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사
洪 海 里
가난해도 찔레꽃 필 때 좋았다
실하게 쑥쑥 솟아오르는 새순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하얀 꽃 피어 코가 알싸할 때면
배고픈 눈에 세상이 어지럽기도 했지만
슬픔 같은 건 물가 모래처럼 쓸려나가고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아무 말도 없이 네가 떠나고 나서
빈자리만 잔향으로 가득하니
취한 벌 잉잉거리는 소리
가슴속 호수에 잔 파문을 짓는다
네가 꽃피던 때가 그리워
가시덤불 아래 똬릴 틀고 기다리노니
찔레꽃 피고 지고 또 피고 지며
날것으로 푸르른 봄날은 가지만
몸속에 일렁이는 광기와 일탈의 불꽃
제 등도 스스로 긁지 못하는 슬픔으로
찔레꽃은 한 잎씩 떨어져 내리는데
어찌하여 여치는 이리 울어 쌓는 것이냐
찌르르찌르르 세월만 흘러가는 것이냐.
- 시집『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도서출판 움, 2016)
- 계간《시에》(2013. 여름호)
'시집『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 』2016'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쑹화단松花蛋 (0) | 2013.03.27 |
---|---|
<시> 우수雨水 경칩驚蟄 (0) | 2013.02.26 |
<시> 신아리랑 (0) | 2013.01.03 |
<시> 얼음폭포 (0) | 2012.12.12 |
<시> 가랑잎 (0) | 2012.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