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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유진의 시읽기> 비밀 / 홍해리

洪 海 里 2010. 6. 15. 17:01

 ☛ 서울일보/ 2010.6.16.(수요일)자

 

가 있는 풍경

 

 

 

 

비밀

                 홍해리

 

그 여자 귀에 들어가면

세상이 다 아는 건 시간문제다

조심하라 네 입을 조심하라

그녀의 입은 가볍고 싸다

무겁고 비싼 네 입도 별 수 없지만

혼자 알고 있기엔 아깝다고

입이 근지럽다고

허투루 발설 마라

말끝에 말이 난다

네 말 한 마리가 만의 말을 끌고 날아간다

말이란 다산성이라 새끼를 많이 낳는다

그 여자 귀엔 천 마리 파발마가 달리고 있다

말은 발이 없어 빨리 달린다, 아니, 난다

그러니 남의 말은 함부로덤부로 타지마라

말발굽에 밟히면 그냥 가는 수가 있다

그 여자 귓속에는 세상의 귀가 다 들어 있다

그 여자 귀는 천개의 나발이다

그녀는 늘 나발을 불며 날아다닌다

한번, 그녀의 귀에 들어가 보라

새끼 낳은 늙은 암퇘지 걸근거리듯

그녀는 비밀肥蜜을 먹고 비밀秘密을 까는 촉새다

'이건 너와 나만 아는 비밀이다'.

 

 

◆시 읽기

홍해리시인은 열여섯 번째 시집 표제를 비밀로 내걸었다.

그녀라는 인물을 설정하고 “그 여자 귀에 들어가면 세상이 다 아는 건 시간문제다. 조심하라 네 입을 조심하라며 동음이의어를 활용해서 그녀를 비밀(肥蜜)을 먹고 비밀(秘密)을 까는 촉새라고 했다.

‘비밀[祕密]’이란 남에게 드러내거나 알리지 말아야 할 일, 밝혀지지 않았거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을 말한다. 그리고 언어나 문자 따위의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전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참된 의미를 숨기고 상징적으로 가르침을 설하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말, 사람을 죽이고 살리기도 하는 말, 비밀을 지켜달라는 말에 덧말까지 보태지며 건너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도 하는 것이 말이다.

예로부터 말에 대한 교훈은 수없이 많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증거일 것이다.‘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말끝에서 말이 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웃느라 한 말에 초상난다’ 등등...... 속담을 시화시켜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잘 지켜지지 않는 말의 중요성을 한 번 더 상기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

 

출처 : 유진의 삶을 시처럼 시를 삶처럼
글쓴이 : 유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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