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집 좋은 시>
자연에서 찾아내는 시의 블루오션
- 홍해리 시선집『시인이여 詩人이여』/ 한규동(시인)
황태의 꿈
洪 海 里
아가리를 꿰어 무지막지하게 매달린 채
외로운 꿈을 꾸는 명태다, 나는
눈을 맞고 얼어 밤을 지새우고
낮이면 칼바람에 몸을 말리면
상덕 하덕에 줄줄이 매달려 있는
만선의 꿈
지나온 긴긴 세월의 바닷길
출렁이는 파도로 행복했었나니
부디 쫄태는 되지 말리라
피도 눈물도 씻어버렸다
갈 길은 꿈에서도 보이지 않는
오늘밤도 북풍은 거세게 불어쳐
몸뚱어리는 꽁꽁 얼어야 한다
해가 뜨면
눈을 뒤집어쓰고 밤을 지새운 나의 꿈
갈가리 찢어져 날아가리라
말라가는 몸속에서
난바다 먼 파돗소리 한 켜 한 켜 사라지고
오늘도 찬 하늘 눈물 하나 반짝인다
바람 찰수록 정신 더욱 맑아지고
얼었다 녹았다 부드럽게 익어 가리니
향기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나
뜨거운 그대의 바다에서 내 몸을 해산하리라.
-「황태의 꿈」전문.
최근 ‘블루오션’이라는 용어가 칼럼이나 기고를 통해서 회자된 적이 있
다.『Blue Ocean Strategy(불루오션전략)』이라는 책에서 처음 주창되었
다. 저자는 기존의 경쟁이 심한 시장을 ‘Red Ocean'이라고 명명하고, 새
로운 경쟁이 없는 새로운 산업에 진출하거나 새로운 제품을 끝없이 개발
하려는 노력이 지금까지 꾸준하게 있어온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의 삶과 문학도 예외는 아니다. 인생의 블루오션을 찾기 위
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도전과 노력에 끝없이
매달린다.
문학에서의 블루오션은 시인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상상력이 경쟁력이
다. 시인이 오랜 기간 시를 쓰면서 추구하고 있는 시적 상상력을 찾아가는
것이 블루오션전략일 것이다.
홍해리 시인은 자연의 사물을 통하여 시적 상상력을 찾아내고 새로운
시세계를 추구한다. 시인은 덕장에 걸려 있는 명태를 보며 상상한다. 명
태의 존재를 통해서 시인의 삶을 투사한다. 어부에게 잡혀 올라와 아가리
에 꿰어 덕장에 매달리는 순간 자신과 오버랩이 된다. 명태는 혹한의 추
위와 견디면서 단단해지고 속살은 부드러워진다. 시인의 삶과 시詩 또한
그렇다. 또 바다로 가서 만선의 꿈을 꾸고 있다.
시인은 지나온 삶이 파도가 출렁이는 바닷길이었지만 행복했었다고 고
백을 한다. 시류時流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스타일로 꿈꾸며
버리지 않았던 삶이 덕장과 바다에서 묻어난다. 덕장에서의 바람이 찰수
록 정신이 맑아진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
시인의 문학적 블루오션은 꽃 한 송이에 깃들인 우주적 상상력을 찾아
내는 일이다. 바다의 작은 항구는 자궁이다. 이곳에서 새 생명이 태어난
다. “수천 길/ 암흑의 갱/ 반짝이는 언어의 사금” 시인의 상상력은 연약한
난蘭의 뿌리에서 암벽을 파고드는 갱도를 찾아낸다.
갱도는 암흑의 공간이다. 암흑의 공간이지만 황금이 있다. 인간의 욕구
를 보여주는 현실세계를 이야기하지만 시인에겐 사욕이 없다. 가슴속에
서 아지랑이가 되어 산화하거나 어느 날은 찔레꽃의 꽃방에서 푸른 바다
를 헤쳐 나간다. 난蘭의 뿌리처럼 살고, 푸른 바다를 항해하며 자유로운
영혼 속에 있다.
이번 시집은 시인이 그동안 쓴 시 중 대표성 있는 시를 모아 엮은 시선
집이다. 홍해리 시인이 생각하는 시詩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자연을 심안으로 보아내며 자연에서 뽑아놓은 명주실 같은 탱탱한 사랑
이다. 자벌레가 나뭇가지 위에서 지나는 것을 보고 산을 보듯이 섬세한
심안心眼의 통찰력이다.
현대 사회는 100세 시대라 한다. 90세에 전시를 준비하는 어느 서예
가의 집념처럼 오늘도 새로움을 찾아 예술과 문학적 삶의 블루오션을
탐구하는 洪海里 시인이야말로 이 시대의 참 젊은 시인이라 생각한다.
- 《문학과 창작》2012. 가을호(통권 135호)
'시론 ·평론·시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읽은 시 한 편 / 洪海里의「산책」: 이재부(시인) (0) | 2012.09.13 |
---|---|
<시> 가을 들녘에 서서 / 김재홍 (0) | 2012.08.25 |
<시> 가을 들녘에 서서 / 이동훈(시인) (0) | 2012.08.09 |
『시인이여 詩人이여』 감상 / 한수재( (0) | 2012.08.06 |
<서평> 눈빛으로 세운 나라, 시인이여 詩人이여! / 손현숙(시인) (0) | 2012.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