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시인의 15번째 시집『비밀』출간 : "설마雪馬" 외 5편
2010/06/25 17:10 |
설마雪馬
눈처럼 흰 말
눈 속에 사는 말
눈 속을 달려가는 말
설마 그런 말이 있기는 하랴마는
눈처럼 흰 설마를 찾아
눈 속으로 나 홀로 헤맨다 한들
설마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만
말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말 달려가는 요란한 소리만 들려올 뿐
한평생 허위허위 걸어온 길이라 해도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아 막막하니
말꾼 찾아 마량馬糧을 준비할 일인가
오늘 밤도 눈 쌓이는 소리
창 밖에 환한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 해도
나를 비우고 지우면서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설마를 찾아 길 없는 밤길을 나서네.
새
아내는 머릿속에 새를 기르고 있다
늘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부리로 콕콕 쪼아대는지
귀에서 새소리가 난다고 한다
구름이 끼어 있는 사시사철
새는 푸른 하늘이 그립다 한다
새는 너른 들판이 그립다 운다
갇혀 있는 새는 숨이 막혀
젹을 쪼아댄다
날아가고 싶어
아내는 새벽부터 새가 되어 운다
지저귀면서
때로는 노래로
아내의 새는 울고 있다
조롱鳥籠 속에 산다고 조롱 마라
갇혀 사는 새는 아프다
까치와 권총
꿈속에서 까치가 떼지어 우짖고 있었다
머리맡에 시 한 편이 놓여있었다
까치 몇 마리 날아와 앉아 있었다
시안詩眼이 갓난아기 눈처럼 맑았다
동그랗게 빛났다
아기의 손에 이쁜 권총이 들려져 있었다
총을 쏘아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눈으로 들었기 때문이었다
관음觀音이란 말이 그래서 생겼다
화약냄새가 한겨울의 매화 향기 같았다
사람들은 향기를 귀로 맡고 있었다
문향聞香이란 말은 그런 것이었다
나의 詩는
북소리 한 자락 베지 못하는
녹슬어 무딘 칼, 이 빠진 칼
그 옆에 놓여 있는
네 마음 한 자락 베지 못하는.
퇴고 推敲
자궁에 품고 있을 때나
세상에 드러내고 나서나
또는
시집 속에 위리안치해도,
양수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영원한 미숙아
아직 태어나지 않은 詩 아닌 詩,
문을 열거나
또는
두드리거나,
진화 중
또는
퇴화 중인,
나의 詩는 퇴고 중.
* 홍해리 시인의 15번 째 시집 <비밀>(도서출판 우리글.138쪽,)이 나왔다. 충북 청원에서 태어나 고대 영문과를 졸업, 1969년 시집<투망도>로 문단에 들어와 현재까지 올곧게 사단법인 우리詩진흥회 '월간 '우리詩', 우이시낭송회, 도서출판 움'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투망도' 외에 '화사기' '무교동' '홍해리 시선' '대추꽃 초록빛' '청별' '은자의 북' '난초밭 일궈 놓고' '투명한 슬픔' '애란' '봄, 벼락 치다' '푸른 느낌표' '황금감옥' '비타민 詩' 등이 있다.
그의 시의 특징이랄 수 있는 시어의 중첩적 해석과 그 사용이 이번 시집에서도 두드러진다.
시어에 얽매이는 일반 시인들에 비해 그는 이 시어를 재미있게, 혹은 재치있게 갖고 놀 수 있는 놀라운 담력을 가졌다.
시 <설마雪馬>, <속절>, <저런切言 시> 등, 상당수가 있지만, 여기선 지면관계상 한 편만 소개한다.
시만을 위해 한 평생 살아온 전업시인답게 서문" 명창정궤 明窓淨几의 시를 위하여"를 꼭 읽어보시길,..!!
[출처] 홍해리 시인의 15번 째 시집<비밀> 출간: "설마雪馬" 외 5편|작성자 푸른섬 김금용(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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