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풍경
- 치매행致梅行 · 283
洪 海 里
말 없는 나라로부터 소식이 올까
혹시나 하지만 온종일 대답도 없고
바람에 슬리는 낙엽, 낙엽,
나겹나겹 낮은 마당귀에서 울고 있다
내 마음 앞자락까지 엽서처럼 날아와서
그리움만 목젖까지 젖어 맴돌고 있지만
마음만, 마음만 저리고 아픈 날
솟대 하나 하늘 높이 푸르게 세우자
여린 날갯짓으로 당신이 날아온다면
나도 비인 가슴으로 기러기 되어
무작정 당신 곁에 가 앉아 있으리
하염없이 지껄이는 지아비 되리.
* 소멸은 점진적이다. 그러다가 소실점처럼 존재는 아득한 제로가 된다.
그러나 화자가 마주한 상대는 현실을 떠나 이 세계와 평행한 그러나
다다를 수 없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상대의 의식은 현실의 어떤 달력
위에 멈춰져 있고 현실과는 다른 역법을 사용하는 시간 위에 화자와 다른
방식으로 소실점이 되어간다. 그리고 화자는 그 이상한 세계의 입구에서
자신과 상대의 기이한 두 겹의 소멸을 견딘다. 어머니의 자궁처럼 한번
빠져나간 자는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그 병리 속, 화자는 닫힌 세계의 문
앞에서 ‘나겹나겹’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애달픈 의성어로 울다가, 높은
그리움의 솟대 하나를 마음에 세운다. 시절은 초겨울로 접어들고 곧 겨울이
임박할 것이다. 겨울이 오기 전 사랑하는 이가 새가 되어 돌아온다면 화자도
새가 되어, 함께 새들의 언어로 지저귈 것이다. 지상의 연옥에 홀로 가 있는
사랑하는 이의 소멸 아닌 소멸을 바라보며 함께 소멸을 견디는 화자의 아픔의
높이가 가파르기 이를 데 없다. 누군가의 아픔에 어설픈 언어를 보태는 일은
대체로 그 고통 위에 소금을 끼얹는 결과가 되기 쉽다. 작품의 아름다움의
목전에서 부끄러운 언어를 조심스레 작품에 덧대고픈 평자의 경박함을
무릅쓴다면, 근래 가장 아름답고 애달픈 연시가 아닐까 한다
- 장수철, 《우리詩》2018. 8월호.
* 그리움과 그리움이 만나면 무엇이 될까.
만나서도 그리움에서 풀려나지 못할 것이다.
오랫동안 가슴에 묻은 말의 표정만 지을 것이다.
소리를 잊고 살아서, 그 소리의 모양을 보이려고 애쓸 것이다.
오늘도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손을 잡아보고 안으며 몸에 들인 말을 적는다.
그리하고도 남은 말은 계절을 한 바퀴 돌아와 또 시로 내려온다.
입술 열린 당신을 만나면 “하염없이 지껄이는 지아비”로 살 소원을 두었으나
그 아득한 소원을 이루면 오히려 말문이 막힐지도 모른다. 우
리 몸의 거리가 이렇게 가까운데, 말은 참 멀다. 말 대신 낙엽만 읽다가 목
을 길게 빼고 솟대로 서는 계절은 얼마나 춥고 외로운가.
가슴을 비우고 따뜻한 말 한마디 기다리는 마당에 겨울이 들어서고 있다.
- 금 강.
*http://cafe.daum.net/yesarts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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