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시인이여 詩人이여』2012

[스크랩] 홍해리 시인 시선집 『시인이여 詩人이여』(우리글시선083) 출간

洪 海 里 2013. 1. 13. 05:05

 

洪海里 시인의 시선집『시인이여詩人이여』가

도서출판 우리글에서 '우리글시선083'으로 출간되었다.

임보 시인의「난정기蘭丁記」, 신현락 시인의 시인론「해리海里,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을찾아서」와 함께

203쪽에 83편의 시가 실려 있다. 정가는 9,500원이다.

 

 

[홍해리 시인]

 충북 청원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1964)하고, 1969년 시집『投網圖』를 내어 등단하였다.

사단법인 우리詩진흥회 초대 및 2대 이사장을 역임하고 현재 평의원으로 한운야학閑雲野鶴처럼 살고 있다.

시집으로『投網圖』,『花史記』,『武橋洞』,『우리들의 말』, 『바람 센 날의 기억을 위하여』, 『대추꽃 초록빛』, 

淸別』,『은자의 북』,『난초밭 일궈 놓고,『투명한 슬픔』,『애란愛蘭』,『봄, 벼락치다』,푸른 느낌표!』,

『황금감옥』, 『비밀』, 시선집으로 『洪海里 詩選(탐구신서275)』과 『비타민 詩』가 있다.

http://blog.daum.net/hong1852

hongpoet@hanmail.net

 

 

 

 

 

 

 

 

     시인의 말

   

       

  내 시는 모두가 자연에게서 무이자로 빌려온 것들이다.

  한 포기 풀만도 못하고 한 송이 꽃만도 못한 것들뿐이라서 늘 자연에게 부끄럽기 그지없다.

 

  이 시선집에는 1969년에 낸 첫 시집『투망도投網圖』로부터 2010년에 펴낸『비밀』에 이르기까지 15권에서 83편의 작품을 내 시선으로 골라 이번 시선을 엮는다.

  20세기에 낸 11권의 시집에서는 각각 5편씩, 21세기 들어서 펴낸 4권의 작품집에서는 각각 7편식을 추려 올렸다.

 

  시선 뒤에 올린「난정기蘭丁記」를 써 주신 임보 시인과 洪海里論인「해리海里,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을찾아서」를 써 주신 신현락 시인께 고마운 마음을 여기 적어 남긴다.

 

 

 

 

  2012년 신록이 짙은 洗蘭軒에서,

  洪海里 적음.

 

                                     

[추천글]

 

세이천洗耳泉 오르는 솔밭 고개

바다만큼 바다만큼 난초蘭草밭 피워 놓고

한란寒蘭, 춘란春蘭, 소심素心, 보세報歲

흐르는 가지마다 그넷줄 얽어

구름을 박차고 하늘을 날다

빈 가슴에 시가 익으면

열 서넛 동자놈 오줌을 싸듯

세상에다 버럭버럭 시를 갈긴다.

 - 「난초 書房 海里」, 임보(시인)

 

 

  홍해리 시인의 시적 출발은 현실세계에 대한 탐구보다는 심미적 세계의 가치 추구가 우선한다고 진술하였다. 선생의 미의식은 현실적 가치와 심미적 가치가 충돌할 경우, 때로는 비장미를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있는 세계와 있어야 하는 세계를 조화롭게 보려고 하는 우아미가 우세하다. 그런 면에서 선생은 형식적으로는 고전주의자이며 기질적으로는 낭만주의자이면서 전통에서 새로운 미학적 가치를 찾는 이 시대의 미학주의자요 멋과 풍류를 온몸으로 즐기는 선비 시인이다.

 - 신현락(시인)의 시인론 중에서

 

 

 

[시감상]

   

 

방짜징

 

 

죽도록 맞고 태어나

평생을 맞고 사는 삶이러니,

 

수천수만 번 두들겨 맞으면서

얼마나 많은 울음의 파문을 새기고 새겼던가

소리밥을 지어 파문에 담아 채로 사방에 날리면

천지가 깊고 은은한 소리를 품어

풀 나무 새 짐승들과

산과 들과 하늘과 사람들이 모두

가슴속에 울음통을 만들지 않는가

바다도 바람도 수많은 파문으로 화답하지 않는가 

나는 소리의 자궁

뜨거운 눈물로 한 겹 한 겹 옷을 벗고

한평생 떨며 떨며 소리로 가는 길마다

울고 싶어서

지잉 징 울음꽃 피우고 싶어

가만히 있으면 죽은 목숨인 나를

맞아야 사는, 맞아야 서는 나를 

때려 다오, 때려 다오, 방자야!

파르르 떠는 울림 있어 방짜인

나는 늘 채가 고파

 

너를 그리워하느니

네가 그리워 안달하느니!

    
                              - 시집『비밀』(2010)

 

 

 

 

귀북은 줄창 우네


 

세상의 가장 큰 북 내 몸속에 있네
온갖 소리북채가 시도 때도 없이 울려 대는 귀북이네

한밤이나 새벽녘 북이 절로 울 때면
나는 지상에 없는 세월을 홀로 가네

봄이면 꽃이 와서 북을 깨우고
불같은 빗소리가 북채가 되어 난타공연을 하는 여름날
내 몸은 가뭇없는 황홀궁전
둥근 바람소리가 파문을 기르며 굴러가는 가을이 가면
눈이 내리면서 대숲을 귓속에 잠들게 하네

너무 작거나 큰 채는 북을 울리지 못해
북은 침묵의 늪에 달로 떠오르네

늘 나의 중심을 잡아주는 북,
때로는 천 개의 섬이 되어 반짝이고 있네

  

                                       -시집『황금감옥』(2008)

 

 

 

물의 뼈


 

물이 절벽을 뛰어내리는 것은
목숨 있는 것들을 세우기 위해서다


폭포의 흰 치맛자락 속에는
거슬러 오르는 연어 떼가 있다


길바닥에 던져진 바랭이나 달개비도
비가 오면 꼿꼿이 몸을 세우듯


빈 자리가 다 차면 주저없이 흘러내릴 뿐
물이 무리하는 법은 없다


생명을 세우는 것은 단단한 뼈가 아니라
물이 만드는 부드러운 뼈다


내 몸에 물이 가득 차야 너에게 웃음을 주고
영원으로 가는 길을 뚫는다


막지 마라
물은 갈 길을 갈 뿐이다

 

                                       - 시집『황금감옥』(2008)

 

 

 

 

 봄, 벼락치다 

 

 

  천길 낭떠러지다, 봄은.

  어디 불이라도 났는지
  흔들리는 산자락마다 연분홍 파르티잔들
  역병이 창궐하듯
  여북했으면 저리들일까.

  나무들은 소신공양을 하고 바위마다 향 피워 예불 드리는데 겨우내 다독였던 몸뚱어리 문 열고 나오는게 춘향이 여부없다 아련한 봄날 산것들 분통 챙겨 이리저리 연을 엮고 햇빛이 너무 맑아 내가 날 부르는 소리,

  우주란 본시 한 채의 집이거늘 살피가 어디 있다고 새 날개 위에도 꽃가지에도 한자리 하지 못하고 잠행하는 바람처럼 마음의 삭도를 끼고 멍이 드는 윤이월 스무이틀 이마가 서늘한 북한산 기슭으로 도지는 화병,

  벼락치고 있다, 소소명명!

 

                                     - 시집『봄, 벼락치다』(2006)

 

 

 

가을 엽서

 

 

풀잎에 한 자 적어

벌레소리에 실어 보냅니다

 

난초 꽃대가 한 자나 솟았습니다

벌써 새끼들이 눈을 뜨는

소리, 향기로 들립니다

 

녀석들의 인사를 눈으로 듣고

밖에 나서면

그믐달이 접시처럼 떠 있습니다

 

누가

접시에 입을 대고

피리 부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창백한 달빛을 맞은

지상의 벌레들도

밤을 도와 은실을 잣고 있습니다

 

별빛도 올올이 내려

풀잎에 눈을 씻고

이슬 속으로 들어갑니다

 

더 큰 빛을 만나기 위해

잠시,

고요 속에 몸을 뉩니다

 

오늘도

묵언 수행 중이오니

답신 주지 마십시오.

 

 

               - 시집『푸른 느낌표!』(2006)

  

 

 

시인이여 시인이여

- 詩丸

 

 

말없이 살라는데 시는 써 무엇 하리
흘러가는 구름이나 바라다볼 일
산속에 숨어 사는 곧은 선비야
때 되면 산천초목 시를 토하듯
금결 같은 은결 같은 옥 같은 시를
붓 꺾어 가슴속에 새겨 두어라.


시 쓰는 일 부질없어 귀를 씻으면
바람소리 저 계곡에 시 읊는 소리
물소리 저 하늘에 시 읊는 소리
티없이 살라는데 시 써서 무엇 하리
이 가을엔 다 버리고 바람 따르자
이 저녁엔 물결 위에 마음 띄우자.

 

 

                          -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출처 : 우리시회(URISI)
글쓴이 : 황연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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