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읽은 시 한 편>
산책
洪 海 里
산책은 산 책이다
돈을 주고 산 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책이다
발이 읽고
눈으로 듣고
귀로 봐도 책하지 않는 책
책이라면 학을 떼는 사람도
산책을 하며 산 책을 펼친다
느릿느릿
사색으로 가는 깊은 길을 따라
자연경自然經을 읽는다
한 발 한 발.
-《우리詩》(2012년 8월호 통권 290호)
시인들 곁에서 시를 읽으며 늙는 것은 천복天福의 향연이리. 청정한 시담을 즐기며 벗님과 탁주 한잔 나누면 억만장자의 금력이나, 통치자의 권력에 묻어 다니는 욕심의 가격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호화 별장에 들락거리고 고급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청정한 거부巨富, 청백리 별장에서 서책을 즐기며 살면 금상첨화이겠지만 꿈속에서도 경험한 사실이 없지 않는가.
그러나 실망 할 일은 아니다. 자연을 벗 삼아 고고한 자존의 길을 가는 선비 시인을 바라보며 그의 시상을 흠모하고 시심을 공유하면 호사豪奢보다 그윽한 삶의 맛이 거기에 있다. 그 길이 얼마나 가치 있고 행복한 길인지는 경험해야 아는 하일夏日 염천炎天에 녹음의 경지다. 시를 구상하며 산책散策을 즐기는 시인의 생활 속에는 무진, 무진 퍼져나가는 생동하는 생각이 서책인가 보다. 산책은 산[生] 책을 읽는 것이란다. 시심을 생활 속으로 가져와서 시정詩情을 섬기고 자연과 동행하여 사는 재미를 무엇에 비교하리요.
건강을 생각하며 산책을 즐기는 사람이 참으로 많아졌다. 산책길이 관광명소가 되기도 하여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만들고 선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명소를 찾지 않아도 좋다. 자아를 다독여 사색을 즐기는 산책이면 어디인들 어떠랴. 홍해리 시인님의「산책」이란 시는 참된 사색을 즐기는 길을 열어주는 명시다. 허욕을 버리고 정결하게 사는 선비의 길이며, 노경을 다독이며 인생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며, 서민 대중을 교화하는 자정의 도력道力이다. 살아있는 책 자연경自然經을 읽는 방법을 배우고 실습하며 시인의 혜안에 감탄하고, 시혼에 동화 되어 이끌린다.
시「산책」을 암송하며 산길을 따라가면 그리움의 정담이 가슴에서 들린다. 귀에 익은 새들과 곤충들의 지저귐이 한 가락의 시심 가득한 노래가 되기도 하고, 고향 소리로도 들리며, 보고 싶은 사람의 환상이 떠오르게도 한다. 해거름 산길에서는 석양의 미소 속에서 인생의 그림책을 눈으로 듣고 귀로 보며 발로 읽는다. 석양 속에 내가 있고, 내가 석양인데 서론보다 긴 결론을 왜 찾고 있는지. 허술하게 흘려보낸 세월에서 남은 시간을 재는 것이리.
숲이 우거진 사이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또 다른 세상인데, 해가 기우는 서쪽 하늘엔 구름의 채색이 한 폭의 명화다. 시가지 원경과 산으로 이어지는 산해의 경관은 결국 산으로 한계를 긋는 듯 멍울진 시야가 흐려진다. 내가 늙은 탓이리. 내 시계視界엔 산도, 하늘도 붉은 노을인데, 그 한계의 끝은 산에서 산이요 하늘이다. 한계가 없는 자연의 무한한 경전이리라.
존경하는 시인은 저런 정경을 보고 “산책은 살아 있는 책을 읽는 것”이라 고 했을 것이다. 그 시를 중얼거리면 시선詩仙의 길을 가는 듯, 살아 있는 책을 읽는 듯, 현실과 시상의 세계를 오가느라 혼자 즐김이 오히려 옹골차다. 무관심 했던 길이었는데 시인의 깨우침에서 자연경自然經을 읽는 혜안을 얻는다.
‘생각의 문을 열고 오감을 동원하라!’는 명령이 없어도 고즈넉한 산책길에선 생각의 누각을 오르고, 내리게 된다. 사색의 길이 회상의 길도 되어 마음 가는 사람들과 어울리던 추억의 길도 거닐게 되니까. 지나간 세월 속에 정성을 다하지 못함에 후회의 성을 쌓기도 하지만, 흘러간 젊음은 들꽃에 서 더 아름답다. 자연경의 서문이 있다면 어떤 내용일까. 자연이 예술이요, 예술이 자연인 삶이 인생의 경전임을 안내했으리라. 서산을 넘는 석양의 행렬이 너무나 화려해서 발을 멈추고 얼없이 바라만 본다.
‘저 아름다운 천계天界 정경情景은 누구의 마음일까’ 노을이 만드는 화면의 자막을 읽기엔 내 시력이 모자란다. 석양은 무슨 언어로 저 긴 설명문을 쓰는지. 지상의 애환을 다 보고도 못 본 듯 지나치더니 참았던 감정을 색깔로 풀어내는가. 서쪽하늘에 내려놓는 화첩에 필치도, 색채도 미지의 경지다. 어느 화공이 저 자연이 그리는 대형화면을 흉내내리요. 태양도 하루를 마감하는 기록엔 일필휘지의 채색 사인을 남기나 보다. 일몰의 낙관이다. 그 흔적이 내 서러움을 위로해 주는 것 같아서 가슴이 멍-해진다.
저 신비의 운해의 모양을 무엇에 비교하리오. 하늘가람伽藍의 큰 스님이 법승을 모아놓고 중생을 구제하자는 서원誓願을 약속하는지도 모른다. 하늘과 땅 우주의 오늘과 내일을 이어놓고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는 열반식이면 어떠리. 내 가슴으로 연결된 인연의 끈을 당기는 듯, 놓아주는 듯 정감을 부풀리는데 그의 사랑의 언어를 해석할 능력이 없다. 소원의 끈을 풀고, 행복을 따라가려고 경배의 손을 가슴에 모으며, 고개를 숙여 그늘진 소망을 석양에 싣는다. 병고를 참으며 고생하는 누님과 아내의 활기를 찾게 해달라고 간절한 기도의 자연경을 읽고 있음이리.
홍해리 시인님의 시「산책」은 소리 내어 읽기보다는 산책을 즐기며 가슴으로 읽고, 발로 감상해야 시심의 공명이 더 아름답다. 깊은 맛이 울어난다. 그 맛은 시 밭을 일구는 사색의 땀 맛이요, 경전經典과 그 해설인 경전經傳의 의미를 전함이리라. 시인이 말하는 산[生] 책에서의 자연은 서양인이 사람과 자연을 편 가르는 기계론적 자연관은 아니리. 나를 포함하여 있는 그대로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인 노자의 도덕경 속의 자연경이 아닐는지.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통일하며 번뇌를 끊고 진리를 깊이 생각하여 무아無我의 경지에 드는 일, 즉 선禪의 경지에서 접하는 자연의 서책이리라.
시「산책」을 읽으며 언어유희의 신비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시인을 언어의 마술사라하면 결례일까. 산책길에서 살아 있는 책을 읽으며, 홍해리 시인의 시상詩想에 빠져 시선詩仙의 경지에서 번역한 자연경自然經으로 마음을 채운다.
* 이재부 : 《한국문인》으로 등단. 시집으로『사랑빛 방황의 노래』, 수필 집으로『백팔 번뇌』『강으로 지는 노을』등이 있음. leejbbu7418@hanmail.net
- 월간《우리詩》(2012. 10월호)
'시론 ·평론·시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洪海里 시선집『시인이여 詩人이여』/ 주경림(시인) (0) | 2012.10.18 |
---|---|
<시감상>「아름다운 남루」 / 박동남(시인) (0) | 2012.10.10 |
<시> 가을 들녘에 서서 / 김재홍 (0) | 2012.08.25 |
<시평> 황태의 꿈 : 자연에서 찾아내는 시의 블루오션 / 한규동 (시인) (0) | 2012.08.24 |
<시> 가을 들녘에 서서 / 이동훈(시인) (0) | 2012.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