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정곡론正鵠論』(2020)

정곡론正鵠論

洪 海 里 2019. 10. 2. 13:47


* 솔개 : http://cafe.daum.net/howillust에서 옮김.



  

 

정곡론正鵠論

 

 洪 海 里

 

 

보은 회인에서 칼을 가는

앞못보는 사내

안 보이는데 어떻게 일을 하는지요

귀로 보지요

날이 서는 걸 손으로 보지요

그렇다

눈이 보고 귀로 듣는 게 전부가 아니다

천천히 걸어가면

보이지 않던 것

언제부턴가 슬몃 보이기 시작하고

못 듣던 것도 들린다

눈 감고 있어도 귀로 보고

귀 막고 있어도 손이 보는 것

굳이 시론詩論을 들먹일 필요도 없는

빼어난 시안詩眼이다

잘 벼려진 칼날이 번쩍이고 있다.

 

   - 월간《우리詩》2019. 12월호.


* 과녁의 한가운데를 일컫는 정곡(正鵠)이란 말은 활쏘기에서 나온 말이다.
과녁 전체를 적(的)이라 하고 정사각형의 과녁 바탕을 후(候)라고 한다.
그 과녁 바탕을 천으로 만들었다면 포후(布候), 가죽으로 만들었으면 피후(皮候)라 한다.
동그라미가 여러 개 그려진 과녁의 정가운데 그려진 검은 점을 포후에서는 정(正)이라 하고,

피후에서는 곡(鵠)이라 한다.
그러므로 정곡이라 함은 과녁의 한가운데라는 뜻이다.
정(正)은 본래 민첩한 솔개의 이름이고, 곡(鵠)은 고니를 가리키는 말인데,

둘 다 높이 날고 민첩하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맞히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과녁 중에서도 가장 맞히기 힘든 부분인 정가운데를 맞혔을 때

'정곡을 맞혔다' 고 한 것이다. 같은 뜻을 가진 말로는 `적중(的中)이 있다.
활쏘기가 사라진 오늘날에는 `어떤 문제의 핵심을 지적했다`는 뜻으로 쓰인다.


정곡正鵠
「활을 쏘는 사람은 어떻게 쏘며 어떻게 듣는가. 소리를 좇아서 발사하고 발사해서 정곡을 놓치지 않는 자는 오직 어진 사람일 뿐이다. 저 재주 없는 사람이라면 어찌 적중시킬 수 있겠는가.(射者何以射, 何以聽. 循聲而發, 發而不失正鵠者, 其唯賢者乎. 若夫不肖之人, 則彼將安能以中.)」(《예기(禮記) 〈사의(射義)〉》)

「공자(孔子)가 말했다. 활을 쏘는 것은 군자와 닮은 점이 있다. 정곡을 놓치면 돌이켜 자기 자신에게서 문제점을 찾는다.(子曰, 射有似乎君子. 失諸正鵠, 反求諸其身.)」(《중용(中庸)》)

「정현(鄭玄)의 주에 의하면 천에 과녁을 그리는 것을 ‘정(正)’이라 하고 가죽에 그리는 것을 ‘곡(鵠)’이라 한다. 육덕명(陸德明)의 석문에 의하면 ‘정’과 ‘곡’은 모두 새의 이름이다. 또는, ‘정’은 ‘바르다(正)’라는 뜻, ‘곡’은 ‘곧다(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대사(大射)에는 가죽 바탕에 ‘곡’을 그리고, 빈사(賓射)에는 천 바탕에 ‘정’을 그린다.(鄭玄注, 畵布曰正, 栖皮曰鵠. 陸德明釋文, 正鵠皆鳥名也. 一曰, 正, 正也, 鵠, 直也. 大射則張皮侯而栖鵠, 賓射張布侯而設正也.)」

이를 쉽게 풀어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과녁을 ‘적(的)’이라 하고, 과녁의 바탕을 ‘후(侯)’라고 한다. 과녁 바탕을 천으로 만든 것을 ‘포후(布侯)’, 가죽으로 만든 것을 ‘피후(皮侯)’라고 하는데, 각각 용도가 다르다. 과녁의 한가운데를 포후에서는 ‘정(正)’이라 하고, 피후에서는 ‘곡(鵠)’이라 한다. ‘정’은 솔개의 이름이고, ‘곡’은 고니를 가리키는 말이다.

<감상>

   홍해리 시인이 도서출판 움에서 시집 「정곡론」을 펴냈다. 2020년 출발을 이렇게 힘차게 내디뎠다. 땅속에서 온갖 생명들이 지상을 향해 머리를 내밀 준비 기간에 시인이 먼저 선수를 친 것이다. 봄이 먼 남쪽에서 오는 게 아니다. 북한산 아래 사는 홍해리 시인의 생가에서 피어난 것이다. 한 편의 시는 시인의 정신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80 편의 시를 수집해 하나의 시집을 내는 것은 시인의 새로운 우주(宇宙)를 탄생시키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농부가 쌀을 생산하는 것은 인간의 육체를 살 지우는 것이고 시인이 시를 생산하는 것은 인간의 영혼을 살 지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이해를 돕기 위해 ‘正鵠’에 대해 좀 얘기를 하겠다. ‘정곡’이란 과녁의 한 가문데 가 되는 점이다. 또는 가장 중요한 요점이나 핵심을 말한다. 중용(中庸) 14장에 나오는 공자의 말에는 <활을 쏘는 것은 군자의 태도와 같은 점이 있다. 정곡을 잃으면 자기 자신에게 돌이켜 구한다.>고 한 말이 있다. 주해(註解)에 말하기를 베어다 그린 것이 정()이고 가죽에다 그린 것이 곡()이다. 모두 후의 중심으로 활 쏘는 과녁이다.> 라고 했다. 궁도나 사격에서는 표적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관혁(貫革)의 음이 변한 것으로 본다. 보통 발사의 명중률을 수련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으로서 정확히 중심점에 명중시키기에 알맞게 동그라미를 겹친 모양의 것과 물건의 모양을 그린 것도 있다. 예전에는 곰이나 사슴 등의 가죽으로 만들었으나 오늘에는 나무판자로 만든다. 올림픽 스포츠에서는 양궁이 있다. 과녁 중심은 10점이고 다음 선이 9점 바깥 선이 8점이다. 이처럼 과녁은 성공과 실패의 기준을 정해두었다.

    - 정일남(시인) 2020. 02. 14.


<감상>

  * 정곡(正鵠)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가장 중요한 요점 또는 핵심, 과녁의 한복판이 되는 점’이라는 두 가지가 있다. “정곡을 찌르다”라는 말은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맞추었다는 의미이다. ‘정正’은 민첩한 솔개의 이르고, ‘곡鵠’은 고니를 가리키는데 둘 다 높이 날고 민첩해서 맞추기 힘들다. 여기에서 과녁 중에서도 가장 맞추기 힘든 부분인 한가운데를 맞추면 ‘정곡을 맞추었다’고 한다. 같은 말인 적중을 쓰지 않고 정곡을 쓴 데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주례周禮>, <중용中庸>, <예기禮記> ‘사의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활 쏘는 사람은 과녁의 가운데에 뜻을 둔다. 참으로 과녁의 한가운데에 뜻을 둔다면, 비록 적중하지는 않더라도 멀어지지는 않을 것이니, 따라서 학문은 뜻을 세우는 것이 먼저다.(夫學如射 射者志於鵠者也 苟志於鵠 雖不中不遠矣 故學莫先於立志).”

   위의 글을 읽고 시인의「정곡론」을 보면 시를 쓰는 자세를 학문하는 자세에 비유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칼을 가는 사내가 앞을 못 본다. 그래도 사내는 오랜 작업의 경험이 있어서 손끝으로 날이 제대로 벼려졌는지 가늠하는 경지에 있다.

  보고 듣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가슴에서 손으로 움직여 한 편의 시가 절로 태어나는 길, 멀고 험하다. 가슴에서 손까지 가는 길이 이리도 멀고 아득한데, 언제쯤 그리될까. 시인은「정곡론正鵠論」에서 천천히 걸어가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던 것이 다 보이게 된다고 했다. 정곡을 향해 열심히 시위를 당겨야겠다.

  - 여 연(시인)


<감상>

  로 보고 손으로 보는 경지를 알지 못하나 내 몸에 꽂힌 말 한마디 부르르 떠는 시간 말의 꼬리가

흔들리다가 멈추는 시간까지 나도 함께 떨다 멈추고는 여운이 가라앉기까지 또 상상으로 호흡이

가빠진 적이 있다.


  새처럼 훨훨 나는 말 말들 맞혀 거두는 법을 알면 시론의 눈치도 필요 없는 시안을 가졌을 텐데

어쩌면 그도 누군가 쏘아올린 말에 가슴을 내어준 적 있으리라. 문장이 심장에 꽂히던 날부터 눈

감고 귀를 막았으리라.

- 금감하구사람.(http://blog.daum.net/rmarkdgkrntkfka. 2020. 03. 20.)




  

♧ 고니 : http://blog.daum.net/jib17에서 옮김.



'시집『정곡론正鵠論』(202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인의 편지  (0) 2019.10.02
<시> 죽순시학竹筍詩學  (0) 2019.10.02
<시> 연필로 쓰는 詩  (0) 2019.10.02
<시> 한 줌의 비애  (0) 2019.10.02
<시> 고독한 하이에나  (0) 2019.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