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치매행致梅行』(2015)

어린아이 - 치매행 · 4

洪 海 里 2014. 2. 6. 18:09

어린아이

-치매행致梅行 · 4

 

洪 海 里

 

 

 

아내는    어린애가  되었습니다.

내가 밖에 나갈라치면

어느새 먼저 문밖에 나가 있습니다

억지로 떼어놓고 외출을 하면

왜 안 와?

언제 와?

늘 똑같은 두 마디

전화기 안에서 계속 울고 있습니다

내가 자기를 낳은 어미도 아니고

아버지도 아닌데

한평생 살 비벼 새끼 낳고 기른

죄 많은 지아비라서

나는 나이 든 아기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내 사랑하는 아가는

내게 매달려 한마디 말은 없지만

그냥, 그냥, 말문을 닫고 웃기만 합니다.

 

 

 

 

 * 홍해리 시인이 <치매행(致梅行)>이란 시집을 냈다. ‘시인의 말’에서 홍해리 시인은 ‘치매는 치매(癡呆)가 아니라 치매(致梅)라 함이 마땅하다. 무념무상의 세계, 순진하고 무구한 어린아이가 되는 병이 치매다.‘라고 말하고 이 시집을 치매 환자를 돌보고 있는 분들에게 바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가슴이 저리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 글은 아내에 대한 관찰 기록이요, 나 자신의 반성과 그 고백이라서 잘 쓰려고 기교를 부리지 않았으니 욕교반졸(欲巧反拙)은 아니라 믿는다.‘ 고 했으며 하루속히 치매 완치의 신약이 나와 신음하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기쁨을 주면 좋겠다고 썼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홍해리 시인이 16개월 동안 월간 문예지 <우리詩)에 연재한 시를 모아 낸 시집이다. 치매란 병은 천진난만한 아이로 돌아가는 병이란 진술은 치매 환자를 보살펴 본 간병인이 아니고서는 그 말의 진의를 잘 모를 것이다. 홍해리 시인은 아내의 아픔을 지켜보면서 겪은 슬픈 심정을 사랑으로 보살피면서 엮은 눈물의 시편이라 아니할 수 없다. 병이란 미워할 것이 아니라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리라. 병을 사랑해준다는 것은 그 병을 앓는 환자를 사랑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나는 나이든 아기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 오늘도 내 사랑하는 아기는 / 내게 매달려 한마디 말은 없지만 / 그냥, 그냥, 말문을 닫고 웃기만 합니다> 아내의 남편이 아니라 아기의 아빠가 되었다는 이 시구에서 우린 이 일이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 닥쳐올 난치병임을 자각하게 된다. 신은 왜 인간에게 가혹한 시련을 안겨주는가. 그 해답은 신만이 갖고 있는가.

  * 나는 이 시집의 시편들을 읽으며 겨울 긴 밤, 잠을 이루지 못 했다. 지난날 젊은 시절 김소월의 시를 읽으며 밤에 베개를 적셨던 경험을 갖고 있는 나는 소월 이후 시집 <치매행>을 읽으며 또 한 번의 베개를 적시며 밤잠을 이루지 못 했다. 오늘의 시들은 너무 교만해지고 사치해졌으며 뻔뻔해졌다. 세상이 슬퍼졌는데도 슬픔의 시를 읽기가 어렵다. 현실을 외면하고 수사와 기교와 은유에 빠져 시의 존재 이유를 상실한 것 같다. 시집 <치매행>을 읽으며 인간의 사랑이 무엇이며, 환자를 사랑하는 지아비의 참회(懺悔)가 빚은 시의 효용성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아내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예감도 못하고 집필에만 매진했던 어리석음, <한 편의 시를 엮는 죽일 놈의 시인(?) / 아내여, 미안하다> 뒤늦게 뉘우친들 아무 값어치가 없다. <매화나무 마당에 가득하다 / 아들 며느리 / 손자 손녀 / 시끌시끌 시끌벅적...> 제삿날 피붙이들이 다 와서 북적대다 돌아갔다. 결국 남은 것은 마주 앉은 돌부처 한 분(아내) 뿐이다. 이런 적막을 무주공산이라 해도 될는지 모르겠다. 아내란 존재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이젠 내가 이상하다고 말한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편지를 보내도 받지 않는 아내의 메일 주소를 지우는 허무한 마음을 읽는다. 꽃이 피어도 저게 꽃인 줄 모르고 나비가 날아들어도 그게 나비인 줄 모른다. 그런 아내가 이젠 시인의 눈에는 아내가 아니라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여자로 보인다. 슬픔은 힘이 없고 가난하지만 이 시집 속의 눈물의 시가 같은 치매를 앓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어 세상을 밝혔으면 한다.

- 정 일 남(시인)

[출처] 어린아이|작성자 솔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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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우리詩』를 발행하고 있는 (사)우리詩진흥회는 1986년 ‘우이동시인들’이라는 시동인에서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30년이 넘도록 매월 시낭송회와 해마다 여름시인학교를 개최하여 독자 대중들에게 시를

소개하고 시적인 삶을 실천하는 참으로 격이 높고 아름다운 단체입니다.

  (사)우리詩진흥회 이사장 홍해리 시인이 근년에 『치매행致梅行』이라는 좀 특별한 시집을 상재했습니다.

 ‘아내에게 바치는 안타까운 사랑 고백’이라는 수사가 붙은 이 시집은 인용한 시에서도 볼 수 있듯 치매(癡呆)

라는 안타까운 병에 든 아내를 향한 눈물겨운, 연작시 150편의 사랑노래입니다. “치매는 치매癡呆가 아니라

치매致梅라 함이 마땅하다. 매화에 이르는 길이다. 무념무상의 세계, 순진하고 무구한 어린아이가 되는 병이

치매다.”(<시인의 말>)라고 언급하고는 있지만 “아늘아늘하던 아내는 어디 가고// 낯선 사람 하나 내 앞에 서

있습니다.”(「어느 날 문뜩-치매행致梅行·7」)는 통절한 현실 앞에서 시인은 자신의 처지를 “비 맞고 있는/

한여름날// 대낮의/ 염전입니다”(「무제-치매행致梅行·19」)라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러나 치매에 든 아내를

집에서 돌보고 있는 자신을 ‘아낙군수’라고 명명(命名)하면서 “새벽에 일어나 쌀 씻어 안치고/청소하고/ 빨래하고/

밥 먹고/ 씻부시고,// 문 닫고 들어앉아 아내랑 놉니다/ 할 말도 없어 그냥 바라보다 마는 것이/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이긴 하지만,-(중략)-밥 먹고 물 마시고/ 아내랑 노는 일도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라서/

요즘은 그것도 내겐 축복입니다.”(「아낙군수-치매행致梅行·16」)라는 시구에 이르니 저는 어떤 말씀을 펼쳐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시「마취-치매행致梅行·53」는 치매(致梅)의 길을 홀로 걸어가는 아내를 그려놓은

가을꽃처럼 슬프고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 이종암(시인) / (대경일보 2016년 11월 16일(수))

 

 

 

* 시감상 / 이 령(시인)

순애보인 동시에 참회록이다ㆍ

시집 '치매행致梅行'은 아내의 아픔을 곁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지아비의 안타까운 심경을 노래한 작품집이다.

경전서후ㆍ금슬상화ㆍ해로동혈
부창부수의 아름답고 안타까운 사랑의 결집이다ㆍ

남편 속에는 한 사람의 사나이가 있을 뿐이다ㆍ아내 속에는 한 사람의 남자, 한 사람의 아버지,
한 사람의 어머니가 있으며 다시 한 사람의 여인이 있다던가?

여(여전히 소중하고)
보(보배로운) 당신!

을 향한 깊고 아픈 사랑 앞에서
숙연해지는 아침이다~♡

- 페북 (2019. 12. 09.)

 

아직은 젊은 아내가 치매라는 병에 걸렸다. 생각할수록 어이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아내를 쳐다볼 때마다 초롱초롱하던 사람이 어쩌다가 저렇게 되었을까, 절로 나오는 한숨에 아마 땅이 패이듯 가슴속이 움푹 패이지 않았을까

아내의 아버지가 되어버린 남편은 말이 없지만 마냥 매달려 있는 귀염둥이 아내를 토닥거려 주고 있는 모습에서 아릿한 통증이 느껴진다. 아내는 말과 기억을 잃어 버렸지만  남편은 아내의 언어를 찿아 주는 여행에 들어선 것이다. 말을 할 수 없다고 말이 통하지 않는건 아니다. 마음을 읽고  마음이 통하는 새로운 대화법을 터득한  시인의 눈에 아내는 순수한 어린아이다.  아내의 치매는 폭포처럼 시인의 가정을 덮쳤지만  그 물이 떨어진 곳에 지금껏 듣지도  보지도 못한 폭포소가 생긴 것이다. 그들만의 몸과 마음을 담글 수 있는 깊고 맑은 터, 그 곳에서 맨몸으로 헤엄치고 있는 두 사람이 보인다.

그래....사랑... 아프거나 더 아프거나 그것은 진정 짐작할 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 두리요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