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洪海里 시선집『시인이여 詩人이여』/ 주경림(시인)

洪 海 里 2012. 10. 18. 08:10

 

2012년 10월 15일

 

<洪海里 시선집『시인이여 詩人이여』>

 

가장 신선한 새벽 투망을!

 

 

『비밀』에서 『투망도投網圖』까지 15권의 시집에서 선별한 83편의 시를 잘 읽었습니다.

선별하시기가 무척 어려웠으리라 짐작하며 이번 『시인이여 詩人이여』는 선생님의 시력을

조망해 볼 수 있는 기념비적인 시선집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투망도投網圖』에서의 초심을 견지하며 어떤 시류에도 휩쓸리지 않고 서정시를 가열차게

써오신 선생님은 후배들의 귀감입니다.

  또한《우리詩》를 번성하게 일궈놓으시어 제가 무임 승차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어 감사드립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소리밥을 지어 사방으로 날린다는 「방짜징」,

생명줄인 먹줄을 늘여놓는「먹통 사랑」,

네 앞에 서면 그냥 배가 부르다는 「독」의 여운이 마음속에 오래 남았습니다.

  「무교동」연작 시편들에서는 선생님의 30대 시절의 문명비판과 저항의식을 읽을 수 있어

제게는 새롭기도 했습니다.

둘이 맷방석 앞에 마주앉아 맷돌 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연가」또한 제 시심에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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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맷중쇠 중심을 잡고

너는 매암쇠 정을 모아다

서름도 아픔까지 곱게 갈아서

껍질은 후후 불어 멀리멀리 날리자

때로는 소금처럼 짜디짠 땀과 눈물도 넣고

소태처럼 쓰디쓴 슬픔과 미움도 집어 넣으며

둘이서 다붓 앉아 느럭느럭 돌리다 보면

알갱이만 고이 갈려 쌓이지 않으랴

여기저기 부딪치며 흘러온 강물이나

사정없이 몰아치던 바람소리도

추억으로 날개 달고 날아올라서

하늘까지 잔잔히 어이 열리지 않으랴.

                  -「연가」-지아地娥에게 후반부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에 녹두를 갈고 콩국을 만들던 정겨운 풍경이 눈앞에 영상으로 펼쳐졌습니다.

시 쓰기 또한 이와 같아 땀과 눈물, 슬픔과 미움이 한데 어울려 갈아지고 여과되어 얻어지는 고운 알갱이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선생님의 호가 ‘蘭丁’이며 ‘蘭’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난농장을 하는 친구에게 그냥

다 주어버렸다는 이야기는 전설처럼 들립니다.

  가장 귀중한 것을 소유하지 않고 회향하는 선생님의 시의 향기에 젖어 잠시 세상 걱정거리들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새벽 투망으로 걷어 올릴 지순한 고기 떼의 찬란한 순수의 비늘, 청자의 항아리,

고려의 하늘이 시의 향기로 더욱 깊고 그윽하게 퍼져나가길 독자의 한 사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아름다운 시선집의 발간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