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洪海里 꽃시집 『금강초롱』의 난시蘭詩와 난꽃

洪 海 里 2014. 3. 16. 05:14

 

겨울을 털어내고

맑게 핀 난들을 모아

제24회 제주 동양난 전시회를 연다고

연락이 왔다.

 

오름에 다녀오는 길에

전시회장에 들러

고운 꽃을 찍어다가

난을 사랑하시는 홍해리 선생님의

시집 ‘금강초롱’에서

난시蘭詩를 찾아 같이 싣는다. 

  

 

 

♧ 난이여 그대는

 

보이지 않는 영혼의 춤인가

닿을 수 없는 정갈한 정신의 벼리인가

뼈를 저며 품어야 할 교훈의 말씀인가

별의, 하늘의, 우주의 투명한 선문답禪問答인가

새벽녘 푸르게 빛 발하는 화두話頭인가

빈혈의 일상을 밝히는 중용中庸의 도인가

한밤에 홀로 깨어 고뇌해야 할 지고선至高善인가

난바다처럼 바라보는 미립의 거울인가

정한 눈물로 맑게 씻은 단단한 꿈인가

말없이 관조의 세계를 보여주는 비구比丘인가

드러내지 않는 자족自足의 예술인가

소리없이 가슴에 차는 참그린 정의 여유인가

 

난이여 그대는? 

  

 

 

♧ 소란小蘭

 

 

계집이야

품는 맛

 

나긋나긋

고분고분

 

가냘프고

소슬하고

 

눈길 한번 던져 놓고

다시 안는 너

 

차라리 안쓰럽고

그윽하고 

  

 

 

♧ 관음소심觀音素心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살해한다

정수리에 총을 쏘기도 하고

비수를 가슴에 꽂기도 한다

눈물로 나를 익사시키기도 하고

악, 소리치며 물러서게 한다

그녀는 발가벗고 있다

온몸이 젖빛으로 흐르고 있다

눈과 둔부가 젖어 있다

손가락과 마음도 젖어 있다

그녀의 샅에서 물 흐르는 소리 들린다

 

나는 그녀를 감싸안는다

초록빛이 죽음 속에 감돌고 있다

희망은 늘 등뒤에 있어도

다스릴 수 있는 절망의 물빛으로

그녀는 꽃을 피운다

 

지상의 모든 빛이 다 모여

불꽃을 피우고 있다

찬란한 해산이다

고요의 북이 울리고

소심素心이 피고 있다.  

  

 

 

♧ 난의 전설

 

너는 하늘을 나는 새였다

네 날개가 날다 지쳐 꽃이 되었다

뿌리로 변한 네 발도

하늘을 잊지 못해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한여름 삼복 중에 돋기 시작한 날개

가을을 날고 겨울을 돌아

해마다 봄이 오면 솟아오른다

하늘을 잡던 네 깃이 잎이 되었다

천년만년 살고지고! 하지만

어느 천년에 사랑이 이루어지겠느냐

첫 년이면 추억도 천년이겠지만

네 가슴속엔 무엇이 들어 있어

난은 오늘도 홀로 푸른가 푸르른가.  

 

 

♧ 소심 개화素心開花

 

한가을 둥근달

맑은 빛살로

바느질 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밤 도와 마름하여

 

첫날밤 지샌

새댁

정화수

앞에 놓고

두 손 모으다

 

바람도 자는데

바르르

떠는

하늘빛 고운 울음

영원 같은 거

 

엷은 고요

무봉천의無縫天衣 한 자락

홀로 맑은

 

지상의 한 뼘 자리

젖빛 향기 속

선녀 하강하다. 

 

 

♧ 난초꽃 한 송이 벌다

 

처서가 찾아왔습니다 그대가 반생을 비운 자리에 난초꽃 한 송이 소리 없이 날아와

가득히 피어납니다 많은 세월을 버리고 버린 물소리 고요 속에 소심(素心) 한 송이

속살빛으로 속살대며 피어납니다 청산가리 한 덩이 가슴에 품고 밤새도록 달려간다

한들 우리가 꽃나라에 정말 닿을 수 있겠으랴만,

  

피어나는 꽃을 보고

그대는 꽃이 진다 하고

나는 꽃이 핀다 하네.

  

피고 지고 피고 지고

피고 지면서

목숨은 피어나는데……,

  

참 깊은 그대의 수심(水深)

하늘못이네.

  

우리가 본시부터

물이고 흙이고 바람이 아니었던가

또는 불이 아니었던가.

  

그리하여 물빛과 하늘빛 속에는 불빛도 피어나 황토빛 내음까지 실렸습니다

올해에도 여지없이 처서가 돌아와 산천초목들이 숨소리를 거르는데 늦꽃 소심

한 송이 피어 깊이깊이 가슴에 들어와 안깁니다.

  

푸르르르르 백옥 같은 몸을 떨며 부비며 난초꽃 한 송이 아프게 피었습니다. 

 

 

♧ 난 앞에 서면

 

천상천하의 바람도 네 앞에 오면

춤, 소리 없는 춤이 된다

시들지 않는 영혼의,

적멸의 춤이 핀다

별빛도 네게 내리면

초록빛 에메랄드 자수정으로

백옥으로 진주로

때로는 불꽃 피빛 루비로 타오르고

순금이나 사파이어 또는 산호

그렇게 너는 스스로 빛나는데

 

난 앞에 서면

우리는 초라한 패배자

싸늘한 입김에 꼼짝도 못한다

언제 어디 내가 있더냐

일순의 기습에 우리는

하얗게 쓰러진다

 

천지가 고요한 시간

우리의 사유는 바위 속을 무시로 들락이고

때로는 하늘 위를 거닐기도 하지만

무심결에 우리를 강타하는

핵폭탄의 조용한 폭발!

  

드디어 우리는

멀쩡한 천치 백치……

가장 순수한 바보가 된다

소리도 없고

움직임도 없는 춤사위에 싸여

조용히 조용히 날개를 편다. 

 

 

♧ 난

 

삼경 이르러 네 곁에 서면

어디서 먹 가는 소리 들리고

꽃빛 심장을 드러낸 바람과

바닷소리도 훌훌 날려 오느니

 

별과 달과 모래알과

나뭇등걸이 모여

정한 물 한 대접에

얼굴을 비추어 보고 있다.

 

소리없이 부르는 노래

동양의 고전이여.

움직이지 않는 춤

초록빛 의미로 쌓는 꿈이여.

 

일어서다 스러지고

스러지다 일어서는

타다 남은 장작개비와

휴지조각들의 꿈을 위하여.

 

진홍의 혓바닥과

은빛 날개.

나부끼는 가는 허리

겨울밤을 홀로서 깨어 있느니.

 

 * http://blog.daum.net/jib17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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