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 』2016

<시> 독사

洪 海 里 2013. 2. 7. 03:56

 

독사

 

洪 海 里

 

 

가난해도 찔레꽃 필 때 좋았다

실하게 쑥쑥 솟아오르는 새순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하얀 꽃 피어 코가 알싸할 때면

배고픈 눈에 세상이 어지럽기도 했지만

슬픔 같은 건 물가 모래처럼 쓸려나가고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아무 말도 없이 네가 떠나고 나서

빈자리만 잔향으로 가득하니

취한 벌 잉잉거리는 소리

가슴속 호수에 잔 파문을 짓는다

네가 꽃피던 때가 그리워

가시덤불 아래 똬릴 틀고 기다리노니

찔레꽃 피고 지고 또 피고 지며

날것으로 푸르른 봄날은 가지만

몸속에 일렁이는 광기와 일탈의 불꽃

제 등도 스스로 긁지 못하는 슬픔으로

찔레꽃은 한 잎씩 떨어져 내리는데

어찌하여 여치는 이리 울어 쌓는 것이냐

찌르르찌르르 세월만 흘러가는 것이냐.

    


- 시집『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도서출판 , 2016)

              - 계간《시에》(2013.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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