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벌레
洪 海 里
몸으로 산을 만들었다
허물고,
다시 쌓았다
무너뜨린다.
그것이 온몸으로 세상을 재는
한평생의 길,
山은 몸속에 있는
무등無等의 산이다.
<감상>
자벌레를 본다.
저 자그마한 몸뚱어리로
푸른 산을 만들고
바다를 만들고
벌판을 만든다.
몸 자체가 길이고 강이고 시간이다.
구부리면 산이 되고
쫙 펴면 길게 뻗쳐 지평선이 된다.
작은 몸속에 도사린
우주를 발견한 시인의 눈,
끊임없이 쌓았다 무너뜨리는
자신의 시의 산을
'자벌레'로 은유했으리라.
무궁무진하게 펼쳐지는
저 꾸물꾸물한 움직임은
그 얼마나 순정하고 맑고 눈물겨운가?
無等의 산속 오솔길은
또 얼마나 그윽하고 향기로운 것인가?
그 어딘가 숨어있는 옹달샘은
또 얼마나 새콤달콤할 것인가?
아무도 몰래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자신의 일에 몰두하여 푸른 잎새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쬐끄만 자벌레들은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으리라.
구불텅구불텅한 갈지자로
혹은 상쾌하고 신나는 둥근 산의 모습으로
가벼운 날갯짓으로
비상할 날 꿈꾸면서...
- 나병춘(시인)
자벌레
林 步
순례의 길을 가는
라마의 禪僧처럼
어느 聖地를 향해
그리 바삐 가시는지
袈裟도 걸치지 않은
저 푸른 몸매
一步弓拜 一步弓拜
<감상>
우주에 대한 연민이 시심詩心이다.
이 세상에 있는 가장 거룩한 것에서부터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자그마한 미물에 이르기까지
먼지에 이르기까지
시인은 늘 경배의 마음으로 대한다.
그래서 모든 자연물이 교과서이며 경전이다.
시인의 마음은 그래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물로부터
보이지않는 먼 별에 이르기까지
그리움의 대상이며 사랑의 대상이다.
숲길을 바삐 가다 너럭바위에 앉아 땀을 들이며
문득 앞을 본다.
푸른 잎사귀에 꼼지락거리는 사물이 있다.
자세히 보니 자벌레다.
袈裟도 걸치지 않은 /
저 푸른 맨몸 //
一步弓拜 /
一步弓拜 //
알몸으로 꼼지락 꼼지락 길을 가는
한 마리 '자벌레'를 라마의 선승으로 바라본다.
오체투지로 온몸을 던져 기도하는 모습...
암자로 바삐 올라가는 시인 자신의 모습을 닮았다.
一步弓拜 一步弓拜...
구부리는 모습이 활처럼 휘어졌다.
둥그렇게 휜 모습이 산을 닮았다.
파도를 닮았다.
푸른 알몸에 아무 것 걸치지 않았다.
맨몸으로 왔다 빈 손으로 돌아가는
인생을 꼭 닮았다.
일회성의 삶에서 누구는 도를 닦다 가고
또 누구는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다가고
또 누구는 장사를 하여 돈을 벌고
또 누구는 권력과 명예에 팔려 진흙탕을 뒹군다.
아무 죄 없이 푸른 잎새 뒤에 숨어
소박하게 살아가는 자벌레의 삶...
'일보궁배'란 말은 처음 들었다.
보폭이 활이니 그 누구를 향해 쏘는 화살인가?
짧은 시에 아득한 우주의 호흡이 실려있다.
꾸물럭꾸물럭거리는 우주 파동이
온몸에 전율처럼 다가오지 아니한가?
- 나병춘(시인)
'시론 ·평론·시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시가 죽이지요[홍해리] (0) | 2010.06.27 |
---|---|
洪海里 시인의 15번째 시집『비밀』출간 / 김금용(시인) (0) | 2010.06.26 |
[스크랩] <유진의 시읽기> 비밀 / 홍해리 (0) | 2010.06.15 |
<시집 안내> 《비타민 詩》 (0) | 2010.06.08 |
洪海里 시인의 신작시 :「저런[切言] 詩」/ 손소운 (시인) (0) | 2010.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