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치매행致梅行』(2015)

손톱 깎기 - 치매행 · 5

洪 海 里 2014. 2. 14. 13:59

손톱 깎기

- 치매행致梅行 · 5

 

洪 海 里

 

 

 

맑고 조용한 겨울날 오후

따스한 양지쪽에 나와 손톱을 깎습니다

슬며시 다가온 아내가 손을 내밉니다

손톱을 깎아 달라는 말은 못하고

그냥 손을 내밀고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겨우내 내 손톱만 열심히 잘라냈지

아내의 손을 들여다본 적이 없습니다

손곱도 없는데 휴지로 닦아내고 내민

가녀린 손가락마다

손톱이 제법 자랐습니다

손톱깎이의 날카로운 양날이 내는 금속성

똑, 똑! 소리와 함께 손톱이 잘려나갑니다

함께 산 지 마흔다섯 해

처음으로,

아내의 손을 잡고 손톱을 잘라 줍니다

파르르 떠는 여린 손가락

씀벅씀벅,

눈시울이 자꾸만 뜨거워집니다.

 

- 시집『치매행致梅行』(2015, 황금마루)

 

 

 

  * 화자는 치매에 걸린 아내와 같이 지내는 남편입니다.

손톱을 깎고 있는 남편에게 치매 걸린 아내가 다가갑니다.

그리고 손을 내밉니다.

손을 내민 아내가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손톱만 잘라냈지 아내의 손톱에는 관심을 기울여 본 적이 없습니다.

아내의 가녀린 손가락 마디를 보니 손톱이 제법 자랐습니다.

결혼한 지 마흔다섯 해인데 처음으로 아내의 손톱을 잘라주는 것입니다.

천진한 슬픔이 가득한 시입니다.

<서울문화투데이> 2016. 3. 18.

- 공광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