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문을 닫다
- 치매행致梅行 · 3
洪 海 里
말[言]의 문은 입[口]인데
말문을 닫으면 한 '一'자의 들판이 된다
말 떼가 푸른 들판에 뛰어놀아야
햇빛 더욱 맑고 하늘이 푸른 법
소나기 시원스레 쏟아지고 나면
무지개도 천상과 지상을 맺어 찬란히 선다
말문이 막히면 웃음이 살아나는지
어떤 물음에도 답은 하나, 웃음이다
웃음이 만국의 언어라지만
우선은 너와 나 두 나라의 말이 필요할 때
자유로이 뛰놀아야 할 말 떼
사방 벽인 입 '口'자 감방에 갇혀 있다
갇혀 있음은 서서히 죽어가는 것
마장의 숙련된 조련사가 못 되는 나는
무능하고 악랄한 간수일 따름
말이 죽어가는 것을 그냥 바라다보며
한 편의 시를 엮는 죽일 놈의 시인(?)
아내여, 미안하다
어찌 내가 당신의 말문을 닫아 걸었는가
언제 다시 혀가 돌까
오늘도 병원에 갔다
약 보따리를 메고 돌아오는데
영혼이 빈 집 한 채 내 옆에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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