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스크랩] 우이동 골짜기 개나리 산장에서 1.

洪 海 里 2011. 4. 27.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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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동 골짜기 개나리 산장에서

 

봄비가 웅크린 날, 呼兄呼弟하는 두 詩仙이 우이동 골짜기에 하강하여 개나리 산장에서 그 愛弟子들이 재롱부리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셨더라.

그래서 다음과 같이 說하셨으니 마음에 깊이 새김이 좋으리라.

兄 詩仙曰

“가장 좋은 시는 자연이다. 좋은 시를 쓰려면 자연에서 배워야 하며 영롱한 언어의 사리, 좋은 시는 한 송이 꽃과 같은 시이다.” 라고 하셨다.

그리고 사철가로 한껏 멋을 내뿜으시고 긴 자작시 「바우의 탄식」을 낭송해 시낭송의 진수를 몸소 보여주셨다.

 

   바우의 탄식

             임보  

 

아씨,

나를 알아보시겠습니까?

서른 해 전 어느 동짓달 그믐밤밤

서리 맞으며 도망쳐 갔던

천한 마름의 자식 이 바우놈을

아직 기억하시지요?

설마 잊지는 않으셨지요

 

내 등짝엔 아직도

박힌 채찍의 자국이

용의 꼬리처럼 꿈틀거리고

주리에 틀렸던 두 팔목은

활의 시위처럼 흔들리네

 

아씨,

무엇이 당신의 그 고운 자태를

이렇게 헤집어 놓았는가

윤기 흐르던 그 검은머리는 어디 가고

서리 같은 백발이 흩날리네

천도보다 부드럽던 그 은백의 살결엔

악마의 발자국 같은 주름살이 고여 있네

 

아, 그러나

나를 보는 그대의 눈빛은 아직

살아 있구나

나의 한평생을 삼킨

저 깊은 눈빛은 아직도

빛나고 있구나

  

당신은 알 리 없지

하늘을 향해 천만 번 다짐했던 나의 맹세를

사방 수천 리 광대한 성을 쌓아

당신을 나의 여왕으로 가두겠다는

은밀한 내 음모를 당신은 알 리 없지

한때는 바다에서

태풍의 밧줄에 내 손은 이렇게 갈라지고

한때는 대장간에서

무거운 해머로 내 팔목은 이렇게 굳어졌네

등짐으로 내 종아리는 돌처럼 알이 박히고

목도로 내 어깨는 황소처럼 벌어졌네

 

아씨여, 말을 해다오

한세상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가?

행운의 여신이 그대를 외면했단 말인가?

때로는 굶고 때로는 노숙을 하면서

마차도 없이 먼 길 걸어서 왔는가?

입술도 발바닥도 다 부르텄고나

말을 해다오

가련한 여인이여답답도 하구나

 

그대의 소원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억만 장자

그대가 원한다면

황금의 성을 쌓아 바칠 수도 있네

아, 젖은 눈으로 그대는 말하는구나

그것은 지나간 한때의 허망한 꿈이었다고

천한 마름의 자식이

귀한 주인의 딸을 사랑할 순 없었다고―

그렇게 말하지 말라 아씨여

나는 이렇게 돌아왔지 않는가

이 땅과 당신을 얻기 위해

한평생 나는 죽도록 달려서

드디어 이렇게 여기 돌아왔지 않는가

이제 무엇이 우리를 거역할 수 있단 말인가

 

불쌍한 아씨여

손을 좀 다오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도 하네

손톱은 굳어져 빛을 잃고

손바닥은 못의 옹이들로 갈라졌구나

신이여 비노니

여기에 생명의 물기를 더하소서

봄이면 수목들의 마른 가지에 물이 올라

재생의 환희를 누리듯이

이 여인에게도 봄을 주소서

 

신이여 말하소서

어떻게 하면 이 여인에게

다시 봄을 허락하시겠나이까?

천 캐럿의 금강석을 이 여인의 손가락에 매달까요?

천의 밤낮을 엎드려 기원을 드릴까요?

천만의 마차에 곡식을 실어

온 천하에 뿌리고 다닐까요?

내 한평생 달려 달려

그대에게 이렇게 왔는데

시간의 악령이 그대를 이처럼

헤집어 놓았구나

청춘을 돌려다오

우리들의 청춘을 돌려다오

내 가진 억만 금 너에게 다 줄 테니

시간의 악령이여

단 하루만이라도

우리들의 청춘을 돌려다오.

 

 

弟 詩仙은 곧 출간 예정인 시선집『시인이여 詩人이여』에 실린 <시인의 말> 「고운야학孤雲野鶴의 시를 위하여라는 주제로 다음과 같이 특강을 해주셨다.

 

고운야학孤雲野鶴의 시를 위하여

                                     洪 海 里

 

나에게 시는 무엇이고,

시인은 누구인가?

시에 대하여,

시인에 대해 내가 나에게 다시 한 번 묻는다.

 

꽃을 들여다보니 내가 자꾸  꽃에게 길들여지고 있다

꽃을 봐도 가장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가장 아름답고 감미로운  꽃의 노래는 들리지 않는다

내가 보는 것은 껍질뿐

껍질 속에 누가 청올치로 꼭꼭 묶어 놓은 보물이 들어 있는가

텅 빈 멀떠구니 하나 아직도  배가 고파

몸 속에 매달려 껄떡이고 있다

자연을 잊고, 잃었기 때문이다

욕심의 허물을 벗어 허물이 없는 詩, 너를 기다리는 마음이 늘 그렇다.

  

알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너무나 많다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몰입하는 것이다

마중물 같은 시, 조촐하고 깨끗한 시 한 편을 만나고 싶어

뚱딴지 같이 천리 길도 머다 않고 햇살처럼 달려나가지만

나는 늘 마중만 나가고 너는 언제나 배웅만 하고 있다

내가 나를 이기지 못해 흘리고 있는 눈물 속에

시가 별것 아니라고 너와 별거를 할 수가 있는가

사람 사는 일이란 길을 트고 길이 들고 길을 나는 것이 아닌가

푸르게 치닫는 치정의 산하로

강 건너 웃는 소리 들리지 않고 산 너머 우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어찌 우리가 하늘까지 닿을 수 있겠는가

마디게 더디더디 익어가는 시도 언젠가는 향기롭게 익으리니

나무가 본능으로 햇빛을 향해 몸을 뒤틀 듯

그리 해야 시가 다가오지 않겠는가.

  

호박꽃 속에서는 바람도 금빛으로 놀고 있다

호박벌 한 마리 황궁 속에 들어가면

금방 황금도포를 걸치고 활개 치는 금풍金風이 요란하다

둥근 침실로 내려가 신부를 맞이하면 어찌 세상이 환하지 않으랴

금세 젖을 물고 있는 아기가 보인다

푸른 치마를 걸친 시녀들이 줄줄이 부채 들고 바람을 맞이하고 있다

하인들은 더듬이손으로 도르르 감고는 놓으려 들지 않는다

사랑이란 기갈나고 감질나는 것이 아니던가

줄줄이 태어나는 왕자와 공주들

이제 천지 사방으로 벋어 나가면 온 세상이 금빛 바람 부는 영토가 되리라

시도 이렇게 태어난다면 얼마나 좋으랴.

 

시여, 너를 꿈꾸다 깬 몽롱한 새벽 나 혼자 아득하다

머리맡의 파돗소리 잠들고 백사장은 텅 비어 있다

꿈이란 내가 꾸는 것이어서 너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겠지만 나는 잊어버리기 일쑤지

일수를 빌려 얼마를 갚고 남은 것이 몇 푼인가

도무지 기억이 아물아물 아련하다

꾼다는 것은 잠시 빌려쓰는 것이라서 갚기는 갚아야 하는데

한여름 저녁나절 자귀나무꽃 아래서 나는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자귀나무는 내 꿈속에서 무엇을 꾸려는지 분홍빛 주머니를 흔들고 있다

자귀나무 꽃이 지고 나면 내 시도 콩꼬투리 같은 열매가 맺힐 것인가

꿈이 컸으니 바람만 불어 꿈같은 세월이 아득하게 지고 있다.

 

천둥은 왜 치는가, 천둥은 언제 우는가

울어야 할 때 천둥은 운다, 천 번을 참고 참았다가 친다

피터지게 울고 통곡한다

아무때나 함부로 우는 것은 천둥이 아니다

번개는 왜 치는가, 번개는 똥개처럼 울지 않는다

옆집 개가 하늘 보고 컹컹 짖을 때 똥개는 따라 짖는다

안개도 울고 는개도 운다, 소리없이 운다

번개는 번득이는 촌철살인의 이론이 있어야 한다

유월이라고 느긋하게 놀면서 보내려 했더니 흐르는 듯 수유인 듯 가고 만다

미끈유월이라고 시를 만나지 않고 미끈미끈 보낼 수는 없다

내가 쓴 시에서도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우는가 돌아볼 일이다.

 

혼자 아닌 것이 없다고 함부로 노래하는가, 시인이여

혼자가 아닌 것이 어디 있던가

어느 시인은 '혼자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No man is an island!)라고 했지

세상에, 세상에 행行이 무엇이고 연聯이 무엇이란 말인가

행간行間에는 무엇이 있는가, 연간聯間에는 또 무엇이 존재하는가

반평생 너와 살아도 어려운 것은 행간을 읽는 일

연간을 읽는 일이 아니던가

갈 곳이 멀다고 모든 것을 읽고 말면 혼자는 무엇이 될 것인가

혼魂이 자는 자者 행간에 홀로 누워 코나 골고 있을까

나는 혼자인가 혼자가 아닌가

오늘도 욕심 없고 허물 없는 시 속으로 몸 던져 자폭하고 싶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사랑타령인가

네 개의 사랑 가운데 마지막 사랑이 손을 놓았다

하룻밤 잠 못 자고 울음을 토하다 시원히 손 흔들며 보내 주었다

잘 가거라 마지막 사랑이여

이제는 사랑 없이 살아야 하는 남은 삶을 어이 할 것인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 수 있는가

아무 쓸모 없는 사랑이라면 일찍 버리는 것이 좋다.

'이'가 사랑을 만나면 '사랑니'가 되는 것은 사랑의 속성이지만

사랑도 사랑 나름이어서 쓸데없는 사랑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시에서도 필요 없는 사랑은 사랑니처럼 뽑아버려야 한다.

 

입추가 되어 혼인비행을 하고 있는

한 쌍의 가벼운 고추잠자리를 보라 

하늘이 제 잠자리라고 그냥 창공을 안아버린다

축하한다고 풀벌레들 목청을 뽑고

나무들마다 진양조 춤사위를 엮을 때 

한금줍는 고추잠자리는 추억처럼 하늘에 뜬다

내가 쓰는 한 편의 시도

눈과 머리와 몸통과 꼬리와 날개를 가지고

고추잠자리처럼 푸른 하늘에 자유로이 날 수 있을까.

.

허리띠를 졸라맬 때마다 수도꼭지를 틀곤 했던 시절

주린 배를 물로 채우고 올려다본 하늘은

늘 푸르고 높아 먼 그리움처럼 반짝반짝 윤이 났다

아무리 물 쓰듯 한다지만 수도꼭지는 잠가야 한다

물처럼 쓰고 싶은 시도 꼭지를 잠그고 기다릴 때가 있다

대한大寒도 무섭지만 대한大旱 앞에 견딜 장사가 있는가

물은 생명이다! 라는 구호가 그냥 구호口號가 아니라

구호救護가 되어야 한다

물보다 여리고  욕심 없고 아름다운 것이 세상에 또 있겠는가

시도 그렇다.

 

바위는 제자리서 천년을 간다

제 몸뚱어리를 갈고간 조각들이 버력이 되고 모래가 되어

다시 천년을 흙으로 간다

그렇게 간 거리가 한자리일 뿐, 그래도 바위는 울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오고 강물이 흘러가고 번개 치고 천둥 운들 대수랴

바위는 조촐하고 깨끗한 제자리를 하늘처럼 지킨다

바위 같은 시 한 편을 위해 시인은 바위가 되어 볼 일이다

 

폐허에, 향기로운 흉터에 또 상처를 남기기 위해

가슴속에 자유라는 섬 하나 품고 살거라

너도 상처를 입어 봐야 올곧은 자세로 시 앞에 서게 될 것이다

바람은 다리속곳 바람으로 대고 꿈꾸며 불고 

물위를 탐방탐방 뛰어가는 돌처럼 우주의 자궁에서 아기별이 탄생하고 있다

웃음이 그칠 때까지, 눈물이 마를 때까지

바람 바람 울어라, 바람 바람 불어라

시도 그렇게 태어나기 마련이다.

 

시는 자연이 보내는 연애편지, 시가 맛이 가면 사랑은 떠난다

시가 상하고 시는 날에는 사람들이 식상하는 법이다

갓 시집온 새색시 시장바구니에서 싱싱한 참붕어를 꺼내 놓고

그냥 두면 쓰레기 될 퍼런 무청을 말린 시래기에 파 마늘 생강 콩나물 무 감자

인삼 양파 깻잎 쑥갓 밤 대추 기름 고춧가루 사골육수 청주까지

듬뿍듬뿍 넣고 찜을 만들어 새신랑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라

상 차려 덮어놓고 맛있는 술도 한 병 준비한 다음---,

시는 냉장고에 넣어야 한다

생선회도 숙성을 해야 맛이 더하듯 시도 잘 숙성을 시켜야 한다.

 

자리끼가 놓이던 자리에 백지 한 장 펼쳐 놓고

밤새도록 잠 속에서, 꿈속에서 싸우고 있다

그물과 작살을 바다에 던지고 흐르는 물에 낚시를 드리운다

허공에 그물 치고, 앞산 뒷산에 덫과 올무도 설치한다

고래는 못 잡아도 노루 토끼 고라니 멧돼지는 잡아야지

풀씨나 나무열매라도 털고,  멧비둘기 꿩 메추라기라도 잡아야지

버들치 갈겨니 쉬리 동자개 참마자 치리라도 잡고 싶은 밤은 어이 빨리 지새는가

꿈을 깨고 나면 열심히 암송했던 명시(?) 한 편이 간 곳이 없다

詩앗이나 詩알은 때를 놓치지 말고 그때 그때 잡아야 한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가면서 가래 두 알을 달그락달그락 굴리다 보면

살불이 일어 손바닥에 별이 뜬다

시의 별이 가슴에 와 안긴다 

무쇠솥 걸어 놓은 아궁이에 발갛게 타는 참나무 장작불

겨울 하늘까지 탁 탁 튀어오르는 불알, 불의 알처럼 영혼이 뜨겁다

시도 푸른 불알처럼 우리 가슴속에서 불타올라야 한다

하늘에 뜬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야 한다.

 

높이가 없으면 산이 아니고 깊이가 없으면 바다가 아니다

넓이가 없으면 하늘이나 들이 되지 못한다

한 편의 시도 높이와 깊이, 넓이가 있어야 한다

오늘도 새벽 세 시 한 대접의 냉수로 주린 영혼을 씻고 몸과 마음에 촛불을 밝힌다

시는 내 영혼이 피워내는 향기로운 꽃이요, 그꽃이 맺는 머드러기이다

시는 아무리 마셔도 물리지 않는 물이요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밥이다

보이지 않는 공기와 물과 밥이 만들어내는 한 방울의 뜨거운 피와 뼈다

시는 내 집이요 길이요 빛이요 꿈이다

우리의 영토에 드리우는 시원하고 환한 솔개그늘이다.

 

이름없는 풀이나 꽃은 없다, 나무나 새도 그렇다

이름 없는 잡초, 이름없는 새라고 시인이 말해서는 안 된다.

시인은 모든 대상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그 이름을 불러 주는 사람이다

이름없는 시인이란 말이 있다

시인은 이름으로 말해선 안 된다 다만 시로  말해야 한다

이름이나 얻으려고 장바닥의 주린 개처럼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고 기웃대지는 말 일이다

그래서 천박舛駁하거나 천박淺薄한 유명시인이 되면 무얼 하겠는가

속물시인,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꺼귀꺼귀하는 속물이 되지 말 일이다

가슴에 산을 담고 물처럼 바람처럼 자유스럽게 사는 시인

자연을 즐기며 벗바리 삼아 올곧게 사는 시인

욕심없이 허물없이 멋을 누리는 정신이 느티나무 같은 시인

유명한 시인보다는 혼이 살아 있는 시인, 만나면 반가운 시를 쓰는 좋은 시인이 될 일이다.

 

천기누설이 될지도 모르는 이 소중한 내용을 오늘 처음 세상에 쏟아 놓으시는 깊은 뜻은

사랑하는 마음 심히 큰지라 다음에 열거한 이들은 그 말씀 잘 기억할지어다. 

정순자, 최인숙 김순, 김미옥, 최나리, 오명현, 이응길, 나영애, 박덕규, 홍은표, 민문자,

장영규, 이삼현, 이귀향, 오문옥, 박장식, 임승진, 윤순호, 임도균, 조봉익, 조석환 

출처 : 자연과 시의 이웃들
글쓴이 : 민문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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