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삼백초와 洪海里 시인의 시

洪 海 里 2012. 7. 7. 03:25

 

 

홍해리 선생님이 시선집『시인이여 詩人이여』를 보내왔다.

 

1969년 첫시집『투망도投網圖』로부터 2010년에 펴낸『비밀』에 이르기까지

15권의 시집에서 83편의 작품을 골랐다.

 

우선 그 중 앞에서부터 5편을 골라 학처럼 고고한 삼백초와 같이 싣는다.  

 

 

설마雪馬

 

눈처럼 흰 말

눈 속에 사는 말

눈 속을 달려가는 말

 

설마 그런 말이 있기나 하랴마는

눈처럼 흰 설마를 찾아

눈 속으로 나 홀로 헤맨다 한들

 

설마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만

말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말 달려가는 요란한 소리만 들려올 뿐

 

한평생 허위허위 걸어온 길이라 해도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아 막막하니

말꾼 찾아 마량馬糧을 준비할 일인가

 

오늘 밤도 눈 쌓이는 소리

창 밖에 환한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 해도

 

나를 비우고 지우면서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설마를 찾아 길 없는 밤길을 나서네.  

 

 

방짜징

 

죽도록 맞고 태어나

평생을 맞고 사는 삶이러니,

 

수천수만 번 두들겨 맞으면서

얼마나 많은 울음의 파문을 새기고 새겼던가

소리밥을 지어 파문에 담아 채로 사방에 날리면

천지가 깊고 은은한 소리를 품어

풀 나무 새 짐승들과

산과 들과 하늘과 사람들이 모두

가슴속에 울음통을 만들지 않는가

바다도 바람도 수많은 파문으로 화답하지 않는가

나는 소리의 자궁

뜨거운 눈물로 한 겹 한 겹 옷을 벗고

한평생 떨며 떨며 소리로 가는 길마다

울고 싶어서

지잉 징 울음꽃 피우고 싶어

가만히 있으면 죽은 목숨인 나를

맞아야 사는, 맞아야 서는 나를

때려 다오, 때려 다오, 방자야!

파르르 떠는 울림 있어 방짜인

나는 늘 채가 고파

 

너를 그리워하느니

네가 그리워 안달하느니!   

 

 

황태의 꿈

 

아가리를 꿰어 무지막지하게 매달린 채

외로운 꿈을 꾸는 명태다, 나는

눈을 맞고 얼어 밤을 지새우고

낮이면 칼바람에 몸을 말리며

상덕 하덕에 줄줄이 매달려 있는

만선의 꿈

지나온 긴긴 세월의 바닷길

출렁이는 파도로 행복했었나니

부디 쫄태는 되지 말리라

피도 눈물도 씻어버렸다

갈 길은 꿈에서도 보이지 않는

오늘밤도 북풍은 거세게 불어쳐

몸뚱어리는 꽁꽁 얼어야 한다

해가 뜨면

눈을 뒤집어쓰고 밤을 지새운 나의 꿈

갈가리 찢어져 날아가리라

말라가는 몸속에서

난바다 먼 파돗소리 한 켜 한 켜 사라지고

오늘도 찬 하늘 눈물 하나 반짝인다

바람 찰수록 정신 더욱 맑아지고

얼었다 녹았다 부드럽게 익어가리니

향기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나

뜨거운 그대의 바다에서 내 몸을 해산하리라.  

 

 

을 읽다

 

그녀는 온몸이 자궁이다

정월에 잉태한 자식 소금물 양수에 품고

장독대 한가운데 자릴 잡으면

늘 그 자리 그대로일 뿐……,

볕 좋은 한낮 해를 만나 사랑을 익히고

삶의 갈피마다 반짝이는 기쁨을 위해

청솔 홍옥의 금빛 관을 두른 채

정성 다해 몸 관리를 하면

인내의 고통으로 기쁨은 눈처럼 빛나고

순결한 어둠 속에서 누리는 임부의 권리

몸속에 불을 질러 잡념을 몰아내고

맵고도 단맛을 진하게 내도록

참숯과 고추, 대추를 넣고 참깨도 띄워

자연의 흐름을 오래오래 독파하느니

새물새물 달려드는 오월이 삼삼한 맛이나

유월이년의 뱃구레 같은 달달한 맛으로

이미 저만치 사라진 슬픔과

가까이 자리잡은 고독을 양념하여

오글보글 끓여 내면

투박한 기명器皿에 담아도

제 맛을 제대로 아는

이여, 너를 읽는다

네 몸을 읽는다 

 

 

황금감옥黃金監獄

 

나른한 봄날

코피 터진다

 

꺽정이 같은 놈

황금감옥에 갇혀 있다

금빛 도포를 입고

벙어리뻐꾸기 울듯, 후훗후훗

호박벌 파락파락 날개를 친다

 

꺽정이란 놈이 이 집 저 집 휘젓고 다녀야

풍년 든다

언제

눈감아도 환하고

신명나게 춤추던 세상 한 번 있었던가

 

호박꽃도 꽃이냐고

못생긴 여자라 욕하지 마라

티끌세상 무슨 한이 있다고

시집 못 간 처녀들

배꼽 물러 떨어지고 말면 어쩌라고

 

시비/柴扉 걸지 마라

꺽정이가 날아야

호박 같은 세상 둥글둥글 굴러간다

 

황금감옥은 네 속에 있다.

 

가져온 곳 : 
블로그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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