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녘에 서서
洪 海 里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 마음을 버리면 스스로 빛이 납니다
옛날 어떤 올곧은 분이 못 들을 소리를 들었다 하여 귀를 씻고 있었다는 얘기가 전해 오지요.
사실 시끄러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 판치는 세상에서는 눈감고 귀 막고 사는 것도 한 좋은 방법이라고 할 겁니다.
그렇지만 산다는 게 어디 그리 뜻대로만 되는가요.
눈 감아도 귀 막아도 들려올 건 다 들려오게 마련이지요.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가지 묘책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음을 내려놓고, 미움을 모두 버리는 것이지요.
그러면 몸과 마음이 가뿐해지고, 다시 가슴속 저 깊은 곳으로부터 새 마음이 샘물처럼 초록초록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람보다 자연이 더 지혜롭다는 것을 깨닫곤 합니다.
저 가을 들녘을 보십시오.
한 해 동안 열심히 땀 흘리다가 풍요로운 가을걷이 끝내고 나면,
그냥 그렇게 무심한 마음으로 겨우내 자신을 텅 비워 버리지 않습니까? 그러니 자연은 우리들에게 큰 스승일 수밖에요.
우리도 더 가을 들녘의 자세와 마음을 배워야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을 위해, 또한 이웃을 위해 노력하면서 마음속에 부질없는 생각들을 비워야겠습니다.
그러고 나면 눈물겨운 마음자리가 오히려 스스로 빛나지 않겠습니까?
- 김재홍(문학평론가. 경희대 국문과 명예교수)
'시론 ·평론·시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감상>「아름다운 남루」 / 박동남(시인) (0) | 2012.10.10 |
---|---|
내가 읽은 시 한 편 / 洪海里의「산책」: 이재부(시인) (0) | 2012.09.13 |
<시평> 황태의 꿈 : 자연에서 찾아내는 시의 블루오션 / 한규동 (시인) (0) | 2012.08.24 |
<시> 가을 들녘에 서서 / 이동훈(시인) (0) | 2012.08.09 |
『시인이여 詩人이여』 감상 / 한수재( (0) | 2012.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