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시집『비밀』의 자선시 20편 · 2

洪 海 里 2010. 8. 30. 05:29

* 시집『비밀』의 자선시 20편 · 2

 

시월

 

    洪 海 里

 

가을 깊은 시월이면

싸리꽃 꽃자리도

자질자질 잦아든 때,

 

하늘에선 가야금 퉁기는 소리

팽팽한 긴장 속에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금빛 은빛으로 빛나는

머언 만릿길을

마른 발로 가고 있는 사람

보인다.

 

물푸레나무 우듬지

까치 한 마리

투명한 심연으로, 냉큼,

뛰어들지 못하고,

 

온 세상이 빛과 소리에 취해

원형의 전설과 추억을 안고

추락,

추락하고 있다.

 

 

 

막막

 

洪 海 里

 

 

나의 말이 너무 작아

 

너를 그리는 마음 다 실을 수 없어

 

빈 말 소리없이 너를 향해 가는 길

  

눈이 석 자나 쌓였다.


 

막차가 떠난다

 

洪 海 里

별이 우는 밤이면 막차가 떠난다
산도 울어 계곡 따라 메아리로 흐르고
달빛 속으로 스러져가는
들판의 벗은 바람소리와 함께
마음을 싣고 막차는 떠난다
기적을 울리지 않고 가는 길
눈물 같은 별이 하나씩 길 위에 내리고
새벽은 올 것인가
쓰리게 흐르는 저문 강물이여
밤이 무거워 비켜서지 못하는
나목들 가지마다 걸려 있는
안개, 텅 빈 들녘, 해질 무렵, 넋, 열정,
상처와 환희, 떨어진 꽃잎, 그리고----
모든 존재란 의미이고 이름일 따름
속절없이 피었다 지는 것이 꽃뿐이랴
하늘이 시작되는 곳이 어디인지
상처 받은 별떨기가 찔레꽃으로 피어나는
여름이 봄보다 먼저 왔다 가고 나면
가을은 슬프고 겨울은 눈부시지 않더냐
오늘은 첫눈이 내리고
나는 새벽으로 가는 막차를 탄다.

 

 

황태의 꿈

  

洪 海 里

 

 

아가리를 꿰어 무지막지하게 매달린 채

외로운 꿈을 꾸는 명태다, 나는

눈을 맞고 얼어 밤을 지새우고

낮이면 칼바람에 몸을 말리며

상덕 하덕에 줄줄이 매달려 있는

만선의 꿈

지나온 긴긴 세월의 바닷길

출렁이는 파도로 행복했었나니

부디 쫄태는 되지 말리라

피도 눈물도 씻어버렸다

갈 길은 꿈에서도 보이지 않는

오늘밤도 북풍은 거세게 불어쳐

몸뚱어리는 꽁꽁 얼어야 한다

해가 뜨면

눈을 뒤집어쓰고 밤을 지새운 나의 꿈

갈가리 찢어져 날아가리라

말라가는 몸속에서

난바다 먼 파돗소리 한 켜 한 켜 사라지고

오늘도 찬 하늘 눈물 하나 반짝인다

바람 찰수록 정신 더욱 맑아지고

얼었다 녹았다 부드럽게 익어가리니

향기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나

뜨거운 그대의 바다에서 내 몸을 해산하리라.

 

 

비백飛白

 

洪 海 里

 

 

그의 글씨를 보면

폭포가 쏟아진다

물소리가 푸르다

언제 터질지 모를

불발탄이 숨겨져 있다

한켠 텅 빈 공간

마음이 비워지고

바람소리 들린다

펑! 터지는 폭발소리에

멈칫 눈길이 멎자

하얀 눈길이 펼쳐진다

날아가던 새들도

행렬을 바꾸어

끼룩대면서

글씨 속에 묻히고 만다

길을 잃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한 구석에 보일 듯 말 듯

뒷짐지고 서 있던

그가 화선지에서 걸어 나온다.

 

 

절창을 위하여

 

洪 海 里

 

 

맨밥만 먹고 나온

매미 한 마리 매화나무에 날아와

무엇을 낚으려는지

소리그물을 허공에 펼치고 있다

푸른 하늘 흰구름이나

우렁우렁 고요를 낚아 무엇을 할 것인가

홀연 먹장구름이 몰려오고

무거운 바람 한 자락 날개 걸치자

하늘에서 폭포가 쏟아져 내린다

먹물을 뒤집어쓴 매미

남은 생애를 위하여

젖은 날개를 비벼댈 때

반짝 비치는 햇살 사이사이

일제히 퍼붓는 소리폭포 이어

일순 적요가 푸른 그늘을 펼친다

한평생이 소리 한 자락으로

하루처럼 저무는 매미의 생애

어디 절정이 있기나 할 것인가

매미명창의 소리 자락이 절창이다

땅속에서 득음을 하고 나왔는지

소리하는 것이 벌써 목이 틔어

듣고 있던 풍경붕어가 추임새를 날린다

얼씨구, 좋고, 으이!

그늘자리로 기어올라 자리를 잡은 매미

바람고수 북장단에 다시 목을 뽑고

잠깐 잠깐의 아니리에 이어지는 창에

듣는 귀마다 소리길이 나 명창明窓이 된다

소리그물에 걸린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가 죽이지요

  

洪 海 里

 

 

시가 정말 죽이네요

시가 죽인다구요

 

내 시가 죽이라니

영양가 높은 전복죽이란 말인가

시래기죽 아니면 피죽이란 말인가

무슨 죽이냐구

식은 죽 먹듯 읽어치울 만큼 하찮단 말인가

내 시가 뭘 죽인다는 말인가

닦달하지 마라

죽은 밍근한 불로 천천히 잘 저으면서 끓여야

제 맛을 낼 수 있지

벼락같이 쓴 시가 잘 쑨 죽맛을 내겠는가

죽은 서서히 끓여야 한다

뜸 들이는 동안

시나 읽을까

죽만 눈독들이고 있으면

죽이 밥이 될까

그렇다고 죽치고 앉아 있으면

죽이 되기는 할까

쓰는 일이나 쑤는 일이나 그게 그거일까

젓가락을 들고 죽을 먹으려 들다니

죽을 맛이지 죽 맛이 나겠는가

저 말의 엉덩이같은 죽사발

미끈 잘못 미끄러지면 파리 신세

빠져 나오지 못하고 죽사발이 되지

시를 쓴답시구 죽을 쑤고 있는 나

정말 시가 죽이 되어 나를 죽이는구나

쌀과 물이 살과 뼈처럼

조화를 이루어야 맛있는 죽이듯

네 시를 부드럽고 기름지게 끓이거라

 

시가 정말 죽이네요

시가 죽인다구요.


수세미

 

洪 海 里

 

 

전생에 무슨 한이 그리 엮여서

한평생 몸속에 그물만 짜셨을까

 

베틀 위의 어머니,

 

북 주고

바디 치던

마디 굵은 손

 

나,

눈에 는개 내린다.

 

 

까치와 권총

 

洪 海 里

 

 

꿈속에서 까치가 떼지어 우짖고 있었다

머리맡에 시 한 편 놓여 있었다

까치 몇 마리 날아와 앉아 있었다

시안詩眼이 갓난아기 눈처럼  맑았다

동그랗게 빛났다

아기의 손에 이쁜 권총이 들려져 있었다

총을 쏘아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눈으로 들었기 때문이었다

관음觀音이란 말이 그래서 생겼다

화약 냄새가 한겨울의 매화 향기 같았다

사람들은 향기를 귀로 맡고 있었다

문향聞香이란 말은 그런 것이었다.


방짜징

 

 洪 海 里

 

 

죽도록 맞고 태어나

평생을 맞고 사는 삶이러니,

 

수천수만 번 두들겨 맞으면서

얼마나 많은 울음의 파문을 새기고 새겼던가

소리밥을 지어 파문에 담아 채로 사방에 날리면

천지가 깊고 은은한 소리를 품어

풀 나무 새 짐승들과

산과 들과 하늘과 사람들이 모두

가슴속에 울음통을 만들지 않는가

바다도 바람도 수많은 파문으로 화답하지 않는가 

나는 소리의 자궁

뜨거운 눈물로 한 겹 한 겹 옷을 벗고

한평생 떨며 떨며 소리로 가는 길마다

울고 싶어서

지잉 징 울음꽃 피우고 싶어

가만히 있으면 죽은 목숨인 나를

맞아야 사는, 맞아야 서는 나를 

때려 다오, 때려 다오, 방자야!

파르르 떠는 울림 있어 방짜인

나는 늘 채가 고파

 

너를 그리워하느니

네가 그리워 안달하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