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감옥』/홍해리 시인 신간 시집 소개 / 김금용 시인의 블로그에서옮김.
2008/05/08 11:43 http://blog.naver.com/poetrykim417/30030863430 |
오늘 시인 홍해리(洪海里) 선생님의 시집을 받았다.
요즘 피는 노란색 국화과의 ‘송방망이’ 꽃과 같이 편집해준 김창집 오름에서 옮겨 싣는다.
홍해리시인님은 작년부터 그새 세 권의 시집을 내셨다.
10년간 한 권도 안내셨다고 하더니, 완전 한여름 허리케인처럼
폭포로 줄줄 풀어내신다.
바깥출입(문단)을 고집스러울 정도로 안하시는 만큼,
시에 풀어놓는 말씀들은 하나같이 진한 엑기스이다.
어디든 대상을 향해 날아가면
시 하나가, 꽃잎 하나가 진저리를 치며 후드득 탄생한다.
그렇게 꽃밭을 날아다니다 스스로는 지금 황금감옥에 갇히셨다.
난방도 안되는 편집실 시수헌에서 몇 년째 컴퓨터 앞에 앉아계시더니
급기야 허리에 인공관절을 넣고 서서 식사하고 서서 컴퓨터를 하는
"서있는 남자 "가 되셨다고 한다.
참으로 시인다운 삶이 무엇인지 몸으로 후배들에게 가르치고 계신
홍해리시인님의 "시인의 말"과 함께 몇 편의 시를 옮겨 감상한다.
♧ 시인의 말
부족한 시, 부족의 시, 그래서 시이고 시인이다.
뒤에 '시로 쓴 나의 시론'이란 시치미를 달았다.
입때까지는 입히려고 애를 썼지만
이제부터 벗기고 벗겨 나시(裸詩)를 만나야겠다.
한 편의 시를 위하여 나를 비우고 또 비운다.
시욕(詩慾)이다.
시야, 한잔하자!
무자(戊子) 正月 초사흘,
우이동(牛耳洞) 골짜기 세란헌(洗蘭軒)에서
____홍해리(洪海里)
♧ 황금감옥(黃金監獄)
나른한 봄날
코피 터진다
꺽정이 같은 놈
황금감옥에 갇혀 있다
금빛 도포를 입고
벙어리뻐꾸기 울듯, 후훗후훗
호박벌 파락파락 날개를 친다
꺽정이란 놈이 이 집 저 집 휘젓고 다녀야
풍년 든다
언제
눈감아도 환하고
신명나게 춤추던 세상 한 번 있었던가
호박꽃도 꽃이냐고
못생긴 여자라 욕하지 마라
티끌세상 무슨 한이 있다고
시집 못 간 처녀들
배꼽 물러 떨어지고 말면 어쩌라고
시비(柴扉) 걸지 마라
꺽정이가 날아야
호박 같은 세상 둥글둥글 굴러간다
황금감옥은 네 속에 있다.
♧ 여자를 밝히다
여자를 밝힌다고 욕하지 마라
음란한 놈이라고
관음증 환자라고 치부하지 마라
입때껏 치부를 한 것도 없고
드러낼 치부도 하나 없다
여자를 활짝 핀 꽃 같이 밝혀주는 것은
무엇일까
환한 대낮같이 열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어둔 길을 갈 때
등롱을 들듯
꽃이라도 들어야 하는 것인가
등명접시 받쳐 놓고
불을 댕길 일인가, 아니지,
여자는 스스로 열리는 호수
환하게 빛나는 대지라서
하늘 아래
세상에서 여자를 밝힐 일은 없다.
♧ 오동꽃은 지면서 비를 부른다
온몸에 오소소 솟아 있는
반짝이는 작은 털 더듬이 삼아
오동꽃 통째로 낙하하고 있다
보일 듯 말 듯
아주 연한 보랏빛으로,
시나브로
동백꽃 지듯 툭! 툭! 지고 있다
처음으로 너를 주워 드니
끈끈한 그리움이 손을 잡는다
무작정 추락하는
네 마지막 아름다운 헌신,
하나의 열매를 위해
나도 이렇듯 다 포기하고
그냥 뛰어내리고 싶다
떨어져 내린 꽃 위로
공양하듯
또, 비가 두런두런 내리고 있다
♧ 동짓달 보름달
누가 빨아댔는지
입술이 얼얼하겠다
빨랫줄에 달빛이 하얗게 널려
바지랑대가 빨랫줄을 팽팽히 떠받치고 있다
꼿꼿하다
화살이다 칼날이다
새파랗게 질린 하늘로 시위가 푸르르 떨고
보름보름 부풀더니
푸른 기운을 저 혼자 울컥울컥
토해내는 달
저 하늘에 시위나겠다
철새 몇 마리 그리고 가는 곧은 길 위로
흰 빨래 옷가지 하나 흔들린다
지상에선
긴긴 밤 참이라도 드는지
별들이 빙 둘러앉아 눈을 반짝이고
동치미 동이에 달이 풍덩 빠져 있다.
♬ Butterfly Waltz - Brian C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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