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시> 가을 들녘에 서서 / 김재홍

洪 海 里 2012. 8. 25. 11:17

 

가을 들녘에 서서

 

洪 海 里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 마음을 버리면 스스로 빛이 납니다

 

  옛날 어떤 올곧은 분이 못 들을 소리를 들었다 하여 귀를 씻고 있었다는 얘기가 전해 오지요.

사실 시끄러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 판치는 세상에서는 눈감고 귀 막고 사는 것도 한 좋은 방법이라고 할 겁니다.

그렇지만 산다는 게 어디 그리 뜻대로만 되는가요.

눈 감아도 귀 막아도 들려올 건 다 들려오게 마련이지요.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가지 묘책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음을 내려놓고, 미움을 모두 버리는 것이지요.

그러면 몸과 마음이 가뿐해지고, 다시 가슴속 저 깊은 곳으로부터 새 마음이 샘물처럼 초록초록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람보다 자연이 더 지혜롭다는 것을 깨닫곤 합니다.

 저 가을 들녘을 보십시오.

 한 해 동안 열심히 땀 흘리다가 풍요로운 가을걷이 끝내고 나면,

그냥 그렇게 무심한 마음으로 겨우내 자신을 텅 비워 버리지 않습니까? 그러니 자연은 우리들에게 큰 스승일 수밖에요.

 

  우리도 더 가을 들녘의 자세와 마음을 배워야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을 위해, 또한 이웃을 위해 노력하면서 마음속에 부질없는 생각들을 비워야겠습니다.

그러고 나면 눈물겨운 마음자리가 오히려 스스로 빛나지 않겠습니까?

                                                                                              - 김재홍(문학평론가. 경희대 국문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