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洪海里 시인의 시와 양장구채

洪 海 里 2012. 7. 12. 04:03

 

 

洪海里 시선집『시인이여 詩人이여』에는 낯익은 시들만 모아놔서

읽을수록 정감이 간다.

 

그 시집 속에서 너무 긴 건 빼고

소화하기에 알맞은 걸로 다시 여덟 편을 뽑아

 

어느 늦은 봄날 별도봉에 가서

안개 속에서 찍은 양장구채 사진과 함께 올린다.  

 

 

 

물의 뼈

 

물이 절벽을 뛰어내리는 것은

목숨 있는 것들을 세우기 위해서다

 

폭포의 흰 치맛자락 속에는

거슬러 오르는 연어 떼가 있다

 

길바닥에 던져진 바랭이나 달개비도

비가 오면 꼿꼿이 몸을 세우듯

 

빈자리가 다 차면 주저 없이 흘러내릴 뿐

물이 무리하는 법은 없다

 

생명을 세우는 것은 단단한 뼈가 아니라

물이 만드는 부드러운 뼈다

 

내 몸에 물이 가득 차야 너에게 웃음을 주고

영원으로 가는 길을 뚫는다

 

막지 마라

물은 갈 길을 갈 뿐이다   

 

 

 

 

호박

 

한 자리에 앉아 폭삭 늙었다

 

한때는 푸른 기운으로 이리저리 손 흔들며 죽죽 벋어나갔지

얼마나 헤맸던가

방방한 엉덩이 숨겨놓고

활개를 쳤지

때로는 오르지 못할 나무에 매달려

버둥거리기도 했지

사람이 눈멀고 반하는 것도 한때

꽃피던 시절 꺽정이 같은 떠돌이 사내 만나

천둥치고 벼락치는 날개짓 소리에 그만 혼이 나갔겠다

치맛자락 뒤집어쓰고 벌벌 떨었지

숱한 자식들 품고 살다 보니

한평생이 별것 아니더라고

구르는 돌멩이처럼 떠돌던 빈털터리 돌이 아범 돌아와

하늘만 쳐다보며 한숨을 뱉고 있다

 

곱게 늙은 할머니 한 분 돌담 위에 앉아 계시다.  

 

  

 

 

귀북은 줄창 우네

 

 

세상의 가장 큰 북 내 몸속에 있네

온갖 소리북채가 시도 때도 없이 울려 대는 귀북이네

 

한밤이나 새벽녘 북이 절로 울 때면

나는 지상에 없는 세월을 홀로 가네

 

봄이면 꽃이 와서 북을 깨우고

불같은 빗소리가 북채가 되어 난타공연을 하는 여름날

내 몸은 가뭇없는 황홀궁전

둥근 바람소리가 파문을 기르며 굴러가는 가을이 가면

눈이 내리면서 대숲을 귓속에 잠들게 하네

 

너무 작거나 큰 채는 북을 울리지 못해

북은 침묵의 늪에 달로 떠오르네

 

늘 나의 중심을 잡아주는 북,

때로는 천 개의 섬이 되어 반짝이고 있네  

 

 

 

 

가을 들녘에 서서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산벚나무 꽃잎 다 날리고

     - 은적암隱寂庵에서

 

꽃 지며 피는 이파리도 연하고 고와라

때가 되면 자는 바람에도 봄비처럼 내리는

엷은 붉은빛 꽃이파리 이파리여

잠깐 머물던 자리 버리고 하릴없이,

혹은 홀연히 오리나무 사이사이로

하르르하르르 내리는 산골짜기 암자터

기왕 가야할 길 망설일 것 있으랴만

우리들의 그리움도 사랑도 저리 지고 마는가

온 길이 어디고 갈 길이 어디든 어떠랴

하늘 가득 점점이 날리는 마음결마다

귀먹은 꽃이파리 말도 못하고 아득히,

하늘하늘 깃털처럼 하염없이 지고 있는데

우리들 사는 게 구름결이 아니겠느냐

우리가 가는 길이 물길 따르는 것일지라

흐르다 보면 우리도 문득 물빛으로 바래서

누군가를 위해 잠시 그들의 노래가 될 수 있으랴

재자재자 끊임없이 흘러가는 물소리 따라

마음속 구름집도 그냥 삭아내리지마는

새로 피어나는 초록빛 이파리 더욱 고와라   

 

 

 

 

가을 엽서

 

풀잎에 한 자 적어

벌레소리에 실어 보냅니다

 

난초 꽃대가 한 자나 솟았습니다

벌써 새끼들이 눈을 뜨는

소리, 향기로 들립니다

 

녀석들의 인사를 눈으로 듣고

밖에 나서면

그믐달이 접시처럼 떠 있습니다

 

누가

접시에 입을 대고

피리 부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창백한 달빛을 맞은

지상의 벌레들도

밤을 도와 은실을 잣고 있습니다

 

별빛도 올올이 내려

풀잎에 눈을 씻고

이슬 속으로 들어갑니다

 

더 큰 빛을 만나기 위해

잠시

고요 속에 몸을 뉩니다

 

오늘도

묵언 수행 중이오니

답신 주지 마십시오.  

 

 

 

 

홍해리洪海里어디 있는가

 

의 나라

우이도원牛耳桃源

찔레꽃 속에 사는

그대의 가슴속

해종일

까막딱따구리와 노는

바람과 물소리

새벽마다 꿈이 생생生生

한 사내가 끝없이 가고 있는

과 행 사이

눈 시린 푸른 매화,

대나무 까맣게 웃고 있는

솔밭 옆 마을

꽃술이 술꽃으로 피는

난정蘭丁의 누옥이 있는

말씀으로 서는 마을

그곳이 홍해리洪海인가.  

 

 

 

숫돌은 자신을 버려 칼을 벼린다

 

제 몸을 바쳐

저보다 강한 칼을 먹는

숫돌,

 

영혼에 살이 찌면 무딘 칼이 된다.

 

날을 세워 살진 마음을 베려면

자신을 갈아

한 생을 빛내고,

 

살아 남기 위해서는 버려야 한다.

 

서로 맞붙어 울어야

비로소 이루는

상생相生,

 

칼과 숫돌 사이에는 시린 영혼의 눈물이 있다.

 

 

가져온 곳 : 
블로그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시화 및 영상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산책  (0) 2012.07.14
<시> 침묵  (0) 2012.07.14
삼백초와 洪海里 시인의 시  (0) 2012.07.07
<시> 자귀나무송  (0) 2012.07.04
[스크랩] 자귀나무꽃 / 洪海里  (0) 2012.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