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시감상>「아름다운 남루」 / 박동남(시인)

洪 海 里 2012. 10. 10. 04:05

 

<내가 읽은 시 한 편>

 

 

아름다운 남루

 

洪 海 里

 

 

잘 썩은 진흙이 연꽃을 피워 올리듯

산수유나무의 남루가

저 눈부시게 아름다운 빛깔을 솟구치게 한

힘이었구나!

누더기 누더기 걸친 말라빠진 사지마다

하늘 가까운 곳에서부터

잘잘잘 피어나는 꽃숭어리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소리

노랗게 환청으로 들리는 봄날

보랏빛 빨간 열매들

늙은 어머니 젖꼭지처럼, 아직도

달랑, 침묵으로 매달려 있는

거대한 시멘트 아파트 화단

초라한 누옥 한 채

쓰러질 듯 서 있다.

 

이 막막한 봄날

누덕누덕 기운 남루가 아름답다.

                           -『봄, 벼락치다』(2006)중에서

 

 

   올여름은 찜통더위에 열대야까지 겹쳐 유난히도 덥더니만 태풍이 볼라벤, 덴빈, 산바가 차례로 몰려오는 바람에 바다 양식장과 해안의 피해는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물가도 이제 계속 고공행진을 할 것이며, 우리네 살림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이런 일들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는 시간이 있어 기쁘다. 홍해리 시선집『시인이여 詩人이여』를 받고 번뜩이는 시어로 맑고 투명한 물방울을 보는 듯한 작품들이 새삼 놀라워 작품을 대할 때마다 전율하는 감동의 시간들이 행복하다. 「아름다운 남루」라는 시의 제목에 눈길이 간다. 탁하기 이를 데 없는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치마를 펴듯 잎을 펼치고 사는 연이 꽃을 피워 올리는 아름다움은 여성을 상징한다. 이렇듯 산수유도 그 남루의 초라함이 같다고 시인은 말한다. 나무는 남루하지만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빛깔은 연꽃과 동일함을 시인은 주장한다.

   전원주택에서 도저히 꽃을 피워낼 것 같지 않은 나무를 보았다. 죽은 나무를 왜 마당 한가운데 뽑지 않고 덩그러니 남겨 놓았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직장에 출근할 때마다 보았는데 새봄 추위가 가시지 않은 날임에도 성급하게 꽃부터 노랗게 내미는 것을 보았다. 마치 인조 나무 같은 느낌이어서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면서 꽃잎을 따 보았다. 아! 그것은 살아 있는 생명이었다.

   시인의 눈은 예리하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빛깔을 솟구치게 한 힘은 또 다른 상상을 불러 일으켜 마치 별밭을 뜨락에 옮겨 나무에 걸어 놓은 듯한 느낌이다. 누더기 누더기 걸친 말라빠진 사지, 이 구절은 노인을 상상한 것이 아닐까? 그 젊은 날의 처녀시절은 더 없이 곱고 아름다웠을 것이고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동안에도 여전히 그 아름다움은 지속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비록 늙어 남루하지만 그 자식들은 건강하고 훌륭한 성인으로 성장했으리라.

  하늘에 가까운 곳에서부터 피어나는 꽃숭어리라는 표현은 부활을 의미하는 뜻도 있지만 나무가 서 있는 곳까지 별이 쏟아지는 착시 현상이 이 시를 더욱 빛나게 한다. 별처럼 잘 길러낸 자식들 뒤에 늙으신 어머니가 계시다.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소리는 살아 숨 쉬며 호흡하는 생명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바쁜 일과에도 뱃속 아이의 태동소리는 여전히 건강하다.

   또한 따뜻한 색이 환청으로 들리는 색깔에도 생명의 소리가 있음을 읽어낸다. 늙은 어머니의 젖꼭지는 자식들에게 젖을 물려주고 길러내어 보랏빛을 띤 빨간 열매, 바로 그 젖꼭지. 밭을 매고 일구시던 누덕누덕 기워 입은 바로 그 삼베적삼이 기억난다. 가난에 찌든 그 시대 우리를 길러내신 어머니임에 더할 말조차 잃어버린다. 농촌을 버리고 도회지에 자식을 따라 오게 되어 아파트 단지 화단 앞 의자에 앉아 지금은 초라한 누옥처럼 성성한 백발에 쓰러질 듯한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비록 남루한 행색이지만 단정함은 여전하다. 남루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마지막 연이 가슴을 적시게 한다. 연꽃 같은 어머니, 아 어머니!

  요즈음엔 자식들의 보살핌이 적어 소외된 노인들이 많다. 핵가족 시대 독거노인들의 고독! 말동무가 없어 종일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면 치매에 걸리는 노인들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고령화시대로 이미 진입하고 있고 요즈음은 결혼을 거부하는 여성들이 많다. 생활능력이 되어도 남자의 뒷바라지나 하며 사는 것이 귀찮다 한다.

  오죽하면 여자도 제3국에서 수입해 결혼을 할까. 이제는 단일 민족이라는 말은 오래 전 이야기로 변하고 말았다. 지하철을 타도 이제는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아 지금의 경로석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지금의 현실에 이 시는 다시금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예고의 시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시인은 이미 이런 일들을 상상했을 법하다.

                                                                                                       - 박동남(시인)

- 월간《우리詩》2012.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