곱게 늙은 할머니 한 분 돌담 위에 앉아 계시다.

  

 

 

다리 / 홍해리


한 生이 저무는 늦가을
다리를 끌며 다리를 건너는 이
지고 가는 짐이 얼마나 무거울까

다리 아래서 주워왔다는
서럽고 분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지

다리를 건너가는 이는 알까
다리 아래 넘실대는 푸른 물결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허방다리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두껍다리 건너다 빠진 적은 몇 번이던가

눈감으면 아득하고 눈을 뜨면 막막하다

절벽을 이은 하늘다리도 건넜고
격정과 절망의 다리,
체념과 안분의 다리도 건넜다

발자국이 끝없이 이어지고
허위허위 건너는 이승의 다리
처진 어깨 위로 저녁놀이 깔리고 있다.

  

 

 

寶池를 보다 / 홍해리

 


官谷이란 곳에 寶池가 있다
끝없이 너른 연못이 蓮으로 덮혀 있는데
하루 종일 돌아도 끝이 없다
흔한 紅蓮 白蓮이 아니라
온갖 크고 작은 갖가지 연이 다 있다
마른 우뢰가 이따금 멀리서 우는 한낮
문을 활짝 열고 있는 집집마다
금은보화가 가득가득 쌓여 있었다
동행한 仙人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눈길이 바쁘게 달리고 있었다
집안에서 술을 거르고 있는 섬섬옥수
버들허리의 처녀애들이 바쁘게 나다니고
향기로운 술냄새가 밖으로 흘러나왔다
손님들이 수없이 드나들지만
조용하기 절간만 같았다
우리도 어느 집 문안으로 들어서자
열여섯 손길이 이끌어 자리를 잡고
잠시 기다리자
가야금을 앞세우고
연꽃 낭자가 술상을 차렸는데
천년 된 느티나무 아래 금빛 마루였다
오색 술병에 든 액체는 화택의 것이 아닌
천상의 이슬로 빚은 옥로주였다
몇 차례 잔이 가야금 줄을 타고 돌자
선인과 나는 하늘에 둥둥 떠 있었다
갑자기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자
소나기가 시원스레 쏟아지기 시작했다
깜빡 잠에서 깨어 눈을 뜨니
아까 마신 蓮막걸리 대접에
이마를 박고 있는 선인과 나
느티나무에선 매미가 시원스레 울고
寶池의 연꽃들은 오수에 빠져 있었다.

 

 

  

 

 

 

 

 

청원, 내 고향 / 홍해리


바다가 없는 충청북도 한가운데
청주를 알로 품고 있는
푸른 자궁인 청원, 내 고향
언덕의 맑은 들바람은 늘 바다가 그리웠나니

그리운 마음 푸른 하늘에 띄우고
영혼의 그늘 찾아 꿈으로 가는 길
허공처럼 멀고 하염없어도
마음은 비단결이니 누가 막으랴

세월이 가도 새로운 정은 무심으로 흘러
어머니 품처럼 포근할 뿐
타향에 와 뿌리가 흔들리는 사람들
어찌 고향 땅이 유난하지 않으랴

알싸한 알토란 같은 그곳 사람들
후후 불어 넘기는 얼큰한 국밥 같은 정
맑고 너른 대청호 물빛 같이만
넉넉하고 느긋하거라.

 

 

 

출처 : 윤경재
글쓴이 : 화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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