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독종毒種』2012

<시> 집을 수리하며

洪 海 里 2011. 12. 14. 04:14

 

 

 

집을 수리하며

 

洪 海 里

 

 

늦은 가을날

유방도 심장도 자궁도 다 버린

앙상한 몸 퀭한 가슴에 찬바람이 와 젖는

폐허에 배를 대고  십팔박十八泊을 했다

나도 집처럼 금 가고 이 빠진 늙은 그릇

한평생 채웠어도 텅 빈 몸뚱어리였다

집도 비어서야 비로소 악기가 되었다

바람이 지나가면 노랠 부르고

비 오는 밤에는 거문고 소리로 울었다

 

달밤에도 잘 보이던 것들이

창문을 다 떼어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간 굽고 꺾이면서 틈새를 날리고

집은 얼마나 많은 곡과 절을 염장했을까

하잘것없는 것들!

쓰잘데없는 것들!

보잘것없는 것들!

 

버리고 비워내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오래된 집을 위하여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질곡桎梏에 매이고 있는가

30년 만에 집 수리를 하면서.

 

 

 

- 시집『독종』(2012, 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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