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론
洪 海 里
땅속의 一자 뿌리가 벋어나가며
지상으로 ㅣ자 몸을 올려
대나무는 ㅗ자 상징을 짓는다
비 온 다음날
사무치게 솟구치는 푸른 울력
고고呱呱를 내지를 새도 없다
뿌리줄기가 마디방을 만들면서 옆으로 길 때
지상에선 한 층 한 층 마디탑을 쌓고
천년과 찰나를 품어 지극한 청탑靑塔을 이룬다.
수천수만의 입술로 종소리를 내는
대나무는 더할 수 없이 가볍지만
마디 속마다 천의 소리를 기르기 위해
몸 굽혀 맞은 바람을 고요 속에 잠재운다
백년을 참다 꽃을 쏟아내면 이내 죽지만
아까울 것 하나 없다
대는 토막토막 잘리면 소리꽃을 피워
가슴속에 한과 신명을 짚어내고
갈기갈기 찢기면 삽상한 바람으로 고단한 땀을 들여 준다
오동梧桐에 깃든 봉鳳과 황凰을 보라
죽실竹實을 물고 천리를 날아간다
대나무는 죽어도 소리와 바람으로 천년을 산다.
- 시집『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도서출판 움,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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