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독종毒種』2012

<시> 발자국에는 발 자국이 없다

洪 海 里 2012. 1. 2. 02:31

 

 

발자국에는 발 자국이 없다

 

洪 海 里

 

 

먼 길을 허영허영 예까지 왔다

한평생 족대질에 눈먼 피라미

몇 마리나 잡았던가 

하루하루 저문저문 저물다 보니

길 아닌 길 없고 길인 길이 없었다

겨우 사는 시늉이나 내다 끝내고 마는

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니어서

물 마르고 바람 잠든 허허한 골짜기

시작도 않고 끝내지도 않기 위하여

만남도 없고 이별도 없는 흐름을 위하여

거리거리 동동대며 찍어 놓은 발자국

걸어간 이쪽과 돌아온 저쪽이 다르지 않았다

여름이 몸에서 나가고 겨울이 오는 것을

온몸으로 받아 안는 설이 분분雪異粉粉한 허청

바닥에 버려져야 바닥을 밟는 법이라서

말하지 않고 말을 하는 침묵으로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없는 세상을 찾아서

크고 작은 것 구분이 없는, 대책 없는

세밑에 홀로 서서 꽃첩을 펼쳐보니

발자국에는 발 자국이 없다.

 

 

- 시집『독종』(2012, 북인)

 

 

 

   * 洪喆憙 님이 '와온'에서 촬영한 해넘이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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